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까이 있는 것들
자유를 가장 많이 말하는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
지난해는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사건을 통해 시민들은 유난히 깊은 불안을 경험한 한 해였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그 기술을 믿고 맡긴 우리의 일상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SK텔레콤의 고객 정보와 유심정보가 유출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유심 교체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긴 줄에 서야 했다. 교체 대기 시간은 길어졌고, 혹시 모를 피해를 막기 위해 각종 인터넷 거래를 차단하며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서 보냈다. KT 고객들 역시 기지국 해킹 사건으로 자신도 모르는 소액 결제 피해를 걱정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온 국민의 이커머스’를 자처하던 쿠팡에서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사고 그 자체보다 이후의 태도였다.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대응, 피해자에 대한 공감 없는 말들, 여기에 과로사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사와 퇴직금 지급 규칙을 둘러싼 불법적 대응까지 드러나며 국민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시민들은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회원 탈퇴와 불매 운동으로 불쾌함을 표현했다. 나 역시 주저 없이 쿠팡 회원 탈퇴를 했고, 아내에게도 더 이상 이용하지 말자고 말했다.
그러나 그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 집 현관 앞에는 여전히 거의 매일 쿠팡 상자가 놓여 있었다. 앞집에도, 아파트 단지 곳곳에도 쿠팡 택배는 끊이지 않았다. 분명 불쾌함과 분노는 존재했지만, 그 감정과 편리함은 서로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공존하고 있었다.
쿠팡이 주는 편리함과 시민들이 느끼는 불쾌함은 별개의 개념처럼 취급되고 있었다. 불편함은 감정으로만 남고, 편리함은 행동을 지배했다.
우리는 자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자신이 가진 유·무형의 가치를 침해하는 그 어떤 것도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자유는 언제나 정의의 편에 있고, 자유를 말하는 사람은 도덕적 우위를 점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자유를 지킨다는 명분은 종종 자유를 제한하는 데 사용된다. 지난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국민의 자유를 제약하는 계엄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것을 자유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믿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자유는 정말 그렇게 단순한 개념일까.
내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외면하는 것이 자유일까.
내가 원하는 자유는 과연 그 어떤 제약도 없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충분히 멈춰 서 본 적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성경의 『출애굽기』에는 노예의 삶을 살던 유대인들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홍해를 건너 광야에 이른 그들은 혹독한 현실 앞에서 신을 원망하고, 급기야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그리워한다. 자유를 얻었지만, 자유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노예의 삶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자유의지는 과연 인간에게 본능적인 것일까, 아니면 끊임없이 훈련해야 하는 능력일까.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에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는 자유롭지만, 사회를 이루는 순간 법과 제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구속을 경험한다는 의미다.
혼자만의 삶이라면 온전히 나만의 자유의지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 속에서 수많은 자유의지가 충돌하는 한, 자유는 언제나 조정되고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자유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외친다. 누구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처럼 증명되지 않은 이념을 앞세운다. 그 구호 속에서 그들은 권력과 지위를 얻고 더 넓은 자유를 누린다. 반면 그 말을 믿고 따르는 시민들은 그 구호에 스스로를 묶은 채, 자유의 본질을 잊고 살아간다.
누군가의 자유로운 삶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내려놓는 삶은 과연 자유로운 삶일까.
우리는 이 질문을 너무 쉽게 지나쳐 왔는지도 모른다.
쿠팡이 주는 작은 편리함 앞에서 우리는 분노를 유보하고, 판단을 미루고, 스스로의 선택을 합리화한다. 그렇게 우리의 자유의지는 조금씩 편리함이라는 이름의 사슬에 묶여간다.
자유는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때로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를 요구한다.
이제는 자유라는 말의 화려한 외피가 아니라,
그 자유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