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학생답게. 그 시절 모녀의 등교 전쟁
중 고등학생일 때 다른 또래 애들처럼 화장도 해보고 싶었고 교복 치마를 줄여 입고 다니고 싶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학생은 학생답게' 란 신념이 있던 분이라 화장은 물론 연한 갈색의 염색도 절대 안 된다고 했었다.
한창 사춘기를 겪는 딸이었던 나는 엄마가 유독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었다. 등교한다고 집에서 나오자마자 몰래 치마를 두 번 접어 올려 학교를 다녔었다. 수선한 것보단 꽤나 우스꽝스러운 치마를 입고 다녔을 것이다.
언젠간 성인이 된 후 TV를 보는데 금쪽 상담소에서 사춘기 자녀의 반항행동 장면이 나왔다.
"엄마, 난 그래도 사춘기 양호한 편이었잖아. 반항도 잘 안 하고 그렇지?"
"무슨 말이야, 그렇게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단 말이야?"
"엥 그럴 리가. 나 정도면 평탄하게 지나간 거지! 내가 비행행동을 했어 뭘 했어~?"
"그렇긴 하지. 그래도 평탄한 수준의 사춘기는 아니었다. 너 엄청 까탈스럽고 까칠했어! 비위 맞추기 힘들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등교 준비 시간마다 전쟁통이었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 것, 교복을 입기 전 스타킹을 신는 것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왜 그렇게 짜증이 났던 것일까. 아침부터 분이 안 풀려 쉬익 쉬익 거리며 등교준비를 할 당시 나 홀로 전쟁인 줄 알았지. 덕분에 엄마도 늘 전쟁을 치렀을 것이란 걸 어른이 되어 이해했다.
아침을 잘 안 먹는 딸이 빈속으로 학교 가는 것을 굉장히 불편해했던 엄마는 한 숟가락이라도 먹이려고 했었다. 김에 밥을 싸서 하나둘씩 말아놓거나, 고기 좋아하는 딸이니 햄 반찬 해두면 먹을까 싶어서 손 많이 갔던 베이컨 말이를 해두는 등 엄마도 하루하루 치열한 전쟁을 치렀던 것이다.
"이거 하나라도 먹고 학교 가~" 이 말 한마디에 쉬익 쉬익 거리며 뜸 들였던 화가 폭발했던 순간이 많았다.
"아, 안 먹는다고 했잖아!!! 늦었어!! 나 갔다 올게!!"
엄마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쾅 하니 현관문을 닫고 등교를 했던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그때 엄마의 표정은 어땠을까. 지금 생각하면 괜스레 울컥해진다.
어느 날 괜히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염색을 해야겠다며 투덜거렸다. 또다시 금단의 염색이란 단어를 꺼냈던 것이다. 엄마는 그간 쌓아왔던 것이 폭발했는지, 한 마디 외치며 소리를 빼액 질렀다.
"염색 절대 안 돼!! 너 머리 또 염색한다 어쩐다 얘기하기만 해 봐. 20살 되고 나서 네가 머리를 신호등 머리로 염색하던지 삭발을 하던지 네 마음대로 해!!"
당시엔 억울하고 화가 나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등교 준비를 했었는데 지금은 염색할 때마다 회자되어 엄마랑 깔깔 거리며 웃는다. 삭발은 그렇다 치는데 신호등 머리란 발상은 어디서 나왔던 것인가.
며칠 전, 엄마에게 셀프 염색을 부탁하려고 색상을 고르던 중 괜히 "아 더 나이 들기 전에 탈색이나 해볼까."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탈색은 무슨, 너 관리할 때 또 짜증 낸다 분명~ 얌전한 색으로 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 성인 되면 신호등 머리 색으로 해도 뭐라 안 할 거라면서?"
역시 엄마는 어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