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려면 써야 해. 쓰려면 읽어야지.
10일. 이삿짐 정리를 도와주고 하코네까지 동행한 애인이 한국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동안 글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나는 글을 마음이 시릴 정도로 외로워지거나 우울할 때 모닥불을 쐬듯 썼다. 눈부시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옆에 두고 장작을 패는 것은 무용한 짓이었다. 더럽게 행복하고 (사랑과 잘 맞아떨어지는 수식어가 아닌가?), 그 덕분인지 시간의 축이 비정상적으로 어그러졌다. 나는 그와 함께 있을 때마다 365일, 24시간, 60분, 60초라는 단위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를 실감한다.
나는 본격적으로 애인을 딱딱 복숭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예전 그가 자신의 갓난아기 시절 사진을 보여주면서 '납작하다'라고 한 것에 꽂혀 그를 납작 복숭아라고 부르다가, '딱한 것(Poor thing...)'이라는 어감에 꽂혀 최종적으로 딱딱 복숭아가 되었다. 귀국 전 날 산등성이를 넘어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서 내가 그의 코를 설탕 노움의 것 같다고 예뻐하며 한번 핥아보고 싶다고 하자 그가 새침데기처럼 거절했다. (나는 혀를 세로가 아닌 꼭 가로로 핥아야 한다고 고집했다.)
숙소에 도착한 그가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누워 지친 듯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덮는 이불 위에 누워버린 탓에 탓에 이불은 그의 몸의 반도 가리지 못했다. 마치 흰 샌드위치를 덮은 과일 같은 형국이었다.
"이불을 참 딱하게 덮고 있네..." 나는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그는 불편한 교통 덕에 가여울 정도로 지쳐 버린 것이다.
그러자 그가 즐거운 듯 까르르 아이처럼 웃기 시작했다. 한번 터진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피곤한 나머지 실성에 가까운 상태가 된 것이리라. 그러나 그의 맑은 웃음소리와 귀엽게 올라간 입꼬리는 더없이 사랑스럽기만 했다. 그때 나는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가 나의 소소한 말 때문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간단하게 행복해질 수 있으면서, 왜 나는 갖은 고생을 해서 미술품이 가득한 이 외딴곳으로 여행을 왔을까? 다음날 우리는 울면서 공항에서 헤어졌다. 그는 내게 불쌍한 강아지처럼 귀국장의 통유리를 긁어내리는 장난을 두 번 다시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여간 내가 감각하나마나 시간은 충실하게 제 할 일을 하고, 골드문트는 꿋꿋이 방랑의 길을 걷다 막 자신의 스승을 만나던 참이었다. 여행의 막바지에서 나는 이사 준비를 서둘렀다. 그의 부재는 이겨낼 수 없는 종류의 절망을 안겨줄 것이 분명했으므로, 일부러 고되고 힘든 일을 마련해서 고통을 경감시키고 싶었다. 마침 11일은 나의 생일이기도 했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새로 이사하는 원룸은 견학부터 계약까지 모든 것이 거침없이 이루어졌다. 집은 이케부쿠로라는 도심에서 가까웠고, 난생처음 살아보는 원룸이었으며 (나는 집 거실부터 기숙사, 셰어 하우스를 전전했다), 5.5평으로 좁았지만 월세가 저렴했다. 일본 부동산과 계약을 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외국인은 NG라...라는 말을 늘어놓을 것이면서 부동산으로 불러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국 업체를 찾았다(NG는 No Good의 약자라고 한다. 일본의 품격이란!). 집주인은 온화하고 솔직한 성격이었으며, 그의 휴대폰 화면에 확대된 텍스트가 일관적으로 집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있었기에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하루빨리 이 전 집을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퇴거가 예정되어 있는 집에 언제까지고 태평하게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나는 11일 오후 1시에 이사 업자를 불러 부지런하게 짐을 날랐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살던 집을 떠났다.
이삿날에는 공교롭게도 비가 쏟아져내리고 태어나서 들어본 것 중에 가장 근접하게 느껴지는 천둥번개가 쳤다. 짐을 전부 실어 나른 트럭이 출발했을 때, 업자분께서는 창문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했다. "이야, 참... 날 한번 잘 고르셨네." 나는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을 불행이나 업보 청산을 예견하는 신화적 요소로 해석해야 할지, 혹은 개인의 기호로 멋대로 기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게 빗소리는 감미롭기만 했다. 마치 '다시 살아봐라. 그게 뭐가 되었든 전부 씻겨줄 테니.' 하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테,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 메시지 중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보낸 메시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미국에서는 오늘 9・11 테러 추모식이 열렸어.' 모르는 바가 아니다. 나는 묵념이라도 하자며 답장을 보내고는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비가 내리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날 저녁에 이사 정리를 도와주기로 한 여동생이 왔다. 대타로 나선 아르바이트가 밑도 끝도 없이 길어진 탓에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기진맥진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졌으니 차라리 다른 날에 오는 것은 어떻겠냐고 전화를 하자 "정말 괜찮겠어?"라고 반신반의하던 그가 마음을 정한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나는 언니 집에 가게 되겠지. 왜? 생일날에 혼자 있는 언니가 불쌍하니까!"
