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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Dec 20. 2023

자기계발은 자기진단에서 시작한다

도시 재개발의 첫단추는 건물안전진단이다. 사람이 살기에 안전상 문제는 없는지,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구조적으로 심각한 결함은 없는지 등의 건물의 상태를 먼저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개선되기 바라는 점, 새롭게 추가되길 바라는 것 등의 요구들을 반영해 설계가 이루어진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치기도 하고, 외부요인이나 내부분쟁 등으로 개발이 멈추거나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자기계발은 재개발과 참 닮은 점이 많다. 자기계발은 지금까지의 나를 자신이 지향하고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옮겨가려는 분투(奮鬪)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아침의 기상만 해도 그렇다. '5분뒤 다시울림'을 누르고 싶은 유혹과의 힘겨운 사투 끝에 이불 속을 탈출할 수 있었다! 일어나는 것이라면 나를 제어해 습관으로 만들 수 있겠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과 조건들이 훨씬 더 많다. 심지어 이런 악조건에 기름을 붓는 것은 수시로 변하는 나의 '기분'이다. 기분은 모양과 형태를 달리해가며 갖은 창조적인 이유를 생산해 계발에 훼방을 놓는다. 


무엇보다 자기계발이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애를 걸쳐 진행되는 특성은 반복되는 진보와 퇴보에 의한 나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그러니 자기계발이란, 자신의 지향점으로의 정진(精進)일수밖에 없다. 이 길고 지루한 여정은 남으로부터 이식된 목적지와 방법들로는 금새 동력을 잃고 표류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내가 정한 길이었던 사표와 귀농도 수없이 후회하는데, 남을 따라서 한 것은 두말하면 입이 아프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마침내 이르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 나의 주변을 어떻게 구성하고 싶은지, 목적지로 갈 수 있는 내게 적합한 도구는 무엇인지 등의 물음에 스스로 묻고 대답할 수 있어야 지뢰처럼 숨겨진 실패와 좌절을 만나더라도 부득부득 다시 일어나 자기만의 도착지에 이를 수 있다. 자신의 본질에 대한 자기와의 대화는 꿈을 가질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받는 사춘기 청소년만에만 국한된 활동이 아니다. 문화재만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다. 삶에 대한 이해도 자신이 경험하고 인식한 크기에 비례하여 보이고,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가며 늘어나는 경험과 지식이 자신을 향한 질문들에 다른 대답과 반응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렇지 않다면, 철지난 옷을 버리지 않고 입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봐야 한다. 

약간 옆길로 새자면, 자기와의 대화를 미루고 미루다보면 어느날 갑자기 산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감히 단호히 말하건대, 일상과 단절한 깨달음은 없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는 그 속담 속의 사람은 '나'다. 종종 나는 '나의 가장 최대의 안티는 나'라는 생각을 한다. 때로 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피해자라는 구도에서 안정감을 얻고 싶어서 인식을 왜곡하거나 기억을 조작하는 나를 수없이 만난다. 복합적이고 복잡한 내 속을 한번에 깨뜨려주는(깨뜨리는) 것은 없다. 깨뜨렸다는 착각이 존재할 뿐. 밥을 차리고, 일을 하고, 다투고 화해하고 성가신 잡무들을 처리하는 별것없는 일상 속에서 묻고, 답한다. 내일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그러고 있는 모양빠지는 자신과 수없이 마주하여도 계속 해나가다 보면 '흔들리며 피어있는 꽃 한송이'를 만난다고 믿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마침내 이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이 질문들에 답을 하려면 우선,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보아야한다. 먼저 내게 주어졌던 유년시절의 환경 속에서 삶의 갈림길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였고, 그 선택들의 결정에 바탕이 되는 사고과정을 되짚어본다. 그 다음은 나의 선택들로 만든 환경에서 나는 주로 어떤 갈등과 고민을 했고, 그 속에서 내가 한 행동과 결과를 살펴볼 것이다.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작업은 참 불편하다. 후회와 원망, 그리고 자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건너뛴 다른 길은 알지 못하겠다. 마치 기초공사를 부실하게 한 것처럼 무시하고 덮어버린 기억이 결정적인 순간에 불쑥 튀어나오거나 스멀스멀 피어올라 잘 살고 싶은 마음을 일순간에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나름 유년의 나와 무의식을 대하는 소위 '마음공부' 주변을 일찍부터 어슬렁거렸지만, 한가지 알게 된 것은 한번의 작업으로 드라마틱하게 해결되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사이비이거나 명상으로 돈벌이를 삼는 경우라는 점이다. 그저 나에게 어떤 이름을 가진 지병이 있다는 것을 알고 평생을 두고 관리해나가는 것이다. 건축 후에는 꾸준히 관리하는 것처럼. 다만 관리사무소에 맡기지 않고 내가 내 집을 때마다 돌보고 수리하다보면 노하우가 쌓이고 그러다보면 이 때다 싶은 순간에 리모델링도 하게 된다.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의 여정을 가는 데에 적합한 경로는 어디인가?


내가 누구인지 탐색하는 질문이 기본(기초)과정이라면, 구체적인 생활 속에 실천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실전질문이 뒤따라야 한다. 나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들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지,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무엇인지 답해보는 것이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가치와 태도, 해결방식을 먼저 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제로 자주하는(반응했던) 행동을 통해 거꾸로 나의 무의식을 추론해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투, 처신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역순으로 대하면 내가 믿고 있던 나와는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 또는 스스로를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진단편을 한해가 가기 전에 마치고 싶었지만, 간밤에 나 혼자 쓰고말면 그만일뿐인 일기를 구태여 끄적이는 이유를 두고 몇번을 망설이다보니 연재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나는 왜 만천하에 내 속을 뒤집어 놓으려는 것일까? 다음 발행일에도 망설이겠지만, '자기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고 다시 대답할 것이다. 가상의 독자는 내가 나를 지켜보는 것만큼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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