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 동문들과 2년만에 재회했다.
나는 현재 여자 대학교의 동문 4명과 11월에 페미니스트 진Zine을 발행하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이것은 504 Zine을 번역하기에 앞서 쓰는 8월 24일의 일기이다.
몸보다 머리통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다. 어제 이 년 이상 뿔뿔이 흩어져 있었던 대학 동창들과 만나 11월에 발매할 잡지에 실릴 좌담회를 가졌다. 오늘은 오후 4시 즈음에 집에 들어와 장편의 통속 소설 하나를 쓰는 것보다 그 원초적인 욕구에 부합할 수 있도록 여러 단편을 하나로 묶는 것이 어떨까 고민하면서 헛되이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으면서 문득 친구에게 추천받았던 헤르만 헤세의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었다. 고작 1장을 읽었음에도 그의 문장이 내게 미친 영향은 굉장했다. 말문을 트이게 한 것이다. (좋은 작품은 보는 이로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한다. 나는 우연히 그러한 작품과 마주치게 되면 노트를 꺼내 다소 히스테릭하게 자신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주머니를 가볍게 만드는 편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다른 작품으로 이동하기 위한 한 발자국을 뗄 수 없게 된다.)
내가 커피콩을 씹은 염소처럼 씩씩 거리면서 흥분한 것이 오후 2시 카페에서 주문한 카푸치노와 함께 딸려 나온 시나몬 스틱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 끝에 불을 붙여 맛있게 피울 수 있을 것처럼 생겼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함량 되어 있지 않다.) 나는 어제 오랜만에 만난 4명의 친구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 적은 글의 유익함-결코 전제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의심스러운-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를 끔찍스러운 고통에 가까운 황홀경으로 몰아넣는 것이 글뿐이라는 생각도 은밀하게 더해 보았다. 머리통 뒤가 불 켜진 방처럼 환하게 밝아지면서 무한히 팽창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강렬한 감각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조금씩 깊어지는 앎, 혹은 빛의 쌍둥이인 무지뿐이라고 되뇌었다.
캠퍼스의 504호실에서 함께 공부했던 이 네 명의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나는 스스로가 딱 적당한 서술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나의 사고나 가치관이 균형 잡혀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과 공유하는 유일한 공통점, 인간 사회에 대한 인류학적 탐구심과 애정의 값이 그제야 평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들 속에서 나는 결코 불쾌하지 않은 방향으로 밋밋해지고, 안전하게 비관하고 회의할 수 있다는 특권을 누린다.
우리는 도쿄 시내 중심지에 있는 캠퍼스에서 재회했다. 학부가 신설됨에 따라 2016년도 무렵에 지어진 5층짜리 신식 건물은 대학이 아닌 병원의 외관으로 푸코의 규율권력을 다소 농담처럼 체현하고 있다. 벽은 정신병원처럼 '강박증'이라고 새로 이름 붙여야 할 것 같은 흰색이지만, 유일하게 건물의 외면만이 여성 대학이라는 이유로 살구빛으로 코팅되어 있다. 120명 되지 않는 학생들은 일 층에 심어져 있는 한 그루의 비쩍 마른나무를 무심코 지나치거나 빈 교실에 틀어박혀 여성의 야망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성실하게 골몰한다. 소수의 인원만을 수용할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이기에 진리를 기록하는 보존 서고가 없는 대신, 1년에 한 번씩 행사를 맞아 올림픽 경기장에서 쏘아 올려지는 불꽃놀이를 지켜볼 수 있는 옥상이 있다.
