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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Dec 31. 2022

송구영신

꿈의 이중성: 욕망과 이상

다른 교회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릴 때 12월 31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교회에 모여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한 해를 돌아보며 기도하고 1월 1일로 넘어가면 목사님이 차례대로 새해의 평안과 안녕을 축원해 주셨다. 성인이 되고 난 뒤, 여러 사정들로 예배에 참석하지는 않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 나름의 의식을 꼭 가지려고 한다. 흘러가는 시간과 시간 사이에 마디를 짓고 그 마디마다 이름표를 붙이고 마음을 정리하여 새로오는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에게 이번 해는 책상머리에 붙여둔 사진 속으로 비로소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길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고,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자기의심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뒤흔들었던 것은 이제까지의 선택과 삶들을 부끄럽게 여기고 후회하는 태도였다.



나는 무엇을 좇아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나는 환경과 배경에 상관없이 누구든 자립할 수 있고, 이렇게 독립된 개인들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세상을 꿈꾼다. 17살에 신문을 보다 발견한 제1회 인권캠프를 혼자 참가한 그때부터 학생운동, 시골 공부방 교사, 사회복지직 공무원, 농부, 식당 사장에서 다시 학생이 된 지금까지 때로는 신기루 같은 그 꿈의 어디쯤에 와 있다.

같은 꿈을 꾼다고 생각한 사람들과 비슷한 회의를 반복하고 회의가 끝나면 허공으로 날아가 사라지는 일들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나흘동안 호스피스 병원에 보호자로 머물렀다. 다음 생에는 가족 말고 친구로 만나고 싶은 그이와 이번 생의 마지막 수다를 나눴다. 내가 좇아온 꿈과 함께한 사람들을 향해 냉소하는 내 말을 듣고 그이는 참으로 안타까워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이리저리 휩쓸리느라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껍데기 같은 나와의 이별을 시작했다.


소속된 단체들을 정리하고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뭘 그렇게 유난이냐,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너만 잘났냐,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이탈을 택한 순간 각오했지만 외로움은 생각보다 깊고 길게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미움과 원망이 혐오로 바뀌었고 열정을 쏟아붓던 그때의 나를 후회하고 버리고만 싶었다.

참으로 비극이었다. 껍데기를 벗으려 했는데, 나에 대한 모든 원인을 타인과 과거에 묶어 마리오네트가 돼버린 것이다.


진정성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거짓이 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연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용서함으로써 두려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미지의 세계로 내보내는 것이다.
<진정성의 여정>, 이창준, 플랜비디자인


여름에 들어설 무렵, 가족 아침기도문을 새로 썼다.(아침식사 때, 가족 기도문을 함께 읽는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나를 온전히 사랑합니다'

모든 이야기들에는 결말이 있지만, 삶은 그저 계속될 뿐이다. 어느 한 장면은 멋진 퇴장으로 행복하게 사는 일은 연속되지 않는다.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매일이 내 앞에 놓여있다. 어쩌면 멋지게 결단하여 자기만의 여행에 나서면 나설수록 비극과 고난은 예견된 장면이지만, 낯선 환경에서 초라해지는 경험은 언제나 싫다. 그래도 나는 내가 주인공인 서사를 계속 써나기로 했다. 그 주인공이 단번에 새로운 캐릭터로 변모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서. 여전히 흔들리고 약한 나를 혐오하지 않고 일으켜 천천히 계속 나아가 이야기의 끝을 맺기로 했다.


이 연구의 끝에 알게 된 유일한 것은,
우리가 대담하게 실행할 때 어느 시점이 되면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리더의 용기>, 브레네 브라운, 갤리온


올해, 푹푹 찌는 컨테이너에서 시험공부를 하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다가 꿈의 무게를 떠올렸다. 냉혹한 것은 나의 꿈이 성취되면 누군가의 꿈은 좌절된다. 성취한 자의 노력과 수고는 정당한 것이 되고, 실패한 자의 그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오십 대 중반의 선배들을 만났다. 청춘을 바친 친환경농업과 농민운동에 좌절과 모욕감을 느끼는 그들의 고백은 병원에서 나눈 그이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게 했다. 선배의 고백에 마음이 아팠다. 한국의 왜곡된 유기농업구조는 생산자에게는 거짓을 요구하고 소비자에게는 허상을 심어준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는 누구의 잘못일까. 답을 찾고 싶어 시작한 공부이지만 걸음마도 떼지 못한 나는 아직 그 답을 모르겠다. 다만, 나비를 잡아먹을 거미에게 죄책감이 없듯 나비의 비행에도 죄가 없다.



그래도 용기를 내자.


얼마 전, <영웅>을 봤다. 두 눈이 퉁퉁 불어 영화관을 나섰다.

이토에게도 안중근에게도 '동양평화'가 꿈이었다. '동양평화'를 외치는 이토의 연설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르는 군인들의 표정은 결의를 넘은 광기였다. 모든 꿈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욕망이 인간다움을 상실하는 순간, 모두 거미가 되려는 야욕만이 남는다.


앞으로도 무의미함은 우리 앞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결코 헛된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자아의 이상을 포기하는 삶이야말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치욕이며 자기 배반이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공생자로 끌어안고 목적을 찾아 오두막을 나서 모험을 시작하는 것은 생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진정성의 여정>, 이창준, 플랜비디자인


내일이면 새해다.

여전히 내 안에는 천박함과 불안, 나약함이 있고 어떤 사건 앞에서는 포장도 하지 못한 이 부끄러운 민낯이 나를 뚫고 나올 것이다. 나에게 좌절하고 실망할 것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자. 습관처럼 나를 폄훼하고 남을 탓하려는 때에는 한숨 푹자고 일어나 맛있는 밥 먹고 기운을 차리자. 그리고 뚜벅뚜벅 또 나아가자.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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