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매 순간에서의 최선

by 늦된 사람

퇴근 무렵, 부고를 받았다. 지금은 비록 데면데면한 사이지만 나의 젊은 한때에 함께 울고 웃으며 더불어 지낸 언니의 아버님이 소천하셨다고 한다.


내가 사는 곳은 지방 변두리 소도시여서 빈소가 있는 서울까지 오가는 차편이 마땅치 않다. 언니와 가까이 지내는 다른 이웃들도 그러한 사정으로 직접 조문하지는 못하고 부의를 전달한다고 한다.




언니는 나의 첫 사회생활 멘토였다. 무엇인가를 지향하고 그것을 구현하려 애쓰는 선배의 존재는 참 든든했다. 어느 때에는 언니의 가장 아끼는 후배가 되고 싶은 욕심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언니의 욕망과 처지들이 뒤엉켜 생겨난 이야기들이 쌓여갔고 나는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좌절했다.

내가 처음 만났던 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에 나는 언니로부터 독립하였고 오가며 인사정도 나누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가 되었다.



입관은 내일 낮, 나는 오늘 저녁부터 내일 아침까지 시간이 된다. 서울로 가는 막차를 타고 빈소를 도착하면 밤 11시 무렵. 돌아오는 버스는 다음날 아침.

나는 난데없이 조문 예의를 떠올렸다.

입관도 하기 전에 빈소에 가도 괜찮을까.

가게 되면 빈소에서 밤을 새울텐데 상주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옷차림은 괜찮나.


괜한 예의타령으로 안 가도 되는 오만가지 이유가 떠오르다가 문득 언니가 해준 위로의 순간들이 기억났다. 할머니 가시던 길, 남편이 큰 수술을 받았던 병원로비, 직장생활에 속상한 나를 위로하려 데리고 갔던 강변 자판기 앞...




서울행 버스를 탔다. 그 슬픔의 자리에 조용히 곁을 함께하는 것. 아무래도 이것이 예의겠다. 아무래도 이래야만 내가 언니에게 받은 인연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겠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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