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못한 자의 변명

내 가까이 있는 것들

by 쵸코 아빠

처음엔 웃자고 보기 시작한 예능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경기를 웃지 않고, 꽤 진지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골 때리는 그녀들〉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은 이제 단순한 오락 프로그램을 넘어, 일반 스포츠 리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파일럿 방송 당시만 해도 여자 연예인들이 축구공을 쫓아다니며 실수를 연발하는, 가벼운 웃음을 위한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공은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패스는 끊기기 일쑤였으며, 골대 앞에서는 허둥대는 모습이 반복됐다. 그 모든 장면은 ‘축구’라기보다는 ‘축구를 흉내 낸 놀이’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프로그램은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되었다. 출연자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정교해졌고, 포메이션과 전술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등장했다. 이제는 웬만한 축구 동호회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기술과 경기력을 보여준다. 리그전과 토너먼트 컵 대회를 병행하는 운영 방식은 프로그램에 실제 프로리그와 같은 긴장감과 서사를 부여했다. 승패가 쌓이고, 라이벌 구도가 생기며, 한 경기 한 경기가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분명 출연자들의 축구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있다. 이들은 예능을 위해 축구를 ‘하는 척’ 하지 않는다. 각자의 본업으로 이미 바쁜 일정 속에서도 훈련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몸이 굳어가는 나이에도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반복 연습을 마다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드리블과 패스가 점차 안정되고, 실패하던 슈팅이 어느 날 골망을 흔드는 순간은 단순한 연출이 아닌, 노력의 결과로 다가온다.


그 노력이 경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 시청자는 웃음 대신 응원을 보내게 된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장면, 실수 후 자책하다 끝내 해내는 모습, 팀을 위해 한 발 더 뛰는 장면들은 스포츠가 주는 고유한 감동을 만들어낸다. 이 프로그램이 더 이상 ‘여자 연예인 축구 예능’이라는 수식어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열정을 쏟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일은 호기심과 흥미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설렘은 점점 희미해지고 반복과 권태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이 상투적으로 들릴 만큼 자주 쓰인다는 사실은, 초심을 지키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일 것이다.


글을 쓰는 일도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세상이 새롭게 보이고, 하고 싶은 말이 넘쳐흐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자체가 즐겁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이야깃거리가 줄어든다. 이미 했던 말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독자에게는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고, 그런 부담은 점점 글을 쓰는 손을 무겁게 만든다.


그렇다고 억지로 글을 만들어내는 것이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글이 의무가 되는 순간, 문장은 살아 있는 생각이 아니라 결과물로만 남는다. 써야 한다는 이유로 쓰는 글은 대개 스스로도 만족시키기 어렵다. 그래서 글을 계속 쓴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내는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를 유지하는 문제에 가깝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제대로 미치지 않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떤 분야든 진정한 성취는 적당한 관심이나 평균적인 노력으로는 어렵다는 냉정한 현실을 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미친 듯이 몰입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때로는 주변의 시선을 견뎌내야만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뜻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에 초지일관 열정을 쏟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세상은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 왔다.

그리고 오늘도 영화 〈아마데우스〉의 살리에르처럼, 끝내 미치지 못한 자의 자리에서 그 광인들의 삶을 동경과 시기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나의 평범함을 조용히 변명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