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온 다음 날 아침이었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는 순간 발바닥이 뭔가에 미끄러졌다. 안경도 쓰기 전이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코끝에 기분 나쁜 냄새가 먼저 감지되었다. 간밤에 고양이는 안방 문 앞에 똥을 쌌고, 운 나쁘게 내가 그것을 밟은 것이었다.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발을 씻고 또 씻었다. 서둘러 바닥을 치우고 알코올로 소독했지만, 공기 중의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거실 화장실 쪽으로 갈수록 냄새는 더욱 진해졌다.
이번에는 오줌이었다. 화장실 앞 발매트가 진원지였다. 일은 일대로 저질러 놨건만, 정작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소파 밑과 커튼 뒤를 한참 뒤진 끝에 냉장고와 벽 사이, 그 손바닥만 한 틈새에서 녀석을 발견했다. 내가 다가가니 무서운지 뒷걸음질을 친다. 어둠 속에 빛나는 눈만 아니었다면 완벽에 가까운 은신술이었다.
락스 희석액에 매트를 담가 두고 화장실 주변을 청소했다. 탈취제까지 뿌리고 나니 이마가 땀으로 번들거렸다. 그때가 겨우 아침 7시. 긴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었다. 냉장고 틈새에 진을 치고 있던 녀석은 이틀 뒤 더 나은 은신처를 찾아냈다. 이번에는 세탁기 뒤였다. 굉음을 내며 세탁기가 돌아갈 때를 제외하고, 녀석은 한사코 그 자리를 사수했다.
우리는 가능한 녀석에게 맞춰주기로 했다. 베란다 짐을 정리해 화장실과 물그릇을 놓아주었다. 아침마다 사료가 사라져 있는 것을 보면, 녀석은 밤마다 세탁기 뒤를 빠져나와 집안 탐험을 하고 새벽이면 다시 베란다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우리 집에 온 뒤로 하루에도 몇 번씩 먹은 것을 게워 내고 있었다. 사료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답은 하나, ‘스트레스’였다. 새로운 환경을 소화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다.
사실 소화불량에 걸린 건 고양이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고양이가 들어온 이래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과장을 보태자면, 막 조리원에서 아기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처럼 전전긍긍하는 기분이었다. 보호해야 할 존재는 생겼는데 방법을 모르니 매 순간 실수투성이에 바보가 된 기분. 고양이를 데려오기 전 관련 책이며 유튜브 영상도 여러 개 찾아봤지만, 막상 실물 고양이와 맞닥뜨리니 ‘이걸 어쩌지’ 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내가 지금 잘하고 있나’ 하는 의심이 걱정으로 치달았고, 어느새 체한 것처럼 배 안쪽이 묵직해졌다.
사흘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일상이 된 남편이나 아이들과 달리, 오직 나와 녀석만이 서로 눈치를 보며 긴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었다. 고양이를 데려오겠다고 연락했던 그날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죄송하지만 도저히 안 되겠어요, 다시 데려가 주세요.’ 라며 옛 주인에게 전화를 걸려다 멈춘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녀석과 나는 활주로에 막 도착해 덜컹거리는 비행기 속에 앉아 있는 셈이었다. 미끄러지듯 조용히 착륙할 수 있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지금 와서 그걸 바랄 수는 없다. 그래도 언젠가 비행기는 멈출 것이고 우리는 짐을 챙겨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만 이 덜컹거림이 오래되지 않고 빨리 잦아들기를 바랄 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난 건 녀석이 우리 집에 온 지 2주 정도 지났을 즈음이다.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녀석은 세탁기 뒤에서 걸어 나와 거실을 잠시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참 동안 나무와 새,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고양이의 마음을 읽을 수야 없지만, 왠지 그 순간 나는 녀석이 체념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옛집과 옛 주인과의 일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이제 녀석은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나는 탁자를 사이에 둔 채 녀석과 멀찍이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다. 녀석의 눈길도 일부러 피하고 있었다. 그때 녀석이 조심스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손을 내밀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너도 무섭지? 나도 실은 많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