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씻는 작은 비

내 가까이 있는 것들

by 쵸코 아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WBC 예선전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극적인 승부 끝에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일본과 대만에게 잇달아 패하면서 상황은 절망에 가까워 보였다. 남은 길은 하나뿐이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호주를 반드시 이겨야 했다. 그것도 여러 조건이 맞아야 가능한, 바늘구멍 같은 확률이었다.


경기는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이어졌다. 마지막 타자의 타구가 내야 높이 떠올랐다. 1루수의 글러브에 공이 들어가는 순간, 더그아웃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환호와 함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라운드 위에서 흘러내리던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긴장과 부담,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버텨 온 시간들이 한꺼번에 풀려 나오며 흐른 눈물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중들도, TV 중계석의 해설자들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기쁨이 너무 커지면 사람은 웃기보다 먼저 울게 되는 모양이라고.


어릴 적에는 남자가 눈물을 보이는 것을 부끄러운 일처럼 여겼다. “남자의 눈물은 세 번뿐이다.” 태어날 때 한 번,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한 번,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 한 번. 과장된 말이지만 그 말속에는 울음을 참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의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에도 쉽게 울지 못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감정이 더 이상 마음속에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흘러나오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흘린 눈물은 묘하게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마음 깊은 곳에 쌓여 있던 무거운 것들이 함께 흘러내리는 느낌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Up에는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 칼은 평생을 함께했던 아내 엘리를 떠나보낸 뒤 둘이 함께 보았던 사진첩을 조용히 넘긴다. 사진 속에는 두 사람이 함께 지나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행을 꿈꾸던 젊은 날, 소소한 일상을 함께 웃던 순간들, 그리고 서로의 곁을 지켜 주던 긴 세월이 사진 속에 남아 있다. 칼은 그 사진들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삶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이야기였어.”


그 말속에는 함께 걸어온 시간과 추억, 기쁨과 슬픔이 모두 담겨 있다. 사람의 삶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남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스며 있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삶의 일부 때문에 울 필요가 있는가? 삶 전체가 눈물을 부른다.”


눈물은 단순한 슬픔의 표현만은 아니다. 기쁨이 너무 커 가슴이 벅찰 때도 사람은 울고, 슬픔이 너무 깊어 마음이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사람은 운다. 눈물은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이 더 이상 머물지 못할 때 저절로 흘러나오는 가장 정직한 표현인 것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삶은 수많은 눈물의 순간들로 이어져 있다. 어떤 눈물은 아픔으로 남고, 어떤 눈물은 따뜻한 기억이 된다. 기쁨의 순간에도 슬픔의 시간에도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조금씩 비워 내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삶이 아직 맑고 건강하다는 신호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든 청년이든 노인이든, 마음이 살아 있는 사람은 여전히 눈물을 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방울의 눈물 속에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무게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눈물은 마음 깊은 곳에 쌓인 것들을 씻어 내며, 우리의 삶을 다시 맑게 하는 조용한 조력자로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