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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Apr 24. 2024

사주는 거들 뿐, 풀이는 내 몫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나', 자기진단 2

1. B급 자기계발의 시작


지난 해 12월, 나를 탐구하고 재구성해나가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이제까지의 나를 정리해보고, 지금과 앞으로의 나는 어떠하고 싶은지 점검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하루를 채워가는 과정을 기록하기로 하였다.


조금 비겁해도, 이름 앞에 굳이 B급이라 붙였다.

노력의 크기에 등급을 매기는 것은 조금 곤란한 일이기는 하지만,

개인이 감내하는 인내와 실천의 정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내가 하는 노력의 정도?

글쎄...조금 어중간하다. 

성실하고 긍정적이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호르몬의 역습을 알고도 매번 우울감과 불안으로 잘 살아보려는 나 자신을 뒤흔든다.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칠 때는 내가 참 싫어진다. 

또 내가 바라는 어느 지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지만, 불시에 찾아오는 '남의 떡이 커보이는' 증상이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고 자신을 의심한다. 

뚝심도 모자라고, 강단도 약하다.


그래서 B급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등급과 등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의 노력과 정진이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의 정중앙에 닿지는 못하더라도

그 언저리에는 가보자는 용기. 

가까워지다보면 욕심이 나고, 또 그 욕심을 바탕으로 노력의 급을 상향조정하다보면 중앙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2. 자기진단의 도구들 활용하기: 여행, 독서, 나를 아는 사람과의 대화


올해 1월, 혼자 아이를 데리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틈틈이 국내여행을 다녔지만, 국외로 아이와 둘이서 여행을 떠난 것은 처음이었다.

항공, 숙박부터 세부일정까지 오롯이 혼자 힘으로 해결해나간 경험은 

집 밖은 위험하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고

한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의 일들도 이렇게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 사건들을 대하는 나를 통해 

내가 무엇에 기쁨, 두려움, 신명, 호기심, 슬픔 등을 느끼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아이와 함께한 여행이라 실제로 내가 지닌 '자녀 양육관'을 좀 더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삶을 대하는 성실한 자세의 바탕으로써 학습태도를 중시하는 것인지,

똑똑하고 학업성취도가 우수한 아이이길 바라는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은 엄연히 다른 개체이지만 혈육으로 부모에게 속한 자식은 부모의 욕망이 투사될 수밖에 없다.

나는 능력있고 인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고

이 욕망은 아이에게 많은 부분이 투영된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부모 노릇을 잘 하기 위해서라도

욕망을 넘어선 삶의 가치와 본질을 탐구해나가는 정진은 필수이다. 

가치와 본질을 상실한 욕망은 속이 빈 껍데기라서 허무와 고통에 맥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여행 가방에도 책을 챙겼고, 돌아와서 시험공부를 하기 싫어 빈둥거리는 와중에도 책은 읽었다.

<임신육아출산 대백과>에서 시작한 육아서적은 <초등사춘기, 엄마를 이기는 아이가 세상을 이긴다>로 진화하였다. 아이의 연령과 성장에 따라 필요한 지식과 지혜가 달랐다.

더불어 나의 책장도 성장해갔다. 

내가 가진 생각과 실제 아이를 대하는 태도의 간극에서 내가 가진 결핍, 상처, 왜곡된 인식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결점을 가리려 아이를 방패삼는 경우를 줄이고 싶었다. 마음공부, 인문, 철학, 사회, 과학, 예술, 자기계발 등 이윽고 대학원 수료까지, 10년의 육아가 나에게 남겨준 상장이다. 


내 몸을 빌려 태어난 자식만큼이나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관계가 남편이(었)다.

연애를 포함한 시간까지 보면,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한 사이다.

그에게서 비롯된 관계들을 품으려 부대낀 시간,

그와 나의 결합과 충돌이 얽힌 시간,

그에게 투영된 나를 직면해야했던 시간,

나에게 투사하는 그를 받아들여야 했던 모든 시간들을 통과하는 동안 서로에게 흔적이 남았다.

옹이처럼 멋진 훈장으로 남은 전투의 흔적이 있는가하면

치료가 불가능해보이는 손상으로 남은 것들이 있다.


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포기되지 않는 희망이다.

그래서 절망적이다. 

변하지 않는 외부환경은 결국, 나를 향한 비난과 책망으로 귀결되었다.

제법 긴 시간을 우울감에 시달렸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나를 보살폈다. 

그리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신과를 처음 방문했던 그 날은 즉흥적이었지만 오랜 숙제를 해결한 기분으로 기억한다.