명문 여자 대학교의 자격이기도 한 영어와 데이터 사이언스라는 엄중한 부채가 생기는 것을 감안하면, 이곳에 우수하다고 불리는 여학생들이 모여든다는 말이 조금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몇 기생인지에 따라 학생들의 성향과 질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거의 매 해마다 신입생들과 졸업한 선배들에게 관심을 빙자한 핀잔의 딱지가 붙었다. (말도 안 되는 주제의 논문을 써서 졸업을 했다는데..., 신입생이 몹시도 시끄러워서 깜짝 놀랐어.... 수업 도중에 인권이 뭔지 질문한 학생이 있다더군.) 우리는 서로 다른 년도에 입학했으나 각각의 코로나 이후의 입국 제한과 휴학이 우리를 공교롭게도 같은 년도에 졸업시켰다. 논문 집필에 대한 각별한 감상과 진지한 태도가 우리를 자연스럽게 504호라는 외딴 교실에 고립되게 만들었고, 사회와 정치에 대한 끊이지 않는 불만이 서로를 익숙한 친밀감으로 한데 묶어 친우로 만들었다.
졸업 후, 나와 에렌은 도쿄에 머물러 같은 대학원과 세미나에서 제회 했다. 레이카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아오이는 아일랜드의 대학원에서 머무른 뒤 방학을 맞아 7월에 도쿄로 돌아왔다. 그중에서도 쌍둥이처럼 붙어 다녔던 것이 레이카였는데, 서로에게 친밀감을 지나치게 느낀 나머지 흘러간 시간이 이 년이 아니라 단 이틀 같았다. 뜨거운 포옹을 나누면서 '오랜만이야. 넌 아직도 날 좋아하니?'라고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두 눈을 바라본 뒤에 정 인사말이 필요하다면 건강하냐고 묻거나 바뀐 머리 모양을 칭찬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레이카는 한결같이 선명하고 생명력이 넘쳤는데, 그의 인상에 대해 각기 다른 평가를 할 수는 있어도 수 분 내에 잊히고 마는 그런 얼굴과는 다르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레이카가 러시아의 사할린, 쿠릴 열도, 그리고 홋카이도 등지에 분포했던 소수 민족의 혈통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뚜렷하고 아름다운 눈매가 인상적인 그는 성적도 우수하고 대외 활동도 정력적으로 이끌었기에 존재감을 숨기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그의 카리스마가 타인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대부분이 견디지 못해 언제나 흠모자는 많지만 친구는 적었다.
에렌은 입학 전부터 기업가로서 활동하고 있던 선배로, 일반적인 사람보다 뇌의 중앙처리 장치가 세 배 정도 크고, 부드럽고 자애로운 인상이지만 어느 분야든 뛰어나게 우수했다. 그가 건네는 '당신 뜻을 이해한다'라는 눈빛은 가슴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하는 머릿속의 전기 회로가 계산한 수십 가지의 가능성 중 하나를 출력한 것에 가까웠다. (나는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다'라고 말하지만, 그는 '그것을 정말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에렌 선배의 고등학교 동문인 아오이 선배는 열정적인 사회 운동가에 가까운 유형으로, 내가 아는 한 가장 다정한 몽상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무심함과 때때로는 경멸을 휘두르곤 하는 내게 부드럽고 침투하기 어려운 막을 쳐놓았다. 자주 울었지만, 바로 그 눈물로 말미암아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의 가치를 명확히 알았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그간 투고한 페미니즘, 유학 경험, 생활과 연애, 몸에 대한 글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서로가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길게 이야기했지만 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국제 정세나 정치에 대한 견해가 합세하자 이야기가 거침없이 가지를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들이 얼마나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지, 그러한 계급적 특권이 글의 주제들을 얼마나 한정시켜 놓았는지를 염려하며 이야기의 밑동에 도끼를 휘둘렀다. 그것은 주제가 아니라 구성원의 조합에서 기인한 필연적인 한계이기에, 철저한 자기비판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결국은 글의 쓸모를 찾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다시 어지러운 대화들이 오갔다. 종내는 서로가 적은 글들을 들여다보며 감회에 젖었다. 담화가 끝나자, 나는 그들의 눈을 빛내고 있는 것이 그들이 내린 최후의 겸허한 선택 때문이지, 그 과정에 깔린 지난한 망설임과 고통 때문이 아님을 알았다.
