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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Oct 23. 2021

글의 쓸모

아마 3-4년 만에 브런치 작가 승인이 이루어진 것 같다. 귀농 두 해 째가 되었을 때, 처음 시도했다 떨어진 후에는 유리장 같던 자신감이 파사삭 깨졌다. 떨어진 이유에 대한 탐색은 귀농이 별로 매력이 없는 소재인 걸까부터 시작하여 마침내는 내가 별로 매력이 없나 보다로 유리 멘탈의 끝장을 보았다. 한참을 뜸 들이다 올해 초, 식당을 준비하며 새로이 도전해 보았다. 결과는 광속 탈락.


아쉽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쉽다면서 왜 그렇게 거부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름 심기일전하여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결과는 이번에도 탈락이었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다른 글들을 보며 괜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버젓한 글을 두고 트집을 잡기도 하고 어느 때에는 끼워달라고 매달리는 내가 싫어 브런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뭘 그렇게 까지 하나 싶겠지만, 글로써 나를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라도 잘한다는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가서 인정도 받고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일지도. 그렇게 나는 골목길 앞에서 잘 나가는 친구들의 고무줄놀이에 끼워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아이처럼 브런치 앱을 핸드폰에 깔았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남이 알아주든 모르든 나의 고약한 성질머리를 다스려볼 요량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함께 산 지 어언 15년 차에 들어선 남편과 앞으로 살아온 세월보다 더 한 세월을 살아가야 할 텐데, 이대로 나의 히스테릭함과 똘끼를 남편에게 필터 없이 마구 발산한다면 평탄한 결혼 생활이 힘들 것 같았다. 기력이 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극강까지 치달으며 언쟁을 벌이거나 며칠을 말 안 하고 버티는 고도의 기싸움이 가능하였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앞으로도 그렇게 지내기는 체력이나 정신력이나 여러모로 불가능하다. 나를 다스리는 도구로써 스스로에 대한 처방으로 글쓰기 시작하였다. 어떤 삶이든 롤러코스터가 있다. 나는 내 롤러코스터의 경로를 기록하고 거기에서 비롯한 나의 감정과 느낌, 삶에 대한 배움이나 깨달음을 남겼다. 신기한 점은 쓸수록 경로가 자세히 보였고 다양하게 열렸다. 좋다/싫다의 이분법으로 존재하던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면 '나'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나를 둘러싼 상황들 또한 좋다/나쁘다의 이분법적인 접근이 가져오는 편협한 판단에서 벗어나 사방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글쓰기를 자신을 돌보고 살피는 도구로 삼는 것을 '자기 성찰적 글쓰기'라 흔히 지칭한다. 자기 성찰적 글쓰기는 어쩌면 왜곡 없는 타자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진짜 자신을 만나기 위한 도입부이다. 나처럼 까칠하고 모가 난 사람은 글쓰기로 나를 다스리면 남을 향한 칼은 덜 날카로워진다. 또한 자신을 글쓰기의 소재로 삼을 경우, 관찰 예능 카메라처럼 나를 시공간을 넘나들며 조명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판단 없이 정보를 담는 카메라처럼 스스로 가진 자신에 대한 프레임 밖의 나를 만날 수 있다.


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다양한 군상의 사람과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또한 이 사람들에 반응하는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혼자만의 공간에 기록하면 나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허상'에 매몰되는 한계가 있다. 다양한 각도에서 나를 조망하기 때문에 유효한 것인데, 그러려면 의도적으로 내게 익숙한 시선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나'를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이 지켜보고 있다면 훨씬 수월하다. 그래서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러다 보니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의 동동이가 나중에는 친구에게 먼저 다가갈 용기를 낸 것처럼, 뱅글뱅글 주위를 맴돌기만 하던 나도 다시 브런치에 용기를 냈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너무 신나서 영업 준비를 하다 개다리 춤을 췄다. 인스타에 자랑하는 글도 올렸다. 한참을 둥둥 떠있다 겨우 내려왔다.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참... 이상한 것은 또 겁이 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잘 나가는 애들이 이제 같이 놀자고 불렀는데, 쫄아서 막 달려 나가지를 못한다. 막상 갔는데, '너 별로야'라고 할까 봐 한 줄도 쓰지 못하였다.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비문 투성이에 쓸데없는 말들만 늘어놓았다. 하아-무리인가 보다. 24일 마감이라는 브런치 북 공모전 광고 배너가 눈에 꽂힌다. 오늘은 벌써 22일이니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안 되겠다부터 내 이야기가 남들이 관심 있을까 하는 쭈굴한 생각에 까지 이른다.


아이를 데리러 간, 센터에서 언니를 만났다. 우연한 만남이 어쩌다 보니 커피 한 잔까지로 이어졌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그간의 근황을 나누나 브런치 소식을 전했다. 언니는 브런치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고민도 요사이 쪼그라든 내 고민과 비슷하여 서로에게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대를 넘어 오래가는 예술작품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같아.
누가 보아줄까 가 아니라.


타로카드에서 내가 만나게 될 귀인이 있다고 했는데, 언니였나 보다! 내가 시대를 넘는 예술작품을 꿈꾸는 것도 아닌데 누가 봐주지 않을까 봐 지레 겁을 먹고서는 멍석을 깔아줘도 못 놀고 있었다. 애초에 나의 글쓰기는 누구 보라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결국에는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하듯 자신을 구원할 것은 오직 스스로에게 있다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도구로 집었던 것이다.

길가의 작은 돌멩이도 강아지똥도 모두 그 쓰임이 있다. 나의 글쓰기는 지적 허영, 습관처럼 굳은 편견으로 갇힌 나의 껍데기에 흠집을 내는 중이다. 그러니 멈추지 말고 계속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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