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너희가 이겼다

by 김민영

나는 동물과 친하지 않다


무엇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내가 어렸을 때, 이모는 개를 키웠다. 이모네 집 대문 옆 좁은 틈에는 개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집을 지키기 위해 얻어 온 개라고 했다. 사나운 녀석이었다. 개는 종종 이모네 가족에게도 달려들었고, 그럴 때마다 녀석은 마당 한구석에 세워져 있던 대걸레로 얻어맞았다.


외갓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이모 집은 명절이면 우리가 꼭 들러야 하는 장소였다. 이모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초입에서부터 나는 겁에 질렸다. 개는 발소리만으로 낯선 사람임을 감지했고, 악을 쓰며 짖어댔다. 목줄은 짧지만, 대문에서 집 안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워낙 좁다 보니 녀석의 입질은 늘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닿았다. 대문에서 집안까지 겨우 3미터나 되었을까? 매번 나는 숨을 참고 전력 질주했다. 하지만 운이 없는 날도 있는 법. 녀석은 기어이 내 다리를 무는데 성공했다. 비명 소리에 놀라 뛰어온 이모가 대걸레로 한참이나 매질을 해도 녀석은 나를 놔 주지 않았다. 결국 바지가 찢어지고 피를 한참 흘리고서야 나는 개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개는 위험해. 나는 이 날의 교훈을 가슴에 새겼다.


고양이와 처음 제대로 마주친 건 친한 언니의 스튜디오에서였다. 미대생이던 그녀는 개인 오피스텔에서 그림 레슨을 하고 있었다. 집은 작업실이자 사무실. 좁은 방이 화구를 비롯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설마 그런 곳에 고양이가 있을 줄이야. 알았더라면 결코 자진해서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종 타인도 그럴 거라 지레짐작해 버리는 것 같다.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있는데 괜찮겠어?” 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마치 “거실에 선인장이 하나 있는데 괜찮겠어?”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세상에 이 귀여운 고양이를 무서워하거나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곤 도무지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현관문 앞 모래 상자를 보고 “이게 뭐야?”라고 내가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나 고양이 키우잖아. 내가 말 안 했던가?


의논할 일이 있어 언니를 찾아간 것이지만, 고양이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도무지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림을 그리러 오는 수강생을 많이 본 탓인지 고양이는 별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녀석은 내 주위를 탐색하듯 뱅뱅 돌았고, 내 가방과 웃옷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내 신경은 고양이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있는지에만 쏠려 있었다. 녀석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짐이 많은 그 집에서 고양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어딘가에 또 불쑥 튀어나왔다.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도 녀석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나는 일단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로도 언니와는 종종 만났지만, 두 번 다시 그 집을 찾지는 않았다.



5분이 맥스인가... 고양이 카페에 도전하다


낯을 가리고, 숫기가 없던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대부분 조금씩 달라진다. 자라는 동안 어느 정도의 사회적 스킬을 몸에 익히기 때문이다. 동물에 대한 내 태도도 비슷하다. 어른이 된 나는 개를 보고 놀라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비둘기가 떼로 모여 있다면 길을 돌아가겠지만, 한두 마리 정도라면 잠깐 숨을 참고 모른 척 지나갈 수도 있다.


잠깐이라면 길에서 개와 산책 중이던 지인에게 태연히 인사를 건네고, 심지어 “아유, 개가 참 잘 생겼네요” 같은 인사말도 할 수 있다. 물론 만져 보겠냐는 제안은 웃으며 단호히 거절한다. 그것이 내가 동물과 탈 없이 지낼 수 있는 거리다. 그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침내 고양이 카페에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들이 오래전부터 같이 가자고 계속 졸랐던 곳이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자신감도 있었다. 자신의 평정심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카페는 아주 넓지도, 그렇다고 좁지도 않았다. 커피 향이 아닌 묘한 냄새가 공기 중에 섞여 있었다. '이것이 고양이 냄새인가?' 카페에는 고양이가 많았다. 언뜻 봐도 열 마리는 넘어 보인다. 하도 빨리 움직여서 제대로 마릿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단숨에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것을 알아챘다.


고양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카페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테이블이며 소파 위를 마음대로 뛰어다녔다. 한 마리는 아예 주인 어깨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의 진짜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들이었다.


음료를 받은 아이들은 냉큼 2층으로 올라갔다. 테이블이 없는 2층은 말 그대로 고양이들의 놀이터인 모양이었다. 1층보다는 두 배는 많은 고양이가 잠을 자거나 손님들과 놀고 있었다. 나는 카페 주인이 있는 1층에 남아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하지만 곧 나는 3 마리의 고양이들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한 마리는 벗어놓은 코트 위에 털을 비비고 있었다. 다른 한 마리는 내 테이블과 옆 테이블을 왔다 갔다 거리고 있었다. 마지막 한 마리가 제일 문제였다. 빈 의자에 올려둔 내 가방에 관심이 있었던 이 녀석은 급기야 가방 속에 얼굴을 들이밀고 들어갈 태세였다.


