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르치스에 대하여.

일본에서의 지도교수님에 대한 이야기.

by Da테


나르치스에 대하여.



오늘, 정각이 되어서야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전부 읽었다. 엄격한 신학자로서 지성과 질서의 세계를 대변하는 나르치스와, 자연인으로서의 인간과 예술을 대변하는 골드문트의 만남과 이별을 둘러싼 이야기다.


필사를 마치고도 속이 울렁거린다.

그것은 자신의 심장부와 가장 가까운, 이젠 제법 날카로워서 저절로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사실의 희미한 윤곽을, 스물다섯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묘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각가로 비유하자면, 그것은 평생 동안 자신을 시달리게 하는, 그러나 몇 번이고 포기하지 않고 매달릴 가치가 있는 형상의 스케치를 도면에 옮기기 시작한 순간의 벅참과 버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순간 예술가는 자신이 긋는 획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목 아래서 넘실거리는 긴장감과 환의, 두려움 엇비슷한 것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붓을 들 것이다.


이것은 나의 나르치스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언제나 나를 가장 많이 두렵게 만드는 이, 나의 학부생 시절의 지도 교수, 이토 루리 선생님이다. 나는 대학에 졸업하기 전부터, 그의 학문적인 성취를 서투르게나마 더듬으며 그의 지도 아래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다. 학문의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제3세계라고 불리는, 현재 자신이 머물며 생활하고 있는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이주민 여성의 생애를 연구해 온 그를 흠모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를 면접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열렬히 바랐다. 그 순간부터 나는 대학에 합격하기만 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의 아래에서 공부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입학 후, 나는 정확히 내가 바라는 대로 했다.


그건 어떤 예감이었던 걸까? 단순히 ‘젠더’라는 낯선 수입품처럼 보이는 단어의 세련된 어감에 무턱대고 끌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루리 선생님은 작은 체구에 비해 카리스마가 넘쳤다. 태도는 일견 고집스럽게 보일 정도로 단단하고, 빈틈을 보이거나 어리석게 구는 일 따위는 없었으며, 미소는 오로지 기가 찰 때 자신을 지나치게 가열시키지 않기 위해 사용했다. 상대가 비열하거나 어리석게 구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자기 자신에게도 같은 종류의 방종을 결코 허락해 오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상대방을 가차 없이 비난했고, 심지어는 경멸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언제나 납득 가능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입학 전 리포트 과제에 (츠다주쿠 대학교는 ‘입학 전 과제‘라는 것이 있었다.) 내가 재일조선인인 시인의 시를 인용했다는 것을 흥미롭게 여겼다. 아마도 그것이 나의 첫인상이었을 것이다. 모국과 이주국 두 나라에서 추방당하고, 잊혔고, 또 얼마든지 잊힐 동네의 이름을, 깜깜해진 자신들의 삶을 애도하는 시. 나는 그 어떤 데이터나 비참한 역사적 사료보다 그 시가 그들의 삶을 보다 가깝게 묘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까막눈이었던 학부생의 나는, 나의 심상과 예감 따위를 나침반 삼아 학문의 세계를 헤쳐나갔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지성이 부족하고, 그 지식에서 자신의 견해를 구성하기 위한 사고력, 마침내 어설프게나마 도달한 견해를 피력하기 위한 논리학적 도구와 기술도 없었다. 매 순간순간이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한 도전처럼 다가왔으며, 나는 불충분한 자신감과 허름한 뇌 한 쌍을 들고 어떻게든 그 가파른 물살을 (잘도) 헤쳐나가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대부분의 학생들과 교수들의 이름은커녕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비판이나 지적만큼은 뼈 아프게 받아들였다. 그것들은 문장에 한자나 한국적인 표현(즉, 잘못된 번역)이 많아 내용 전달이 어렵다던가, 데이터와 논지가 어수선하게(물론 그가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모여져만 있을 뿐 제대로 된 분석은 되어 있지 않다던가, 기본 중의 기본인 참고 인용의 표시가 틀렸다던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성이라는 세계 속에서, 스스로가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지 못해 아주 어설프고, 정신 사납고, 숲은커녕 나무 하나 제대로 통찰하지 못하는 인간이 된 느낌에 종종 사로 잡혔다. 그리고 졸업한 뒤 일 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았을 때, 이러한 진단은 대체로 사실이었던 것 같다. 루리 선생님은 그런 나를 무시하거나 경멸하지 않고, 언제나 날카로운 통찰과 세심하고 명징한 비판과 지도를 해 주었다.


