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5.

텍스트에 대하여.

by Da테

글.


오늘은 저녁에 무심코 마신 카페오레 한 잔의 무시무시한 저주로 꼬박 밤을 새 두 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커피를 두 잔 정도 마시자 오후 5시까지 그럭저럭 버텨주었던 몸이 저녁을 먹자마자 10분 단위로 일을 바꿔가며 정신 사납게 굴기 시작했다. 다그치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을 땐 전공책을 꺼내 읽는 것만큼 특효가 없다는 걸 깜빡 잊은 나의 전적인 과실이다.


우연히 잠이 희박한 날이면 숨겨두었던 본성이 얇아질 대로 얇아진 이성의 외피를 뚫고 나와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아,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본심을 솔직하게 늘어놓아줄 것이라고 기대하다니. 단지 살아가기 위해 글쓰기가 필요한다는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심장 밖으로 꺼내 기술할 명분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왜 나는 책상 위에 앉아 수십 번의 실패를 거친 뒤 보복이라도 하듯 고집불통으로 얽혀있는 실타래를 푸는데 여념이 없을까. 왜 내게는 알렉산더의 검과 같은 결단력이 없는 것인지.


말.

나는 (비교적) 끊이지 않는 다일로그가 생명인 공간, 따라서 언어가 풍부할 수밖에 없는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느날 스무 명 남짓이 각자 무리를 지어 열띤 어조로 토론을 주고받고 있는 강의실 안에서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사방에서 대화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르게 느껴졌는지, 열성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들이 서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고 있기는 할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어딜 가도 텍스트가 있어.' 나는 묘하게 들뜬채로 각성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나의 생각을 몇 번이고 고쳐 썼다. '사방에서 말이 쏟아져내려. 나는 왜 내가 이런 공간을 원해왔다는 사실을, 그 무엇보다 열렬히 원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너무 많은 대화가 도처에 있어. 그날부터 강의실에 앉아있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한다. 그러나 나 역시 어느 쪽인가 하면 '지나치게 많이 말하는 사람'이다.


작금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서 닥치는 대로 아무 문장이나 읽으려고 애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침대로 뛰어 들어가서 또 다른 정보들을 읽는 하루하루의 반복이다. 일 때문에 읽어야 하는 것, 개인 연구 때문에 읽어야 하는 것, 시세를 따라잡기 위해 읽어야 하는 것, 글을 쓰기 위해 읽어야 하는 것,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읽는 것... 그다음에는 '단순히 살기 위해 읽어야 하는 것'. 내 발을 땅 위에 붙이기 위해, 호흡을 갈아 끼우기 위해 읽는 글들. (지금은 올리버 색스고, 이전에는 비비언 고닉이었다.)


읽고 있지 않을 때의 머릿속 공백의 자리에는 무수한 대화가 채워진다. 말하고(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당신은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웃고(이 따위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게 어처구니가 없네!), 또 말하고(당신 말도 일리가 있어. 이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 어제 새로 배우게 된 것 중에서...), 그 과정에서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흥분하고(집어치우라고 해! 그 따위 태도라니!), 또 끊임없이 말한다. 침묵이 길어질 때도 있지만, 상담에 응할 때조차 어쨌거나 나는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


말하기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삶이 지나치게 늘어진다 싶으면, 글을 써 시간을 접어 달리면 된다.


아니. 글은 오직 시간을 접고 또 접어야 할 때만 내게 쓸모가 있다.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 나는 가능한 한 삶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 (저녁 일찍 잠들어 아침 해와 함께 일어나는 것은 장기간의 숙제였다. 그러나 아침 8시에 일어나 평소보다 길어진 하루를 몇 번이나 보내본 뒤 내가 내린 결론은, '애초부터 난 이렇게까지 긴 삶을 살고 싶지 않아'한다는 사실이었다.)


스스로의 긴장, 심장 소리, 떨림을 먹고살아야 하는 것이 운명이라면 인간은 끊임없이 진동해야 한다. 우리 정신은 그 계기판을 해석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은 집중력의 문제다.


하루는 이렇게 적었다. '노래에 재능이 있었다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겠지. 춤에 재능이 있었다면 춤을 췄을 거야. 그런데 그 두 개가 없으니 내가 이 따위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


그러나 나는 내가 글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줄 알고 있다.


사랑에 대해 적고 (새로운 태양이 내 몸 안에서 차오른다.), 내키는대로 지껄일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을 얻고(이제 마음껏 절망할 수 있어...), 철저히 혼자만의 실패로 끝날 수 있는 그 모든 기회들을 나는 쓰고, 또 쓰고.


어떤 진실에 근접할 때까지 시간은 참을성 있게 흘러가고, 그곳에 얼마만큼의 시차가 존재하든, 우리가 겪는 신경적 손상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우리는 글로서 폐허와 천국을 동시에 목도할 수 있다. 언제까지나. 우리가 충분히 끈질길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 그것은.

가장 낮고, 어둡고, 외로운 그곳으로 갈 수 있다면. 그곳에서,

뒤틀리고 어리석게 눈이 먼 내게도 한 줄기 빛이 내린다면. 그것이,

끝내는 추락 하여 소멸해갈 빛이라도 좋으니. 그 별이,

이미 내 가슴 언저리에 와 있기를.



2025년. 06. 25.

쓰는 것을 멈추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