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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Oct 24. 2021

막상 꿈을 펼치려니, 꿈이 뭔지 모르겠다

사장이 되었다 4

학창 시절 백일장이 열리면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도화지는 주어졌고 뭐라도 채워야겠는데 도무지 뭘 그려야 할지 막연하기만 하였다. 빨리 해버리고 놀든지, 기왕 하는 김에 진지하게 붙들어 보든지 양단의 결정을 내려야 했다.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재능과 심사의 영역이므로 상패의 결과와는 무관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늘 기왕 하는 김에 진지하게 붙들어보는 쪽을 택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 상을 받아본 적은 없었지만, 백일장의 취지에 맞게 나름 예술혼을 펼쳤는 것은 분명했다.


남편에게 리모델링과 함께 자신의 꿈을 펼치는 공간으로 활용해볼 것을 제안하였다. 쓰러져가는 건물이라도 '건물주'이고, '자신의 꿈을 펼친다'라는 교과서에 박제된 듯한 문장을 실제 대화에서 사용하는 이상한 아내를 두기도 했으니 무언가 시작하기에 이만큼 좋은 환경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아내로서 나는 스스로 도취될 수 있는 기회였으나 남편에게는 예술적 감성을 강요받은 백일장이었을지도 모른다. 도화지를 받아 든다고 없던 감성이 갑자기 샘솟아 채울 수 없는 처럼, 남편은 '꿈'이라는 단어 앞에 설렘과 막막함이 교차하였다.  

     

집 짓기로 10년이 늙는 것은 아마도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격차에서 오는 괴리감 또는 좌절감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꿈은 집 짓기와 같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과 지금 할 수 있는 것의 괴리에서 비롯된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이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남편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지를 알지 못한다. 남이 입력해주거나 시대가 가리키는 곳을 자신의 최종 목적지로 인식하고 흘러가듯 살아간다. 한 덩어리로 움직이다 보면 나와 무리가 뒤섞여 종국에는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게 한 평생을 살다 갈 수도 있다. 남편도 3층 건물이라는 도화지를 받아 들기 전까지는 무리 속의 한 명이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고색 찬란한 저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적어도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였다. 나는 남들 보기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랬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나 또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이 길, 저 길 마구 휘젓고 다닌 것뿐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궁금하다면 일단 직접 가보았다는 점이다. 덜 망설이고 더 움직이다 보니 삶이 평탄하기는 어려워도 그만큼의 경험치가 나의 자산으로 남은 것은 분명하다. 반면에 남편은 신중한 사람이다. 일단 한 번 가보기에는 생각해볼 문제가 너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선택지는 별로 많지 않았고, 보수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뭐 먹고 싶냐'는 질문을 제일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넓은 선택지가 오히려 선택을 방해하였다. 


남편은 결국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하였다. 오랫동안 시동을 걸지 않고 세워둔 자동차는 배터리가 방전되어 시동 자체가 걸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남편은 자신에 대한 질문과 시도를 오랜 시간 하지 않아 시동을 거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남편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남편은 다른 사람의 꿈을 응원하기로 하였다. 자신의 꿈에 대한 사항은 한쪽으로 제쳐두고 꿈은 있으나 현실의 한계로 괴리에 놓인 청년을 후원하는 역할을 자처하였다. 그렇게 2020년 12월의 끝무렵에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하였다. 그들에게 남편은 한 장 짜리 설명서와 함께 자신의 의도를 밝혔고, 자신이 받아 든 백일장 도화지를 청년들에게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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