나는 결단코 그의 지적을 성가시거나 무용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그를 깊이 존경했고 그런 마음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왜 지도 교수이기 전에 한 세계의 책임감 있는 구성원인 그가 ‘나의 견해나 논지‘보다 기술적이고 언어적인 규칙, 즉 학문적인 글쓰기에 있어서 ’형식‘에만 천착하는지 원망스러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는 나의 오탈자나 비문, 불필요하게 반복된 문장, 틀린 인용을 시시각각 놓치지 않고 지적했고, 어떤 날은 나를 호되게 꾸짖기도 했다. ‘전부 다시 써야 해.’ 그는 충격을 받아 비실거리는 나를 세워두고 이렇게 단단히 일렀다. ’ 글이란 날카롭게 연마되고 훈련되어야 하는 거라고. 이 글을 봐라, 동일한 내용이 문장만 바꿔 세 번이나 언급되어 있잖아!’


그에게 꾸중을 받은 뒤 나는 대단히 속상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술의 기운을 빌려 소리 없이 눈물을 짜내고, 스스로에게 하소연하고 (이게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글이란 말이야?), 나중에는 어리석었던 자신을 반성하고 정진하겠다며 심기일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내게 있어 형식이란, 학회라는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기관에서 비롯된, 자격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구별해 내기 위해 고안된 수고스러운 가중 노동, 거추장스러운 소일거리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따라서 내가 감각하고 있는, 사실들 사이를 열성적으로 뒤집어 찾아낸 그 ‘진실‘이 실로 가치 있는 것이고, 그것을 보기 좋게 세공할 뿐인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규칙’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나는 종종 목 안으로 웅얼거렸다.


하지만 졸업 논문 집필을 하던 도중 이러한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게 된 우연한 기회가 있었다. ‘모든 것을 진화의 상의 아래로 보라(全てを進化の相の下に見よう)’고 했던 다치바나 타카시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지식에 대한 그의 열망과 엄격한 태도에 고무된 것이다. 무수한 지식의 체계 속에, 인간의 DNA처럼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 그 긴밀한 네트워크 속에 편입되는 ‘정보‘를 만든다는 것. 생애를 바치는 인고의 노력을 거친 뒤에도, 그것이 끊임없이 도전되고 전복되며 변용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그리하여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한 몸부림을, 새로운 희생을 치르면서 시도하는 것. 그가 설파하는 지식과 규율의 변증법을 배운 뒤에 나는 그제야 루리 교수님께서 어떠한 진지함으로 학문과 마주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지도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여전히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처럼 주의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 엉성하고 허점 투성이인 인간이었다. 휴학으로 인해 졸업이 육 개월 미루어졌다는 것을 졸업 논문 제출 직전에 전달해 선생님을 아연질색하게 만들었다. 애써 잡은 면담 시간에 문학을 전공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 꾸중을 들었다. 도서관이나 자료실을 까막눈의 정신으로 배회하고, 수백 번 메모를 휘갈기며 힘겹게 힘겹게 졸업 논문을 썼다. 제출 버튼을 누른 뒤에는 내가 얼마나 한심스러운 글을 썼는지가 애석해서 모니터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와 함께 인쇄된 논문의 표지 위로 수십 개의 코멘트를 남겨 표지를 엉망으로 만든 뒤에서야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하루는.


