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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북리뷰100

왜 일하는가

나를 돌본다

by 늦된 사람


끈기와 인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던 나는 매일 출근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9시까지 어느 공간에 가야하는 것,

특이 사항이 없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6시까지 그 공간에 있어야만 하는 것.

이 nine to six가 내게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과제였다.

'예민하고 생각많던' 나는 감정의 기복처럼 일상의 기복도 심했다. 어쩌면 일상의 기복이 심해 감정에 더 쉽게 휘둘렸을지도 모른다. (20대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나에 대해 여전히 '예민하고 생각많다'는 평가를 고집하고 있다. 현재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나는 그 평가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일상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은 마치 시한폭탄과 같다. 어떤 때는 쉼없이 열중하지만, 갑자기 까라지며 은둔해버린다. 상승 기류에 속해있을 때는 내게 주어진 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일을 만들고 벌린다. 하지만 하강기류에 진입하는 순간, 하던 일들을 내팽개쳤다. 작은 사건으로도 내 일상은 쉽게 부서졌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대학 시절 성실히 수업을 완강한 기억이 거의 없다. 다양한 활동들은 핑계였을뿐, 그저 감정에 따라 상황을 합리화했다. 아마도 그 시기의 나는 '책임'이라는 낱말을 인생에서 지웠던 것 같다. 타인을 향한 책임을 비롯해 궁극적으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말이다.


늦은 졸업을 하며, 나에게 비어있는 '성실'이라는 덕목을 채워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다. 매일 출근하여 매달 정해진 날에 일정 정도의 수입이 있는 곳. 그 곳에서 '기복'을 치료해야한다는 나름의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시골 공부방으로 첫 출근을 하였다.


직장인의 삶은 신비로웠다! 전날 밤 새워 술을 마셔도 나는 다음 날 9시까지 출근하였다. 돈을 받고 받지 않고는 기복 따위를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었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덕목은 가지지 못해, 만3년을 채우고는 첫 번 째 직장을 퇴사하였다. 그 뒤, 무직으로 약 1년 여 정도를 지냈다. 육아로 전직하려 하였으나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아 무직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나름의 직장생활로 체질 개선을 했다고 믿은 나는 창조적으로 알찬 일상을 꾸릴 계획들을 세워보았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세상! 그리고 금방 깨달았다. 그 마음하나 먹기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대부분 방에서 누워 tv를 봤다. 해가 지면 어김없이 때워버린 하루에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다음 날도 tv를 봤다. 반복되다 보니 어느 새 나에게는 지금 휴식이 필요한가보다라는 그럴싸한 이유마저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일상의 기복이 시작되었고,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나를 나답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해진 시간에 가야하는 강제와 규칙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무책임이었다.



왜 일하는가

인간은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해 일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면을 성장시키는 것은 스님이 오랜 세월 엄격한 수행에 전념해도 이루기 힘들 만큼 상당히 어렵지만, 일에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큰 힘이 있다. 일하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왜 일하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다산북스 p42


아이에게 늘 당부하는 것들이 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잘 놀자.

일상을 구성하는 먹고,자고,싸는 것은 스스로를 챙기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고, 이것은 모든 생명체가 본능적으로 필사의 노력을 펼친다. 안타깝지만 인간은 때때로 그렇지 못하다. 속상하거나 힘이 들면 자신의 일상을 파괴하는 행위부터 시작한다. 끼니를 거르고, 밤잠을 설치고, 변비에 시달리는 등등. 나의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게 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청소하기. 무직 상태이니 일단 집안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력서들을 넣었고, 최대한 규칙을 몸에 배게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으려 했다.


일을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 하루하루 충실히 일에 매진하면서 자아를 확립하고 인격적 완성에 가까이 다가간다. p46
마을 사람들(남태평양 뉴브리튼섬에 사는 어느 부족)이 일을 하며 추구하는 것은 '일의 미적 성취'와 '인격 수양', 즉 일을 아름답게 완성하고 그 과정을 겪으며 인격을 연마하는 것이다. p47


29살 기혼여성, 뚜렷한 스펙이 없는 내가 타향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경리를 구하는 작은 사무실에 이력서를 넣었을 때는 지방이라도 국립대를 졸업한 나의 이력사항을 보고 사장님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셨지만 채용하지는 않으셨다. 직업 이력에 관한 동시대의 또래들과 나름 비슷한 사연을 겪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한 사건들을 겪기도 하며, 나는 '일'을 스스로의 삶을 튼튼하게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만큼, 일자리에 관한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귀농 후, 농사를 연달아 말아먹고 생계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였다. 사표를 냈던 공무원 시험을 다시 보려고 준비하기도 하였으나 꼭 그래야만 할까라는 물음이 계속 떠올랐다. 결국 내 일자리는 내가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오늘도 출근했다. 나에게 있어 '일이란, 스님의 울력처럼 나를 돌보는 귀한 벗'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습관처럼 출근하는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가?
그 일을 통해 당신은 무엇이 되길 꿈꾸는가?
당신이 꿈구는 일과 삶의 미래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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