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8.

by Da테



언젠가 누군가에게 시를 선물하며 말한 적이 있었다. ‘너에 대해서 적는 것, 정말 하나도 어렵지 않았어.‘ 정말 그러했다. 사람에 대해 적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지만 기어코 해내고 마는 일들 중 하나였다.


나는 아직도 당신에 대해 쓴다.

당신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반복해 온, 그리하여 물러질 대로 물러진 경구였다.

이 글이 훗날 당신을 찌르게 되지 않았으면 한다.



오랜만에 10시간 이상 잠을 잤다. 평생 소화 시키지 못할 죄책감에 입 맛이 썼지만 몸이 만족스럽게 기지개를 켜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상쾌함이 느껴지는 동작으로 일어나 (상상으로) 두 팔을 하늘에 치켜들며 생각했다. ‘오늘은 글을 써야 하는 날이야!‘ 아무렴, 어련하시겠어. … 중얼거리며 내 몸에 당최 어떤 영향력을 생사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진 영양제를 입 안에 털어 넣는다. 잠에서 깨자마자 어제 옛 아르바이트 처에서 알게 된 지인이 바지 지퍼가 열렸다고 알려준 순간이 생각난다. 부끄러움과 황당함에 비명을 지른다!


’삐야 잘 잤어요?‘ 오전 10시 32분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듣기에 생소한 애칭이다. 곰곰이 되짚어 생각해 보면 예쁜이에서 예삐로 변모했던 애칭이 한계까지 몰아붙여진 결과인 것 같았다. 나는 보이스 메시지를 켜서 한껏 가르랑 거린다.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답장이 쏟아진다. ‘우리 아기 신생아 고양이 되었어? 귀염둥이, 방금 태어나서 삐약삐약 하고 있어요! 우리 공주 쓰다듬어볼까?’ 일분 간의 침묵 후 하나 더. ‘아가, 나가지 말고 있어요. 바깥은 위험해요!‘


나는 한껏 배가 부르고 만족스러워진다. 채팅창을 위로 올려보면 벽 위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도마뱀 사진 한 장, 체크무늬 담요를 배경으로 찍힌 강아지만큼 커다란 키위새 사진 한 장, 야자수가 자라난 말끔한 잔디와 수영장의 이국적인 풍경 사진 한 장이 있다. 보고 싶다는 메시지에 담긴 애절함에 비해 사진의 풍경이 너무나도 별천지라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는 지금 베트남에서 휴가를 즐기는 중이다. 그가 건너편에서 물에 잠겨 있는 시간을 셈해보면 어서 도시에서의 삶을 청산시키고 바다로 돌려보내주어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된다.


베트남이라는 공간에 비교하면 내가 머물고 있는 도시는 변함없이 안정적이고 뜨겁다. 아이들은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신생아적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몸을 끌고 자전거를 탄다. 한층 무질서해진 신주쿠는 여전히 30분 이상 걷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참담한 기분으로 만든다. 양산을 쓴 사람들은 더위로 수척해져 금방이라도 욕설을 쏟을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


’테 씨. 업무 중에는 누구나가 실수를 하니 너무 자책할 필요 없어요.’ 어제는 그런 메시지를 받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는 건 주책맞아 보일까 싶어 요정 모양 이모지를 보냈다.


어쩌고 저쩌고 선발을 위한 면접이 나날이 가까워지고 있는데도 일기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중압감 때문에 잠들기 어렵다고 느꼈는데, 일수가 가까워지니 남다른 베짱이 생겨난 듯했다. 며칠 전에는 아빠가 하모니카 연주를 녹음해 보내 주었다. ‘너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야.’ 그날을 기점으로 슬그머니 자라난 미소가 나를 한결 편안하게 해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토록 명확한 신념과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 네가 흔들린다면, 그것만큼 인상 깊은 일이 또 어디 있겠니?‘ 그저께 잠이 오지 않아 공책을 펼친 나는 적었다. ’이건 누굴 위한 두려움이냐? 네가 믿는 가치를 위해서라도 절대로 비굴해지지 마라.‘ 그제야 긴장할 필요 없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납득이 갔다. 눈을 감았다. 안심감이 어렵지 않게 동침해 주었다.


과거에 대해 쓰고 있다. 나에 대한 더 나은 설명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처음에는 이름 모를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썼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느낀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쓴 글의 독자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것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질문을 품는 것을 멈추지 않을 수 있다면. 이제 나는 오른팔로 턱을 괴고 창문을 응시한다. 질문할 수만 있다면. 쓸 수만 있다면. 대답하고 싶은 질문을 가슴속에 품을 수만 있다면. 아우슈비츠에서의 삶을 견디게 하고 낮과 밤을 무용하게 만드는 그 몰입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느껴야 한다는 법칙을 내가 잊지 않을 수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쓰고 말하는 것은 실존적인 고통에서 나를 몇 번이고 건져 올려 주었다. 나의 발화가 평가받는 시간이 찾아온다고 해서 그 사실이 변하기야 하겠는가? 정말이지, 전혀,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


계엄령 해제 전에 적었던 3월 25일의 일기.


새삼스레 인생의 개인적인 목표를 상기시켜보자면, 그것은 아름다운 은유를 발견해 내는 것에 있다. 삶 자체를 그러한 은유와 묘사, 해석의 총합으로 다듬는 것에 있다.

또 푸코는 문학을 '중얼거림', 즉 '실타래'를 감고 푸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이 옳다... 나는 계속해서 비슷한 색과 모양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있다. 나는 아름다움의 편에 설 테다. 그리고 …


우리는 마땅히 불을 나눠 들어야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등장한 이후에 불은 공공재가 된 지 오래니까.


2025년. 07. 18.

인간이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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