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운명?>

운명조차 좌절된 당신에게

by 흐르미

당신, 기억하나요. 저와 함께 사주를 보러 갔던 그 날을. 그때의 당신 표정을 기억합니다. 아무것도 궁금한게 없는 지친 표정. 선생님은 당신께 올해가 삼재라고 했지요. 삼재. 그 단어에 당신은 처음으로 탄성을 작게 뱉었습니다. 요즘따라 자주 나오는 갈 곳 없는 한숨들이 삼재라 그런거였구나 하고 웃었지요. 그리고 딱히 미래에 미련 없는 질문과 와닿지 않는 답변만 오갔습니다. 그곳에서 나오면서 사주도 재미없는 인생이라며 말하는 당신은 더 지쳐보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때의 당신 표정을 기억합니다. 샤워하면서 그 작은 머리로 골똘히 생각한건지 비장하게 말하던 그 표정. 한숨을 들이마시듯 몸을 크게 부풀리던 당신은 사주가 재미없었던건 도전한게 없어서였다고,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없듯이 그저 그뿐인 거라고 말했죠. 그 말이 제겐 새로웠습니다. 운명대로 가는 사람인 제게 그 말은 내 인생은 정말 내 손에 달렸다는 말 같았으니까. 주체적인 삶으로의 도약. 감히 운명에 묶인 실을 끊어 운동화 끈으로 묶는 상상. 그때의 당신은 오로지 당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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