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의 폭력성을 자각하지 못한 당신의 페미니즘 따위 신용할 수 없어.
7월 어느 날,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 박물관에서 알게 된 지인에게서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그는 이목구비며 몸이며 성격이며 전부 동글동글 하고,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강단이 있는 다정한 대학원생이었다. 나는 그의 논문 발표 보고를 듣거나 함께 수업에 참관하면서 교류하게 되었고, 어느새 서로의 아픔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부담이 되는 이야기일 텐데 갑작스럽게 연락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날 오후 갑작스럽게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그는 자신에게 일 년 이상 걸쳐 성폭력과 데이트 폭력을 행사해 온 대학원생이 석사 논문 발표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사죄도 없이 모든 연락망을 일방적으로 차단당한 상황에서 그에게 항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이 발표회의 질의응답 밖에 없다는 말도 함께. '테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쩐지 분해서요.' 장문의 문자에서는 땀과 눈물이 촘촘하게 맺혀 있었다.
당신만 괜찮다면 발표회에 함께 동행하게 해 달라고 답장을 했다. 자신이 겪은 피해 사실에 대해 직접 항의하기 위해 가해자와 대면하겠다고 나선 사람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우리는 서로가 받은 성폭력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듣기에 퍽 참혹한 트라우마적인 내용을 유쾌한 어조로 연출하며 이어지는 대화는 늘 ’ 당신이 어리석었던 것이 아니야.’라는 다독임과 함께 끝나곤 했다. 나는 그가 며칠 동안 진정하고 숙고할 시간을 가지면 마음을 바꿀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메시지를 나눈 뒤 그가 괴롭힘 방지 위원회와의 상담을 위해 작성한 -사실상 사건 경위서에 가까운- 수십 페이지에 가까운 일지를 보내주었을 때, 나는 그제야 그가 느끼고 있을 감정의 무게를 실감했다. 바닥으로 쏟아져 내릴 듯한 텍스트를 읽고 있으면 그에게 폭력이 어떤 방식으로 강도를 높여 행해졌는지가 보였다. 그것이 어떻게 순식간에 타올라 꺼져버린 불처럼 성급하게 무마되었는지도.
발표회는 일주일 뒤에 열릴 예정이었다. 사실상 숙고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어떻게 해야 2차 가해를 피할 수 있을까?’, ‘어떤 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옳을까?’, ‘어떤 식으로 항의를 해야 교실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그가 연구에 관한 질문으로 엄격하게 한정된 질의응답 시간을 이용하고자 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논문 집필에 있어 자신의 노동력이 부당하게 이용되었기에 논문의 완성도를 확인하고 싶다는 것. 두 번째로, 그의 연구 주제가 젠더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남성으로서의 폭력성을 자각하지 못한 당신의 페미니즘 따위 신용할 수 없어.’ 피해를 입었을 당시 그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자신의 가해 사실에 대해 제대로 사죄조차 하지 않은 연구자가 젠더나 사회 규범에 대한 도전 따위를 운운하는 것은 확실히 비윤리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일로 느껴졌을 것이다. ‘자신의 성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남성 연구자의 젠더 연구라. 연구자 개인의 도덕성과 연구 그 자체를 동일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려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게 정당한 항의가 아니라 단순한 보복으로 그치면 어떡하지?’ 나는 자문했다. 섣불리 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대자보를 써 붙이자, 유인물을 배포하자, 항의 구호를 외치자, 1인 시위를 하자 따위의 이야기가 오갔지만 이야기는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한 채 허공을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대화를 진전시키기로 했다. “발표회에 가느냐 안 가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당신이 어떤 행동을 취하기를 원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울고 있는 상대방을 두고 명료한 어조로 대화를 이끌어가는데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피해 사실에 대한 이상적인 대응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사죄 요구나 형사 처벌 같은 상식적으로 당연할 것 같은 부분마저도 다르죠.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했다고 느낄 수 있을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
”사죄는 필요 없어요. 그런 걸 기대하기에는 너무 지쳐 버렸어요. … 그냥 면전에다가 대고 ‘네 연구 따위는 신용할 수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 그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 지었다. ”저는 그 장소를 완전히 휩쓸어 버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전략을 잘 세워야겠네요. “ 나는 볼펜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아시잖아요, 일본인들이란. … 분위기를 지나치게 잘 읽어서 침묵하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 벙어리가 되곤 하죠. “
우리는 다음 날 오전 7시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학교는 도쿄와 가까웠지만 폐쇄적인 지역에 있었으므로 이동 시간이 길었다. 내가 사는 곳은 발표회가 열리는 대학과 더욱 떨어져 있었기에 아침 5시 반에 역에서 출발해야 했다. 우리는 무사히 합류해 지하철에 함께 앉았다. 목소리를 죽여 구체적으로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질문의 내용과 배치, 질의응답에 손을 드는 순서, 변장을 할지 말지에 대한 내용으로 두런거리다가 그가 문득 이렇게 물어왔다.
“가장 페미니스트적인 항의 방식은 무엇일까요?”
“토마토를 던지는 거겠죠.” 나는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유리창을 깨부술 수는 없잖아요.”
