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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미 Sep 17. 2022

흔한 사람

흔한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가 살아가는 방법

 나는 나를 스스로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살아가는 방법들을 적기 시작했다. 나는 감정적으로 예민해서 조금만 삐끗해도 주변인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기 쉬운 사람이었다. 예민해지면 자신을 책임질 자신이 없어져버려서 누군가 나를 곧게 잡아주면 좋겠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내 감정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문제에 답을 이미 내가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 문제와 답을 깨달은 날에는 미간을 모이게 한 걱정들이 솜사탕 녹듯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스트레스로 꾸깃한 미간에 파스를 붙이는 것처럼 시원해졌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새로운 문제가 닥쳐오고 그것을 해결한다고 그 깨달음들을 다 잊어버린다. 그래서 며칠 뒤에 똑같은 문제가 닥쳐도 같은 문제라는 것을 몰라 다시 미간을 좁혀버린다. 참 억울했다. 겨우 문제 풀이에 대한 방법을 알아냈더니 다 까먹어버리다니. 이것은 수학 문제를 답안지 보고 푼 후 다 알게 되었다! 하고 자위하다 다시 그 문제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건 비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을 정리해서 모아놔야 했다. 내가 책임지기엔 너무 커져버린 나의 감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의 문제는 감정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에 있었다. 조그마한 바람결에 세차게 흩어지는 민들레 같아서 나는 내가 참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최근의 예민함은 취업성공에서 드러났다. 나는 출근 첫날에 드디어 취업을 했다며 설레어하는 게 아니라 가기 싫다가 먼저 나왔다.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4년을 노력하고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지만 나는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자유롭지 않다는 게 화가 났다. 디자인 일을 배워도 재미가 없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이주일이 됐음에도 출근하는 길에 사고가 나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파괴적인 상상도 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이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왜 스스로를 지옥으로 내모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지 아이러니했다. 남들은 첫 출근날을 그렇게 설레어하고 취업성공에 파티도 열며 기뻐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남들보다 더 힘들어하니 일을 그만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했을 때 그들은 내게 매우 정상적이라고 말했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내가 느끼고 있는 거라고. 나는 그 말이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전부 이 정도로 느끼면서 출근을 한다고? 이걸 다 참으면서 인생의 반을 회사에 바친다고?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견뎌내는 사람들이 경의로웠다. 그러면서도 씁쓸했다. 나의 아픔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남들 다 겪는 아픔인데 너만 왜 이렇게 유별나냐고 하는 말 같았다.


 네힘든 거 남들도 다 그래 라고 말하는 건 두 가지의 모습을 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나의 아픔을 보편적인 것으로 낮추고 공동체의 느낌을 주어 위로를 주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두 번째는 남들은 다 힘들어도 참는데 너는 왜 그렇게 못 참냐는 비난의 느낌을 주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두 번째처럼 느껴졌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수도 있고 위로와 공감을 건넨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을 아니까. 하지만 나의 씁쓸함은 그와 별게였다. 나는 정말 당장 집에 가둬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서운데 이 느낌이 하찮아지는 것 같았다. 남들은 그것을 다 겪고도 견디고 있으니 나도 이 무서움쯤은 견뎌내야 할 것 같았다. 이쯤 되니 내가 정말 무서워하는 게 맞는지 그들의 말이 정답인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뭐지? 에서 결국 나는 뭐지? 까지 갔다.


 내가 느끼는 것을 스스로가 믿지 못하는 것은 상당히 외로운 거였다. 나의 감정을 이해해달라고 말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졌다. 설명하다 보면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의 글이 격하게 필요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고 있을 정도로, 자신의 아픔에 가장 집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들은 인생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향한 칼날이라고 느껴질 때 어떤 방패를 쓰는지 엿보고 싶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편안함을 맛보고 싶었고 그들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진지한 방법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sns나 유튜브를 찾아봐도 별로 없었다. 사람은 모두 다른 존재라 그런 걸까, 비슷하다가도 거리가 느껴졌다. 그리고 모든 꿀팁들을 배우려고 하다 스스로의 감정을 부정하기만 해서 더 탈이 나기도 했다. 남의 꿀팁은 어쨌든 그 사람의 삶에 맞도록 조정되어 있었던 거였고 무작정 따라 하려고 한 건 억지로 그 꿀팁에 나를 맞춘 꼴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꿀팁을 적어나가기로 했다. 하루의 절반이 무기력한 내가 스스로를 힘나게 해 주고 설레게 해주는 방법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것은 매일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견디기만 했던 나의 습관에 새로운 숨 쉴 공간을 주는 나의 첫 번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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