그는 집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떠났다.
11일부터 3일간은 스스로를 끝없는 노동에 내몬 기억뿐이다. 여동생이 사 준 몽블랑이나 애인이 보내준 샴페인을 마시면서 간신히 쉬는 시간을 가지긴 했다. 내가 생일을 비참하게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지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싫었지만, 나는 되도록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음악도 귀에 들리지 않게 되고, 읽고 쓰는 것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무심해졌다.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스스로가 지루하고 배울 것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조금 슬픈 마음이 되었다.
무정하고 감성이 메마른, 오직 생존만을 최우선의 과제로 두는 자신은 낯설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런 상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돌아갈 집이 없는 상태에서 감정의 방랑을 허락하는 쪽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생활하는 데 있어 더욱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식과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하면 지루함을 그럭저럭 이겨낼 수 있었다.
미친 듯이 집을 정리하자 불과 이틀 만에 씻을 수 있고 요리도 할 수 있고 심지어 공부를 할 수 있는 방의 구색이 갖추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갑작스러운 이사로 말미암아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자각한 데서 온 막연한 당혹감일까?
14일. 아침부터 영화와 드라마를 연속으로 몰아보기 위해 마찬가지로 이사 준비를 하고 있는 지인의 집에 놀러 갔다. 오후에는 여동생이 다시 한번 찾아와 주었는데, 3단으로 접을 수 있는 모아이 석상처럼 못생긴 매트리스의 발송이 늦어진 것을 알고 함께 실망했다. 그러나 오후 늦게 360도 회전하는 6단 책장이 도착했을 때, 나는 침대 대신 책장이 먼저 도착한 것이 행운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책장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크고 우람했다. 옆으로 쓰러진다면 나 하나쯤이야 빈대떡처럼 눌러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장보다 높겠는데?" 우리는 불안해하면서 책장을 천천히 조립하기 시작했다.
잡담을 하던 중에 친척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교우 관계에 있어 트러블이 있었던 자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언니 동생에 있어서 첫째들은 왜 그럴까? 동생들은 그렇게 똘똘한데."
"왜? 내가 어벙해?"
"어, 어벙하지. 언니는 내가 얼마나 악독하게 사는 줄 모르지?"
완두콩의 세 번째 알처럼 생긴 것이 별 말을 다 한다고 생각하며 나는 나사를 마저 조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여동생이 알바처에서 가게를 파산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양의 빵을 챙겨 온 것이 문득 생각났다. 그러자 그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발장이 이만큼의 양을 훔쳤던 것이라면 분명 사형당했겠지.
두 명이 낑낑 거리며 나사를 조이고 또 조이자 책장이 완성됐다. 내 키를 웃도는 조립된 책장을 나는 감격에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우리 이름을 지어주자. 맷 데이먼은 어때?"
"... 좀 더 멋있는 이름 없어?"
나는 그날 바닥에 누워 어둠 속에 우뚝 솟아있는 맷 데이먼을 올려다보며 저것이 지진에 휩쓸려 나를 덮치지 않기를 기도했다.
*
오늘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읽었다. 소설은 시종일관 시니컬하고 웃기고 솔직히 좀 더러웠다. 덕분에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성적 접촉이 조금도 성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절대 이딴 식으로 살지 말아야지.' 나는 어렵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다고 퀴어 퍼레이드에 흰 턱시도를 입고 행진하는 얼간이가 되겠다는 건 아니고.'
집에 혼자 있다는 감각은 이상했다. 모든 것이 최악으로 손쉽게 떨어질 수 있을 것 같고, 그 반대도 가능할 것 같았다. 낯선 침입자가 생기지는 않을지, 곰팡이가 무한 증식하진 않을지, 집에서 원인불명의 악취가 나기 시작하진 않을지 걱정이 됐다. 누군가를 마음 놓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기뻤다. 그러나 새로운 커뮤니티를 찾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피곤했다. 오늘 아침 책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애인과 통화를 했다.
"어쩌면 내일은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천천히, 내 사랑. 천천히."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됐든 글을 읽고 싶었다. 산 사람보다 죽은 활자와 소통하고 싶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긴 했지만 내가 되찾아야 하는 감각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이 일기는 순전히 내가 여전히 쓸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 적었다. 아래는 오늘 나눈 신선한 대화.
"혹시 이 레몬 녹차에 카페인이 들어 있나요?"
"들어 있을지도 몰라요. 무카페인 음료가 필요하셨나요?"
"아뇨.... 필요해서요. 많이요."
"도대체 어떤 하루를 보내고 계신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