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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ika Jan 09. 2024

못생겨도 괜찮아

[그리스 일상] 나의 그리스식 시골 밥상 1

오늘도 집 앞 텃밭에서 애호박, 가지, 토마토 등 오늘 일용할 양식을 한 아름 따오신 어머님께서 물으셨다.


"한국에서는 애호박 1킬로에 얼마 정도 하니?"

"음.. 한국에서는 무게로 안재고 한 개 당 가격을 매겨요."라고 말씀드리니 

"호박마다 사이즈와 무게가 천차만별일 텐데 어떻게 개수로 파니? " 

아차, 그러고 보니 여기선 모든 야채와 과일들을 무게로 팔고 있던 상점 장면이 순간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호박마다 규격의 비닐 포장을 입혀 기르기 때문에 크기가 다 비슷해요."라고 나는 대답을

하였으나 나와 시부모님의 통역 담당인 내 짝꿍은 차마 그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렇게 인위적인 방식으로 기른 야채를 아들이 한국에서 먹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면 엄마 마음이 무거질 것 같다나. '별 게 다 걱정이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 엄마가 모르셨으면 하는 진실들이 있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는 애호박을 플라스틱 필름으로 꽉 끼어 입혀 길러 모양과 크기를 획일화시키고, 불필요한 쓰레기를 엄청나게 만든다는 불편한 진실. 




나도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농산물들은 원래 고른 사이즈에 비슷한 모양으로 자라나는 거고, 규격화된 패키지에 예쁘게 포장되어 나오는 게 당연한 건 줄 알았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견문이 높아지며 야채, 과일들은 원래 크기나 모양이 제각각 클 수 있다는 걸 보고 배우게 되었다. 이제는 제로 웨이스트, 유기농, 친환경 등을 나름 실천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만. 상추를 세척하는데 그 안에서 아삭아삭 맛난 잎사귀를 잡수시던 벌레가 꾸물거리며 기어 나오거나, 잎채소 한포기를 씻는데 잎사귀 하나씩 떼어낼 때마다 그 안에 숨어있던 집게벌레들이 튀어나오면 기겁하고 비명을 지르며 몸서리를 쳤다. 난 영락없이 산업화와 도시화에 길들여진 무지한 소비자였으며, 자연과 환경을 말로만 사랑하는 가식 덩어리였던 것이다. 




어머님표 텃밭 채소

몇 년 전 Ugly Us라는 '못생긴' 모양 때문에 판매되지 못하고 폐기 위험에 있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형식의 유통 플랫폼에서 야채를 정기 배송받아서 먹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제철 채소에 친환경으로 자란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해서 아직도 (한국에 있는 동안은) 꾸준히 애용하고 있다. 야채든 과일이든 밭이나 나무가 공장도 아니고, 생긴 대로 다양한 모양으로 자라나는 게 당연한 것을 왜 우리는 굳이 따지는 걸까?  '못난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외모의 틀을 야채나 과일에까지 투영시킨 인위적인 개념인 것일 뿐, 인간에 의해 '못난이'로 분류되는 채소와 과일들은 억울하다. 



이제는 온갖 비닐, 플라스틱에 포장 옷을 입고 '이쁜 척' 진열되어 있는 마트의 야채 코너를 돌면 그리 탐탁지 않아 보인다. 그중에서도 유독 애호박만큼은 옷 안 입고 자유롭게 자란 애들을 찾기가 힘들다. 다양한 외모와 유통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상처나 흠집 때문에 판로가 막혀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소비자들이 얼마나 획일화되고 상품화된 식자재를 선호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상품화된 식자재가 질이 떨어지거나 맛이 꼭 덜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 본연의 산물보다는 상품 가치성이 더 중요해지다 보니 폐기되는 죄 없는 농산물, 배출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들, 온갖 인위적인 화학 비료와 살충제 사용 등 그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비자들은 간과하기 쉽다.  





언젠가 'Grass-fed Butter'라는 문구가 적힌 뉴질랜드산 버터를 보고 의아해한 적이 있었다. 풀을 먹인  젖소에서 짠 원유로 만들었고, 더군다나 청정 지역으로 인식되는 뉴질랜드에서 왔다고 하니 상품으로써의 가치가 높아 보인다. 하지만 뉴질랜드 같은 땅 넓고 푸른 초원이 광대한 곳에서 젖소는 당연히 방목되어 풀을 먹고 자라는 거 아니었는지? 굳이 grass-fed를 표기했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소가 더 일반적이라는 걸 반증하는 셈이 아닐까? 나도 '유기농'이나 '친환경' 제품에 열광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프리미엄 이름표들도 결국은 일반적인 농산물들은 그렇지 않다는 그 불편한 진실을 동시에 말해주고 있다.  






오늘 어머님이 골라오신 애호박은 그대로 끓는 물에 퐁당 들어가 데쳐졌다. 아무 양념도, 간도 하지 않고 물에만 데친 애호박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대단할 거 없는 데친 애호박에 대한 기대를 하나도 안 한 탓이기도 하다만, 이건 너무 맛있잖아! 적당히 달근하고 입에 부드럽게 감기는 맛에 잠시 입안에 머금고 음미하고 싶은 신선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역시 식재료가 훌륭하면 요리,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인가, 그리스 음식들은 대부분 레시피도 간단하다. 플레이팅이나 상차림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요리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식자재가 얼마나 신선하고 맛있는 였지 레시피, 플레이팅, 식기 등은 거둘 뿐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차림새, 요리 기교, 감칠맛을 더해주는 갖가지 양념조차 해탈한 나의 그리스식 시골 밥상, 너무 맛있잖아!     



2023.08 , Cor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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