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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북리뷰100

늑대의 지혜

고리타분한 가치들은 정말 쓸모가 없을까?

by 늦된 사람

고피자를 창업한 대표의 인터뷰를 봤다.

맥도널드처럼 3분 컷으로 제공하는 패스트푸드로써 피자는 어떨까?

그는 이 한 문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모욕적인 순간, 시행착오, 실패를 감내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제까지 없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내디딘 걸음들은 현재의 실패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우며 그것이 놓인 방향으로 따라가 보는 것이라고 했다.


부스러기.


살아있는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는 <왜 일하는가>에서 '부스러기'를 '신이 손을 내민 때'라고 하였다. 그것을 지칭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어떤 문제를 안고 골똘히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실마리'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그 무언가가 보일 때까지는 일정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차올라야만 한다. 물이 끓는점이든, 생물이 질적 변화를 갖는 절대적인 성장의 시간이든. 우리를 둘러싼 모든 현상들이 준엄한 진리를 증명하듯 일상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지만, 정작 쉽사리 받아들이기는 어렵다.(씨앗이 싹을 틔우기까지, 냄비의 물이 끓기까지 등등) 어쩌면 가장 어렵기 때문에 '끈기', '인내', '지속성' 등 다양한 표현들로 우리 곁에 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늑대의 지혜>를 쓴 엘리 H 라딩어는 세상을 바꾸려 변호사가 되었으나 막상 직업세계의 현실을 경험하며 늑대에게로 귀의(?)한다. 이끌리듯 야생 늑대를 관찰할 수 있는 옐로스톤에 주기적으로 머물며, 있는 그대로의 늑대를 마주하며 자신만의 질문에 답을 찾아나갔다.

그는 놀이의 즐거움 부터 사랑하는 대상을 잃은 상실과 같은 묵직한 감정까지 늑대에게 힌트를 얻는다.


늑대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늑대의 어떠한 생태적 특성이 한 개인의 기준점으로 작용하게 만든 것일까?

늑대는 기본적으로 가족 공동체라고 한다. 무리를 이끄는 암, 수로 쌍을 이룬 리더가 있고 공동으로 어린 자녀를 돌보며 경험이 풍부한 노인 늑대를 존경한다.


늙거나 다친 가족 구성원에게는 먹이를 공급하고, 절대 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무리의 모든 구성원은 자기 위치가 어디인지, 누가 결정을 내리는지 알고 있다. 늑대 가족 구성원은 누구나 지속적인 상호작용과 의식을 통해 서로를 향한 애정과 존중을 늘 새롭게 확인한다. 야생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이런 강력한 유대는 생존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p23


늑대 무리는 혈연으로만 맺어진 것이 아니다. 번식을 위해 무리를 벗어나 혼자 떠도는 강력하고 낯선 존재인 수컷 늑대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아주 이질적인 까마귀와도 상부상조의 유대관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이 두 동물(늑대와 까마귀) 사이에는 각자에게 이득이 되는 일정한 정도의 지식과 관용이 있는 듯하다. p127
관찰하고 배우고 결론을 이끌어내기!
원시시대 인간과 늑대와 까마귀도 이런 식으로 학습했을 것이다. 원시인은 식량을 찾을 때 모두가 먹기에 충분한 고기를 공급하는 늑대를 눈여겨봤다. 이때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도운 동물이 까마귀다. p130


늑대에 대한 약간의 이해를 갖추었으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사실 늑대는 맹수계의 금수저가 아니다. 이 책에 따르면 늑대들은 사냥의 약 80%를 실패한다고 한다. 긴 주둥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맹수들에 비해 무는 힘이 약하며 날카롭게 휘두를 수 있는 발톱도 없으며 먹잇감을 힘차게 움켜쥘 만큼 앞발 근육이 강력하지도 않다고 한다.


그저 달리는 발과 무는 턱뿐이다


그래서 늑대는 어떻게 먹고살까?

사냥을 성공할 때까지 때를 기다리고, 무리와 협력하며 전략을 세워 다시 시도한다.


맨주먹과 몸뚱이뿐인 나와 닮았다. 다만 늑대와 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과 달리,
늑대는 모든 것을 금방 실적과 연결하지 않는다.
뭔가를 금방 해내지 못하면 우리는 이내 그게 굴욕이라고 간주하곤 한다.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실적과 비교에 휘둘리며 자주 절망한다. p164


부스러기도 신의 손길도 중단하지 않고 자기 길을 걸어갈 때에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낮은 실적으로 기가 꺾이고, 주변의 말들로 이미 내 안에서 자기 의심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시대에 적응하기도 벅차지만, 저만치 멀리 가 있는 무리에 끼고 싶은 열망에 마음은 초조하기만 하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우리는 인내의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인내의 본질은 자연스러운 삶의 리듬을 인정하고, 그것을 우리 인간의 시간 계획에 끼워 맞추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p165


노오오오력이 어리석은 시대, 굼뜬 것은 도태를 뜻하는 사회이지만 끈기와 인내는 여전히 유효한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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