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0일
사주를 봤다. 내가 봤던 사주 중에 제일 최악이었다. 왜냐하면 제일 들을 게 없었기 때문에.
생각이 너무 많다, 일단 해봐라 하는 얘기만 들었다. 미래에 대한 얘기도 별로 없었다.
현실도 재미없다 싶었는데 사주도 재미없네, 난 그냥 그렇게 살다 갈 운명인가 싶었다.
그런데 나도 참 재미있는 삶을 산 적이 있었다. 나의 가능성에 설레어하고 미래를 향한 발자국이 보이는 날들이.
그런 날엔 자기 전 침대에서 이것저것 미래에 대한 상상도 많이 했다. 그날 가장 입고 싶지만 돈이 없어 사지 못한 옷과 가방을 걸치고 친척들을 만나 멋있다는 얘기를 듣는 상상을 하곤 했다. 아니면 부모님 데리고 백화점 가서 옷을 사드리거나.
혼자 소소하게 하던 글과 그림 작업이 대박 나서 다니고 있는 서점을 그만두고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창밖으로 보이는 집에서 작업만 한다거나.
그런 날엔 내일이 걱정돼서 보다 내일이 설레서 잠을 못 드는 경우가 많았다. 도전하고 있는 일들에서 미래를 떠올리는 것만큼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만들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은 날들이었다.
그때는 사주 내용도 재밌었다. 이때까지 힘들었던 게 12월에 일어날 일들을 위해서였다는 말까지 들어봤으니.
그런 날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왜 사주조차 재미없게 된 건가 돌이켜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없어서 사주도 말해줄 내용이 없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나는 회사-집만 다니고 있으니. 쉬는 날엔 독서정도. 그나마 도전하는 게 있는다면, 저녁 8시에 퇴근하고 한 봉지씩 먹는 과자를 반봉지만 먹는 것 정도. 가끔 제정신이 될 땐 거기에 스쿼트 60개를 추가하는 것 정도. 하지만 한 달에 4번이 될까 싶은 도전들이었다.
사주도 재밌게 나와주고 싶어도 숙주가 하는 게 없으니 곤란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 5만 원은 하는 사주에서 음, 과자를 곧 끊을 수 있겠네요. 말벅지가 되고 피부도 좋아질 것 같은데요? 하는 소리를 할 수는 없으니.
사주가 하나의 인격이라면 ‘에잉 사주 재미없어’ 하는 나를 어처구니없어하며 보고 있지 않았을까.
사주는 정해진 나의 운명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구나 싶었다. 사주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따라 내용도 달라지는구나. 지금 하는 게 없으니 사주도 내용이 없는 거였구나. 내 인생은 정말 내 손에 달렸다는 게 절실히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