때마침 아래층에서 동창회가 열리고 있었기에, 우리는 각자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식사를 한 뒤 하루동안 묵을 호텔에서 밤까지 작업을 했다. 몸을 씻고 나자 어느새 정시가 되어 있었다. 레이카가 유난히 각별한 애정을 쏟는 것은 술과 음식이었는데, 그가 조지아에서 손수 가져온 와인을 오프너 없이 열기 위한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동안 새벽 3시가 되었다.
그 사이 에렌과 아오이는 한국의 여고에서 벌어지는 입시 경쟁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선의의 전쟁 1화를 보고 있었다. 유치원생부터 무리에서 소외감을 느꼈던 여주인공이 보호 시설에서 성장해,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 여고에 입학을 하면서 드라마가 시작되고 있었다. 익숙한 불쾌감과 위기감 비슷한 것이 꿈틀하고 목젖을 건드렸다. 무시하려고 해도 화려한 영상과 익숙한 언어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지긋지긋해." 나는 코르크 마개를 드라이버로 파내면서 경멸적으로 쏘아붙였다. "누구나가 하나의 가치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하는 곳이니까. 스스로가 바보 같아서 견딜 수가 없어진다고." 압력을 위해 와인의 입구를 라이터로 가열하는 영상을 보고 있던 레이카가 대꾸했다. "네가 입시할 때도 그랬다는 거야?" 나는 입꼬리만 끌어올려 웃는다. 자신의 일부가 아닌 것을 경멸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 덕분에 시대정신을 훌륭하게 내면화했지."
코르크 마개를 반 정도 파내자, 압력이 약해진 마개가 손쉽게 아래로 밀려났다. 포크를 꽂아 넣고 와인을 따르자 부산물도 거의 묻어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코르크가 무너진 배의 판자처럼 떠다니는 유령 같은 술을 마셨다. 다음 날 간소하게 헤어졌을 때, 유일하게 일정이 없었던 나와 아오이는 카페에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테가 쓰는 글은 사무라이의 검 같아. 레이카도 남의눈을 신경 쓰지 않아서 대단해. 난 그 두 개를 전부 다 가지고 싶었어. 지금도 무척 부럽거든."
"레이카는 원체 주위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는 거예요. 선배의 섬세함과 다정함만이 포착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걸 놓치는 건 아깝지 않나요?"
"그럴지도 몰라." 아오이 선배는 우물거린다. 그는 4편의 글 중에서 '나, 일 못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다'라는 에세이를 썼다.
"에렌 선배는 태어날 때부터 슈퍼 컴퓨터고요. 올곧고 바른 사람이라 언제나 품위가 있지요."
"테는 스토익하고."
"저는 일을 제대로 못하면 죽어 버리거든요."
선배는 습관처럼 미소 짓는다. "나는, 아무것도 못해.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럴 리가요, 그가 자기 비하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나는 단호하게 다음 문장의 어미를 끊어 버린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끈기와 열정으로 성취한 것을 과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각자가 쓰고 있는 소설과 앞으로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석사 논문을 제출한 아오이 선배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창작 활동을 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아일랜드로 돌아가 새의 꽁지들을 들여다보며 요양을 하는 것이 먼저지만.
"테는 레즈비언 소설을 쓰고 싶은 거야?"
"저는 레즈비언 소설은 쓰지 않아요. 동남아시아 출신이라면 성별 관계없이 소비하지 않고요. 제가 사는 세계랑 너무 가까우면 멋대로 미화를 할 수가 없어서 곤란하거든요. 선배는 어떤 퀴어 커플이 취향이세요?"
"강인하고 마초적인 사람이지만 애인 앞에서는 약해지는 관계가 좋은 것 같아. 반대로 물러 보이는 사람이 관계를 믿음직스럽게 이끌어가는 관계라던지. 테는?"
"저는 여신과 돼지 새끼 삼 형제요."
"... 굉장한 조합이네. 그런 작품이 실제로 있기는 해?"
"베르세르크?"
"너무 끔찍한 묘사가 많이 나와서 읽기 어려울 것 같던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쓰는 여자들보다는 비위 좋게 읽을 수 있어요."
"왜 남성 작가들은 소설에서 여성을 끔찍하게 묘사하는 걸까?"