"자네는 실력 있는 사람이야. 이런저런 것들을 넓게 펼쳐놓고 그것의 연결 고리들을 찾아내는 상상력이 풍부하지. 그렇지만 그런 방식으로 글을 쓰다간, 글이 끝도 없이 팽창해서 종내는 아무것도 밝혀낼 수 없게 돼."


또 하루는.


"너는 네가 증명해 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똑바로 알아야 해. 동시에, 네가 무얼 모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해."


논문의 발표를 마쳤을 때, 루리 선생님은 '드디어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가 됐다.'고 짤막하게 칭찬했다. 그리고는 무덤덤하게 비평을 덧붙였다. '그렇지만 마지막의 표는 사회학적인 '분류'라고 보기에는 어렵지. 임의적이고, 여러 특성들이 혼합해 있어. 또 이 논문은 무언가를 분석했다기보다, 두 주요 인용자의 주장을 나열한 것에 가깝지. …’ 나는 깊이 감복했지만 조금은 상처받아 시들시들 진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렇네요.’


(일 년이 지난 뒤 내가 알게 된 것은 이 논문이 푸코가 제창한 '계보학적 방법론'을 실천했다는 것, 그 하나뿐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진지하게 탐구하고자 했던 현상이, 무관한 개별의 현상들의 우연한 집합으로 발생했다는 사실 말이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소속해 있던 세미나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은퇴 반대 1인 시위를 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는 그런 염원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드디어 나의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며 프랑스로 떠나버렸다. 그는 명예 교수라는 타이틀만큼이나 자신의 지도 학생의 존재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는 이를 깨닫자마자 그러한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사사로운 조언을 구하면서 그를 귀찮게 만드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가 개인 연구로 얼마나 바빠졌는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내가 졸업을 하고 그가 은퇴를 하고 나서야, 나는 그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스승으로, 교육자로, 학문의 매개자로서 나를 지도하는 책임을 완수한 것임을 깨달았다. 한 인간의 자아에 기초한 규율과 권력의 부당함을, 나는 지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참 운이 좋게도.


이 주 전 신세를 졌던 다른 교수님과 아오이 선배와 함께 선생님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루리 선생님은, 변함없이 루리 선생님이었다. 여전히 험준한 지형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고, 불명확한 문장을 가차 없이 쳐내며 다양한 영역을 횡단하는 정보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나는 메모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 나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실로 오랜만에 그가 미소 짓는 것을 보았다. 그가 저녁 식사를 즐겼는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지만.


졸업 후 연구생이 되면서 나는 나의 무능과 부주의를 더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학부생이었을 때만큼 고통스럽지 않았다. 나는 이미 현장에서 현상이 이론에 선행한다는 것을 배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제와 가설의 공간을 분리하는 법을, 학생으로서 공간의 문제에 부딪혀 나갈 힘이 없을 때, 그 공간을 논리적으로, 증명 가능한 방법으로 계산하기 위한 지식과 방법론을 배워나갈 수 있었다. 새로 만난 동료들의 비평은 적확했고, 대화는 살아 숨 쉬듯 역동성이 있었다. 지적은 따가웠지만, 그것으로 글을 건드리면 구조가 눈에 띄게 개선되고 문장이 알맞은 장소에 인도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빈곤한 내게서도, 모든 수고스러움과 수치를 잊게 만드는 순수한 기쁨과 경애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나는 질서와 정돈된 생활 속에서 자기 자신을 더 올바르게 느꼈고, 학문을 존중하는 이들의 열정 속에 휩쓸리는 체험을 가치 있게 여기고 또 아낌없이 즐겼다. 나는 쓰고야 말 것이다. 규범에게 물리학적인 힘이 있다는 것을, 그것으로 인해 배제된 삶 속에서도 마땅히 연구할 가치가 있는 창의성과 미학이, 저항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두렵지는 않다. 루리 선생님께서 지금 나의 곁에 없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애석하다.



P.S. 나의 골드문트에 대해서는 언제 이야기할 수 있게 될까? 타로의 컵 8과 데빌 카드로 시작되는, 관능과 잔재주가 난무하는 감미로운 세계에 대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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