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까이 있는 것들
욕심인 줄 알면서도, 나는 쉽게 멈추지 못한다. 내 바람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때조차, 뒤늦은 후회만 남긴 채 그렇게 또 하루를 배운다.
얼마 전 처조카가 큰 수술을 받았다. 척추 측만증 진단을 받고도 고3 수험 생활을 꿋꿋이 버텨냈고, 의료 사태로 인해 수술이 미뤄지는 시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수술대에 올랐고,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 마음 졸였던 가족 모두가 비로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병간호는 처제가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남자의 힘이 필요한 일이라 처제 대신 동서가 곁을 지키게 되었다. 수술 직후의 아이는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었다. 15분마다 자세를 바꿔줘야 하고, 용변조차 혼자 해결할 수 없었다. 부녀 사이의 어색함이 있을 법도 하지만, 그들은 묵묵히 그 시간을 견뎌냈다. 말보다 행동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말없이 손을 잡아주며 함께 버티는 모습이 참 대단해 보였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지 서로가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 아이가 떠올랐다. 우리 딸 역시 치열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 아침 8시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기까지 하루 대부분을 공부로 보낸다. 수업과 시험, 자기 공부가 이어지는 숨 가쁜 생활 속에서 편히 잠을 자는 날도 많지 않다. 평소라면 하루 종일도 잘 만큼 잠을 좋아하는 아이인데, 지금은 그 잠조차 마음 놓고 누리지 못한 채 묵묵히 버티고 있다. 그런 딸을 보면 안쓰럽고, 또 대견하다.
그래서 나는 딸이 조금이라도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라며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따뜻한 밥 한 끼가 하루를 버틸 힘이 되어줄 거라 믿으며, 밥상을 차린다. 하지만 현실은 늘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 먹지 못하고 나가는 날이 대부분이고, 때로는 아예 쳐다보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재촉한다. 특히 “먹겠다”라고 해서 정성껏 준비했는데 결국 손도 대지 못한 채 나가버릴 때면, 나도 모르게 서운함과 분노가 뒤섞여 올라온다. 바쁜 아침 시간을 괜히 쏟아버린 것 같은 허탈함, 서운함이 함께 밀려온다.
그리고 결국 못난 말을 내뱉고 만다.
“아침 차려 달라 하지 마.”
그 말이 던져진 짧은 순간, 이미 후회가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섰고, 문이 닫히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남겨진 식탁 위에는 먹지 못한 밥과, 나의 후회만이 남아 있었다.
마음이 아프다.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온 아이 아닌가. 누구보다 자신의 몫을 성실히 버텨내고 있는 아이에게, 그깟 아침 한 끼에 얽힌 내 서운함을 이기지 못해 그렇게 날카로운 말을 던질 필요가 있었을까. 참,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불교에서는 “모든 고통은 욕망에서 비롯된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이루어진 뒤에도 만족하지 못해 더 큰 욕망을 좇는다. 그리고 결국 또 다른 고통 속으로 들어간다. 생각해 보면 나의 분노 역시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오늘날 인류의 풍요를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라 말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풍요의 그림자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눈물과 희생이 늘 함께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고통과 노력이 숨어 있다. 그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조심스러워져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중요한 것은 욕망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욕망 없이 살 수 없다. 다만 그 욕망이 사랑을 가리고, 누군가를 아프게 할 만큼 커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아는 마음, 그 마음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아픔을 그들의 노력 부족으로 단정 짓기보다, 그들 또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나 역시 사랑이 욕심으로 변하기 전에, 내 감정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 전에 한 번 더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욕심인 줄 알면서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 부족함을 자각하며 멈춰 설 수 있는 용기만은 잃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