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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Oct 26. 2021

다름에 관한 어떤 이야기

감사하지만 사양할게요

모처럼 식당 앞에 주차했다. 좁은 골목길에수월하게 주차한 날은 하루의 출발이 산뜻하다.  11시 30분에 예약한 단체손님이 있어 늦지 않도록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써 준비해야 한다. 만들어야 하는 메뉴들을 적어 냉장고에 붙인 후, 타이머를 맞춰놓고 작업을 시작한다. 혼자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다 보니 메뉴를 빠뜨리거나 불에 올려놓고 잊어버리는 실수를 종종 하였다. 메모와 타이머를 활용하면서는 이런 실수를 거의 하지 않 되었다.


오픈 시간이다.  조리를 잠시 멈추고, 입간판을 내놓으 밖으로 나갔다. 건너편 가게 사장님이 주차해놓은 내 차 뒤에 서 계셨다. 혹시 차를 빼드려야 하는 상황인지 여쭈어 보려던 찰나, 사장님의 수상한 행동 포착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뭐 하세요?


잠시 멈칫하던 사장님께서 멋쩍게 대답하신다.


보기 싫다고 안 하나.
전라도에 아ㅡ들(아이들) 죽은 거 붙이고 다닌다고


이게 무슨 일인지??

내 차 뒷유리에 붙여놓은 세월호 스티커를 손수 정성 들여 뜯어내고 계신 중이셨다. 건너편 가게 사장님은 이 거리의 오랜 토박이시며 지역의 유지이시다. 별로 새로울 것 없던 거리에 스스로 굴러들어 와 자리 잡으려는 나와 우리 식당에 평소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신다. 주 5일, 점심 영업밖에 하지 않는 식당의 매출 부진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해주신다. 점심때, 손님이 와서 함께 식사할 일이 있으시면 종종 우리 식당을 이용해 주신 고마운 분이자 단골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 망설이지 않고 말하고 말았다.


놔두세요. 제 차잖아요.


들고 남의 변화가 거의 없는 오래된 마을이나 골목길은 새로운 존재의 등장에게 느끼는 이질감은 아파트 단지의 이사보다 더 도드라지는 것 같다. 리모델링 공사 당시에는 무슨 장사를 하는 어떤 사람이 들어올 예정인가에 대해 삼삼오오 모이셔서 추측과 예측을 펼치셨다. 개업식을 따로 하지 않고 조용한 영업을 시작한 이튿날에는 동네의 한 아주머니께서 불쑥 찾아오셔서는 개업 떡을 왜 돌리지 않느냐고 물어보셨다. 주변에서 하도 물어봐서 대표로 찾아왔다는 찾아온 이유까지 알려주셨지만, 이유를 듣고도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동네 분들 사이에서 요즘에는 내 차 뒤에 붙여진 스티커가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던 모양이다. 사장님은 나에 대한 호의로 몰래 스티커를 제거 중이셨을지도 모른다. '젊은 애가 잘 몰라서 이상한 걸 붙이고 다니는 것'이라 여기시고 동네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을 때,  나를 두둔하셨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이 나름의 합리적인 추측인 것은 시숙부님들이 다른 친척 어른들과 대화하시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진정한 이 시대의 보수라고 자처하시는 시숙부님은 명절이나 대소사에 모인 집안의 어른들과 정치에 관한 열띤 토론을 벌이신다. 찬반은 없고 동일한 논조에 서로 의견을 붙이는 형식이니 토론이라 부르기는 조금 어색하다. 옆에서 잠자코 단지 자리에 앉아 있다 보면 갑자기! 질부, 너네는 싫지?라고 물으신다. 이 대목에서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웃고 있으면 시숙부님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신다. 그리고 남편과 나를 쟤네는 착해서 그런 거라고 어른들에게 정리해주신다. 그런 선경험으로 나는 사장님의 행동은 호의라고 생각한다.


사장님의 짧은 두 마디에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것이 죄다 들어있었다. 횡횡하는 가짜 뉴스, 어디서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지역감정... 내 비록 동네 왕따이고 말하고 난 뒤 가뜩이나 더 밉보이는 거 아닌가 하는 약간의 후회가 밀려오긴 하였으나 그래도 노란 리본을 떼이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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