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불청객

by 김민영

나는 상당히 예민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마음을 좀 느긋하게 먹어 보라고 말한다. 나도 알고 있다. 마음을 느긋하게 가질 수 있다면 세상 사는 게 한결 편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매년 받던 정기검진에서 몇 년째 경계성 고혈압 진단이 나왔다. 혈압약을 시작할 각오를 하고 동네 내과로 향했다. 의사 앞에서 혈압을 재니 집에서 쟀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치가 나온다. 충격을 받은 내게 병원에선 긴장해서 그런 사람이 많다고 의사는 안심을 시킨다. 그리고는 당장 약을 줄 수는 없으니, 앞으로 일주일간 아침 혈압을 재어 가져와 보라고 했다.


다음 날부터 일주일, 나는 아침마다 가정용 혈압계로 혈압을 쟀다. 아직 잠이 채 깨지 않은 시간, 눈을 제대로 뜨기도 전부터 ‘아, 혈압 잴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달콤한 꿈에서 냉정한 숫자의 세계로 떠밀리는 기분이다. 아, 정말 하기 싫다. 하지만 피할 수도 없다. 전날 밤 침대 옆에 놓아둔 혈압계가 숙제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숨을 삼키며 수치를 측정한 후에 혈압계를 눈에 안 띄는 곳에 슬쩍 밀어넣는다. 내일 아침까지는 볼 일 없는 물건이다. 그제서야 나는 다시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혈압계가 사라진 얼마 후 이번엔 고양이가 내 아침을 가져갔다. 눈을 뜨기도 전부터 나는 고양이에 대해 생각한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다. ‘밤새 가구를 긁어놓진 않았을까?’, ‘바닥에 또 오줌을 싸 놓지는 않았을까?’ '설마 또 소파 위에 토해 놨을까?‘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부터 머릿속은 불길한 상상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화장실이 세 개나 있는데 왜 하필 여기냐고?” 며칠 전 부엌 구석에서 녀석이 싸 놓은 오줌을 발견했다. 처음엔 물인 줄 알고 휴지로 닦았지만, 색과 냄새가 확연히 달랐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혹시 나를 약 올리려고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망상도 하게 된다. "도대체 왜? 왜 그러냐고?" 나는 녀석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나는 고양이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려 애썼다. 위치가 마음에 안 드나, 모래 타입이 별로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화장실을 좀 더 자주 청소해야 하나? 청소를 마치고 새로운 타입의 모래를 깔아본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어제의 그 부엌 구석을 확인한다. 다행히 깨끗했다. 약간 마음이 누그러져 거실 복도를 지나려는데 구석에 또 물기가 보인다. 역시 오줌이었다. 화를 내려 해도 녀석은 어디론가 숨어 버린 뒤다. 이른 아침부터 락스 청소를 하려니 부아가 치밀었다.


처음보다야 나아졌지만 고양이는 여전히 나를 경계하고, 나 역시 고양이를 경계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서로의 위치를 탐색하며 거리를 유지한다. 먹이를 주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지만 그것은 국가 원수 간 의례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작은 돌발 행동 하나에도 나는 기함을 하고, 고양이는 또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결국 화장실을 다시 점검하고, 녀석이 한 번이라도 오줌을 쌌던 자리마다 간식을 놓아두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싸는 곳’과 ‘먹는 곳’을 구분한다. 오줌을 쌌던 그곳이 ‘싸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간식으로 학습시키는 방식이다. 며칠의 연습 끝에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아침, 집이 멀쩡한 날이 점점 많아졌다.

아침, 집이 멀쩡한 날이 점점 많아졌다. 잠이 깬 어느 새벽,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왔다가 창틀에 앉아 밖을 보고 있는 녀석과 마주쳤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한참 남은 시간, 녀석은 어둠 속에 혼자 앉아 아파트 단지와 도로 위 자동차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전 주인에게 듣기로 녀석은 부모와 형제들까지 모두 여섯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생활해왔다. 태어나 단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던 녀석이, 익숙한 곳에서 뽑혀 나와 고양이라고는 자기뿐인 이곳에 혼자 떨궈진 셈이었다. 이 낯선 집의 고요와 어둠이 너에게도 참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여전히 서먹한 사이였지만, 내 아침의 질문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오늘은 또 어디에 사고를 쳤을까 하는 의심 대신, 녀석이 어젯밤을 무사히 잘 보냈을까 하는 염려로 말이다.


딱지야, 우리 이제 좀 친해져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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