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놓는 연습 그리고 부모를 떠나는 연습
난 K장녀 아니고 그냥 장녀다.
부모님이 내게 “네가 장녀니까 책임져라”라고 말한 적은 없다.
그렇게 장녀로서 책무감을 지어준 분들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장녀라는 단어는 스스로에게 막중한 책임감을 얹는다.
그렇게 효녀도 아니었다. 엄마 아빠랑 같이 웃고 떠들고, 때론 소리치며 싸우기도 하고, 일방적인 짜증도 내지만 엄마 아빠가 안쓰럽고 눈물이 나기도 하는 평범한 딸이다.
그런데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는 건 여전히 어렵다.
사실 나의 인생에서 결혼이란 굵직한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조율의 연속이다. 예식장, 집, 상견례, 예물 예단 등등.. 부모님과 상의할게 투성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새로운 역할이 등장한다.
바로 나의 남자 친구이자, 예비 남편!
부모님과 나, 그리고 예비남편과 나.
이렇게 두 관계 속의 나의 역할에서 혼돈을 겪는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 서 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있는 우리 엄마 아빠는 종종 이렇게 말하셨다.
“딸이 시집가는 거랑 아들이 장가가는 건 완전히 다르다.”
어릴 땐 그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결혼은 똑같은 결혼이지, 뭐가 그렇게 다를까 싶었다.
그런데 요즘 엄마 아빠를 보고 그 말이 조금씩 이해된다.
난 내가 선택한 가족이 될 남자와 결혼을 준비하며 설레어하지만, 엄마 아빠는 처음으로 자식을 떠나보내는 경험을 하고 있다.
심지어 나는 장녀이지 않나.
자식 결혼을 처음 겪는 부모. 그리고 그 첫 번째가 딸.
그들이 부모로서 겪어온 수만 번의 성장통 위에
또 한 번의 거센 변화가 찾아온 거다.
나는 나대로 엄마 아빠의 낯선 모습에서, 나의 역할에 대한 우선순위에서 혼돈을 겪지만, 어쩌면 엄마 아빠도 비슷한 만큼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닐까.
때로는 자꾸 “왜 날 믿어주지 않을까”를 생각하지만, 어쩌면 부모는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놓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딸을 보내는 일은 단순히 결혼식을 치르는 일이 아니라, 관계의 모양이 바뀌는 일일 테니까.
나도 부모가 되어보면 그 마음을 알게 될까.
내 아이가 자기 가정을 꾸리겠다고 말하는 날,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지금의 엄마 아빠처럼 온갖 걱정과 응원을 동시에 품은 표정일까. 참 모순적이겠다.
결혼 준비는 드레스와 식장을 고르는 시간이 아니라, ‘딸’에서 ‘아내’로 서서히 이동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시에,‘부모’도 또 한 번 자식을 놓아주는 연습을 하는 시간일 것이다.
아마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완전한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정작 나도 부모를 포용할 여유가 없던 아직 덜 큰 어른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부모의 이해를 바라고 있었던걸 지도.
엄마아빠에게 이제 덜 짜증 내야지.
조금 덜 예민해지고, 더 이해해 나가자. 찬찬히 기다려주자.
엄마 아빠도 엄마 아빠가 처음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