"괜찮아요. 저도 앞으로 남성들로 끔찍한 일을 할 거라서."
우리는 마주 보고 빙그레 미소 짓는다.
"나는 내 연애가 빈소가 되어 버린 만큼 창작에서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있는 힘껏 묘사하고 싶어."
"정말 아름다워요." 나는 잠시동안 나의 미학과 모럴이 조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다. 그 사이 선배는 진솔한 어조로 말을 이어간다.
"앞으로 퀴어 소설을 쓰고 싶은데, 문제는 어떤 사람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아.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 함부로 서술한 편견 때문에 사람을 상처 입히면 어떡해? 이것도 엄청 오만한 생각이라고 한다면 수 없지만."
"선배가 필드 조사를 하거나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모든 걸 정확히 서술할 필요가 있나요? 현실을 비관하기 위해서나 유토피아를 기획하기 위해서나, 목적이 먼저인 작가들의 작품은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물론 그렇지. 목적이 선행해야 한다는 건 아니야. 나는 누구에게나 미움받고 싶지 않고, 마찬가지로 내 소설도 미움받고 싶지 않은 걸."
"소설은 소설의 삶을 살겠죠." 최은영 작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책은 책의 운명을 살 것이라고? "그리고 문학은 누군가를 반드시 상처 입히는 것 아닐까요. 그걸 유일하게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장이 예술이기도 하고요. 저만해도 '날 죽여줘'하고 두 팔 벌려 뛰어들었는데 작품이 저를 비껴가면 괜히 시간 낭비한 기분이 든단 말입니다. 지금 사는 삶이 너무 만족스러우면 명상이나 하면 되지, 왜 소설 따위를 뒤적거려요?"
"그건 그대처럼 정신이 안정적인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 아닐까.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들은 위안을 얻기 위해서 허구의 세계에 기대기도 하니까."
"제 아무리 정신이 불안정하다고 해도, 문학을 읽고 죽어버리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그건 다른 곳에 죽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고, 모두를 상처 입히지 않는 소설은 이상하지 않나요? 대중을 상처 입히지 않는 소설이라니 수상하잖아요. 저한테는 선전물처럼 들리는걸요."
"방금 말은 좀 타격이 큰걸. 그래, 맞아.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는 건 오만해. 하지만 문학이 가질 수 있는 폭력성에 대해서도 자각할 수 있어야 해."
"동감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변화를 기대하고 소설을 읽어요. 카프카의 도끼가 절실한 거죠. 상처받고 변할 수 있다면, 그만큼의 화학 작용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 거죠. 그런 작품을 만나는 게 어디 쉽나요? 읽는다고 사람이 쉽게 변하지도 않고요."
"그래, 맞아.... 난 내 소설에 계속 젠더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더라고.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넣기도 하고."
"탁월하네요."
선배는 지방의회 선거에 도전하는 여성 정치인에 대한 소설이나, 일본과 한국의 관료직 남성들의 연애 이야기에 대해 적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나의 경우 집필에 관해서는 오로지 관능 소설에만 관심이 있다고 하자 선배가 기뻐하며 물어왔다.
"관능 소설은 어려울 것 같은데. 성을 엄청 아름답게 표현하거나, 혹은 에로 하게 표현하는 작가들이 있잖아. 테는 어느 쪽이야?"
"섹스는 원래 아름답고 더러우니까 두 개를 동시에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우리는 4시 반 즈음에 카페를 나섰다. 나는 28일 다시 만날 때 그를 위해 타로 카드를 가져오기로 했다. 그가 아일랜드로 돌아가면, 그를 다시 보게 되는 날은 일 년 후나 이년 후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을 휘두르듯이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상대방을 정말로 존중하는 대화를 하려면 섣부른 재단은 금물이야.' 나는 조금 후회하면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11월 이후가 되면 함께 적은 Zine을 차례차례로 번역할 예정이다. 오늘은 주변을 정리하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상)을 읽어야겠다! 1장만으로도 아주 황홀했으니까. 아오이 선배와의 대화가 가슴속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었기에 이곳에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