서너 번 작은 비명을 지른 후, 얼굴이 빨개진 나는 급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다. 겨우 오분이 지났을 뿐인데....




4년의 장기전, 그리고 마침내 항복


나의 완강함과 달리 우리 아이들은 둘 다 동물을 무척 좋아했다. 뱀이나 쥐는 질색해도 개나 고양이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품고 있었다. 큰아이는 산책길에 만난 개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고, 가끔 너그러운 견주가 자기 개를 소개해 줄 때면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을 지었다. 특히 <플란다스의 개> 속 파트라슈 같은 든든한 대형견을 좋아했던 큰아이는, 개를 키우지 못하는 친구들과 돈을 모아 개 카페를 드나들었다. 카페에 다녀온 날이면 아이의 옷은 개 침과 털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지만, 그 얼굴만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면, 작은아이는 늘 고양이 쪽이었다. 아이에게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함께 몰려다니는 단짝 친구 셋이 있었는데, 어느 날 녀석들이 화단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용돈을 모아 사료 캔을 사고,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주운 플라스틱 통에 물을 채워 나르기 시작했다. 길고양이에게 줄 거라고 했더니 간식을 덤으로 챙겨주었다는 동네 애완용품 가게 사장님의 후한 인심까지 더해져, 아이들의 ‘007 작전’은 한동안 어른들 몰래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얼굴이 벌게진 채 울며 들어왔다. 고양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온 동네를 뒤졌지만 행방은 묘연했고, 아이들은 평소 고양이 밥 문제로 실랑이하던 관리소 직원을 의심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엄마, 이제 어떡해?”라며 매달리는 아이를 보니, 근 한 달 가까이 부모들 몰래 쏟아온 그 정성만큼은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아이들의 간절함이 깊어질수록 내 마음은 오히려 더 완강해졌다. 일단 한번 집에 들이고 나면 끝까지 책임지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동물을 평생 책임진다는 무게감은 나 같은 사람에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단호히 반대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도 만만치 않았다. 녀석들은 정면 승부 대신 다른 전략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아이들 쪽도 만만치 않았다. 녀석들은 우기고 떼쓰는 대신 다른 전략을 들고 나왔다. “그냥 상상만 해 보는 건 괜찮잖아? 엄마는 개나 고양이 둘 중에는 뭐가 좋아?”


그래, 그냥 상상만 해 본다는 건데 어려울 것 없다. 나는 정말로 개를 데려온다면, 고양이를 데려온다면, 이런 상황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려 보았다.


아무래도 개보다는 고양이가 낫겠지.

관리도 더 쉽고, 산책하러 갈 수 있고.

무엇보다 엄마는 개는 무서워서 절대 같이 못 살아.


자, 그럼 고양이로 결정되었고,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보자. “만약 고양이를 들인다면 어떤 종으로 들일까? 그냥 상상만 해보는 거야.” 아이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도 좀 온순하고 움직임이 적은 품종이 좋겠지? 뱅갈처럼 너무 활발한 녀석들은 좀 힘들 것 같은데…. 많이 우는 녀석도 곤란해.” 아이들은 나름 꾀를 쓴 것이다.


아이들은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서 자료를 잔뜩 뒤져와, 조건에 맞는 고양이 후보들을 하나씩 내밀었다. 한쪽에선 브리티시 숏헤어가 좋다 하고, 또 한쪽은 아무리 그래도 스코티시폴드가 귀엽지 않냐고 우겼다.

사실 내 쪽에서도 아이들의 ‘속셈’을 모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면서 몇 년 보낼 작정이었다. 어차피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정신없이 바빠질 테니, 고양이니 개니 하는 이야기는 금세 시들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내 착각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고양이 영상을 찾아보고 책을 읽어보는 사이 내 마음의 문은 조금씩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짜 복병이 나타났다. 바로 코로나였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아이들에게 한방이 찾아온 것이다. 우리는 말 그대로 집 안에 갇혀 버렸다. 학교에 갈 수도 없고 친구를 만날 수도 없었다. 언제 상황이 나아질지 그 누구도 기약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주변에는 개를 들이는 집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친구도 놀이도 사라진 자리에 반려동물이 들어온 것이다. 나도 더는 예전처럼 단호할 수만은 없었다.

4년에 걸친 아이들과의 장기전 끝에, 결국 나는 깔끔히 나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래, 너희가 이겼다.
이제 고양이를 찾아보자.
이전 01화고양이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