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7일
30살이 되었다. 12월 30일에 혼자 노래방에 가서 아이유 라일락을 불렀다. 뮤직비디오에서 29살의 마지막을 보내는 아이유를 축하하듯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노래가 너무 높아서 삑사리가 나는 와중에 30살이 될 아이유의 얼굴로 폭죽이 고장이라도 난 듯 퍼붓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어른의 질풍노도 시기인 20대를 잘 견디고 새로운 나이대를 맞이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축복해 주는 것 같아서.
20대는 뭐든 도전하고 실패해도 되는 나이대라 생각해서 정말 그렇게 살았는데, 30대는 성공하는 날을 달력에 많이 새겨놔야 하는 나이대 같았다.
그래서 참 슬프고 외로웠다.
그런 내게 아이유의 뮤직비디오는 부담의 30대보다는 새로운 “0”의 시작을 축하해 주는 걸로 느껴졌다.
그러나 1월 2일이 되어 서점에서 입고된 책을 정리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30대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30대의 나는 로고가 은근히 숨겨져 있는 명품 블랙 옷을 쫙 빼입고 내 명의로 된 자동차 운전석에서 내려야 했다. 그만큼의 재력과 권력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난,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입고된 책을 정리하고 책 내용을 사진 찍는 고객님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분명 24년 12월 30일에 뮤직비디오에서 30살을 축하받았음에도, 그래서 30살에 대한 묘한 기대가 생겼음에도, 나의 30살 시작은 29살의 어리숙함과 똑같았다.
각자의 길을 잘 나서는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나는 얼마나 모자란가, 나이테만 30개 생긴 잘린 나무밑동처럼 멈춰있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주마등처럼 20대 후반의 업적들이 떠올랐다. 퇴근하고 누워서 웹툰 보기, 도전하겠다 해놓고 안 한 구상안들, 넘쳐나는 영수증 종이들.
아, 나 30살에도 똑같을 법했구나.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게 행동했구나.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건 현실감각이 빨리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간 해온 나의 행동들을 떠올리니 지금 모습이 딱이라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내 행동이 바뀌면 나의 31, 32는 또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0으로 돌아간 기념으로 이제는 도전을 실천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요즘엔 20대엔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고 있다. 뭐랄까, 꿈을 이루기 위해 삶을 전략적으로 대하고 있달까.
20대 땐 무작정 부딪히고 상처 나서 겁먹고 포기하고 우울해했었다. 아마 책 정리하면서 들었던 부정적인 생각들도 20대에 했다면 최소 일주일은 앓아누웠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꿈을 목표로 잡고 어떻게 이룰지 한 달간 자세한 계획을 짜고 있다. 심지어 나의 예민한 성격까지 고려해서.
<이영지의 레인보우>에 나온 이창섭이 30대가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이냐는 이영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변한다.”
“낭만이 걷어지는 게 아니라 낭만이 무르익었다고 봐요. 그래서 조금 더 그 낭만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할 겁니다.”
이 말에 너무 공감한다. 30살이 된 지 며칠 됐다고 공감하냐 싶을 수 있겠지만, 실천하고 있는 나의 관점에서는 너무나 공감하는 어록이다.
30살의 나는 여전히 10대, 20대에 꿈꿨던 낭만을 가슴에 품고 있다. 현실의 참혹함에 무너져도 20대보단 빨리 일어서서 행동한다.
꿈을 현실로 이뤄내는 방법을 강구한다는 점에서 나이 듦은 특권처럼 느껴져 기분이 좋다. 30대의 시작이 설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