감기로 내과를 찾아가면 증상의 개수만큼 알약이 있는데,

의사는 내가 말한 것만큼 알약을 처방해줬다. 그래도 가길 잘했다. 정신과도 내과처럼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심리검사는 유용했다. 결과지를 토대로 임상심리전문가와의 상담은 더 도움이 되었다. 

물론 나의 대답을 결과로 구성되지만,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접근하는 것은 '스스로 인식하는 나'를 '통계적으로 정의하는 나'로 객관화해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여정의 끝에 며칠 전,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봐오신 은사님을 만났다.

대학교 3학년, '철학의 이해' 교양수업에서 처음 뵌 선생님과는 졸업 이후의 만남으로 오히려 더 큰 가르침을 받았다. 

20대의 불안과 패기, 

호기롭던 30대, 

의기소침해진 40대의 시간들을 관통하는 동안, 

불편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선생님은 서양철학을 연구하시지만, 주역과 사주명리를 도구로 주변 선후배와 제자들의 인생고민을 들어주신다. 인터넷 사주풀이, 사주를 전문적으로 보는 분들의 사주풀이, 신점으로 보는 사주풀이 등등

내가 경험한 각종의 사주풀이와 선생님이 해주시는 사주풀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운명의 중심에 '주인으로서의 나'를 놓는 것이다.


사주는 일종의 통계학이다. 태어나는 순간을 기점으로 사주와 팔궤로 분류하여 분류된 사주팔자의 영역에서 긴 세월 쌓인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간의 운명을 설명하는 것이다.

일반화에는 언제나 특수성을 내포한다. 이 특수성은 간과한 사주풀이는 단지 한 개인을 수천년의 데이터 속에 일반화된 특징없는 그들 중 하나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특수성을 아우르는 일반화된 성질을 모르면, 작은 것을 너무 크게 다루거나 한곳에만 매몰될 수 있다. 


한 개인의 삶, 성격, 기질, 운명 등등의 것들은 

단순한 몇 글자로 정의내리기에는 불가능할만큼 다면적이고 다채롭다. 

어느 순간의 나는 우울증과 대인기피가 있고, 또 어느 때의 나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한다.

비겁과 용기, 내향성과 외향성, 끈기와 변덕, 대부분의 양면들을 동시에 지니고 주변의 상황과 관계들과의 작용을 통해 어느 성향이 더 드러나기도 하고 숨겨진다. 

나는 외부의 상황과 관계를 모두 통제할 수는 없으나

이 작용의 과정에 내가 어떤 위치와 어느 정도로 임하느냐를 결정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나를 지켜본 선생님과 사주를 도구 삼아 

지금, 앞으로의 내가 

스스로 정한 나의 방향으로 어떤 위치와 어느만큼의 힘으로 대할 것인지를 의논하였다.

무엇보다! 애정이 담긴 무조건적인 지지를 깔고 하는 사주풀이는 

앞으로의 나에 대한 막연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3. 나는 널따란 땅


사주 속의 나는 땅, 널따란 땅이다.

없는 것도 있고, 많은 것은 무척 많아 무엇을 채우고 어떤 것을 가꾸어나갈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면 된다.


땅밖에 없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가요?

이럴 경우, 내가 접한 대부분의 사주가들은 물이 없고 땅밖에 없어 무엇을 해도 결실을 맺기 어렵다고 한다.


선생님은 광활한 대지가 주는 압도적인 기운이 있다, 씨앗을 품고, 싹을 틔우는 대지라고 달리 풀어주셨다.

인문학의 힘이다. 

같은 광경과 사안을 대해도 인문적 소양이 있으면

이것을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힘이 있다. 

그 힘이 돌파구를 만든다. 


이로써 과거와 현재의 나를 진단해본 약4개월의 여정을 한번 매듭짓는다.

성장과정을 돌아보며 글을 쓰다가 울기도 하고

잊고있던 감사의 이유들이 떠올라 혼자 감격하기도 했다.

나의 우울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혜를 주었고,

나의 신명은 타인과의 협력으로 함께 꿈을 꾸는 원동력을 되었다.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조건, 관계는 언제나 있다. 

단, 내가 설 위치, 개입할 정도, 쏟아부을 관심의 크기는 내가 결정한다.

그 결정에 매순간 최고의 선택은 아니어도, 

자신에게 있어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충실한 순간들을 모아나간다.

그 순간들이 모여, 어느새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에 데려다 줄 것이다. 


오늘부터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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