“사실 테 씨가 토마토 이야기를 해서 G선생님과도 상담을 해 봤어요. “
G선생님은 우리가 함께 참관한 수업을 담당하던 교수다. 그의 정치색이 제아무리 리버럴 하더라도 토마토를 던진다는 말에는 질색하지 않았을까 하며 나는 조마조마 해졌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 토마토 말고 오렌지를 던지는 건 어때?라고 하시더라고요.”
“왜요?”
“일본의 참정당의 트레이드 색이 주황색이니까, 오렌지를 던져서 그 의미를 뺏어 오자고요.”
우리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오전 8시 반부터 참석해야 하는 미팅이 있었기에 우리는 캠퍼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작업을 시작했다. 발표회가 시작하는 시간 전까지 나는 별개의 업무로 정신이 없었다. "혹시, 발표를 듣고 질문이 생기면 질문해도 되나요?" 연구의 주제가 관심사와 가까웠기에 내가 묻자 그는 "당연하죠, 의문점이 있다면 마음껏 해 주세요."라고 호쾌하게 대답했다. 정신을 차리니 발표회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부랴부랴 캠퍼스를 이동해 교실로 향했다. 결국 준비해 왔던 선글라스와 모자도 쓰지 않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로 회장에 들어섰다. 그러자 자리에 앉을 때 휘청거릴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심장이 뛰었다.
발표자는, 그러니까 문제의 그 남자는 상상했던 것보다 왜소하고... 덤덤한 모습이었다. 그것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석사 논문의 수준이 경악스러울 정도로 조악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거세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선행 연구에 조금도 기여하지 못하는, 아니, 선행 연구가 될 자격을 갖춰서는 안 되는 수준 미달의 연구 발표를 면전에서 들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필기를 하는 손이 춤을 추는 것처럼 움직였고 한시도 빨리 오류를 바로잡고 싶다는 조바심에 다리가 덜덜 떨렸다. 마침내 발표가 끝났을 때, 심사에 관여했을지도 모를 교수들이 하나둘씩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흥미로운 발표 감사합니다.'라는 겉치레식 인사조차 생략한 뒤에 날카로운 질문들을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소속을 밝히는 것도 생략한 채 (시간이 아까웠다.) 질의응답에 돌입했다. 돌이켜 보았을 때, 그 연구는 연구 질문을 설정하는 방식, 연구 질문에 제창한 개념에 대한 정의, 연구 방법론, 선행 연구 검토, 이론적 검토, 문헌 조사의 대상, 자료의 시기 구분과 분석틀, 분석에 대한 소고, 결론, 한 마디로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불명확한 개념 정의와 성급한 환원주의적 오류가 난무했다. 내가 최소한 확인해 두고 싶은 지점을 2배속으로 돌려진 강연자처럼 질문하는 동안, 옆에 앉아있던 그는 조용히 필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마지막 질의 응답자였다. 그는 손을 든 뒤에 마이크를 잡고 조그만 목소리로 개선되어야 할 점을 조목조목 짚기 시작했다. '특정 간행물 하나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에 연구 제목에 분석 대상물의 표기명을 기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정확한 시기 구분을 부제에 언급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디테일한 지적들이 상당히 길게 이어질 즈음, 그는 조금 머뭇거린 뒤에 덧붙였다. '... 그리고 1년 전 제게 지속적으로 성폭력과 데이트 폭력을 행사해 오셨는데, 남성 신체에 대한 연구자이자 사건의 당사자로서 본인의 가해 사실과 어떻게 마주해 왔는지에 대해서도 묻고 싶습니다. 또 제게 언제 제대로 된 사죄를 하실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려 주시길 바랍니다. 위 다섯 가지 질문에 대한 응답을 부탁드립니다.'
장내는 무슨 짓을 해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침묵에 빠졌다.
문제의 발표자는 질의응답이 끝난 후 소리 없이 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연구실에 자신의 가방을 놔둔 채 몇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연구실에 함께 앉아있다가, 결국 대화하기를 포기하고 캠퍼스를 나섰다.
"이렇게 도망가다니. 끝까지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할 수는 없었네요." 분통을 터트리는 그와 점심을 먹으며 내가 위로의 말을 건네자, 그는 뜻밖에도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 그렇지만... 이제 됐어요! 얼마나 대단한 논문을 썼는지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한테 너덜너덜하게 얻어맞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통쾌해졌어요." 그의 두 눈이 기쁜 듯이 휘어졌다. "함께 와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나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 않을까 싶다.
곧바로 도쿄로 돌아가기 아쉬웠으므로, 우리는 열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유원지로 향했다. 놀이기구는 하나도 타지 않고, 이전의 숨 막히는 공기를 잊고 햇빛이 인공물처럼 쏘아지는 내부를 한가롭게 산책했다. '테 씨의 답장을 받았을 때는 반신반의했어요. 제 이야기를 듣고 끝까지 도와주겠다고 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진짜로 여기까지 와 주실 줄은 몰랐어요.' 그런 일을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내가 대답 대신 미소 짓자 그는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저는 저 대신 화 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게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함께 화 내주길 기대한다고 생각하더군요. 저는 그냥... 당신이 저를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기뻤어요.'
25.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