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고양이도 그렇다. 녀석은 유독 겁이 많다.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전신거울을 처음 본 날에는 거울 속 상대에게 겁을 먹었는지 주춤주춤 도망가다 뒤집어지기까지 했다. 그 흔한 하악질 한번 해 보기도 전에 딱지는 이미 항복 선언을 한 셈이었다.
딱지는 자신이 이 새로운 환경의 최약자임을 직감하고 있는 모양이다. 드르륵거리는 커피 머신도, 열고 닫힐 때 끼익 소리 나는 방문도, 거실 한쪽에 놓인 실내자전거조차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판단한다. 그것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고 확신할 때까지 수십 번의 뒷걸음질과 은신이 필요했다. 그 과정은 때로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느린 행보는 사실 치밀한 조심성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다. 시간을 두고 확실히 안전하다고 확인되지 않은 이상 무리하게 일을 벌이지 않는 것이다. 열린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돌발 행동을 하거나, 환기를 위해 열어둔 현관문 틈으로 무단 외출을 시도하는 일 따위는 딱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신중함이 호기심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줄어든 부분도 있다. 뜻하지 않게 얻어걸린 행운 같은 것이다. 우리 집은 대체로 깨끗한 편이지만, 사람 사는 집이다 보니 가끔 바닥에 종잇조각이나 고무줄, 클립 같은 것들이 떨어져 있을 때가 있다. 이런 것들을 주워 먹고 탈이 나 병원을 찾는 고양이들이 많다지만 딱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녀석은 늘 먹는 사료 외에는 사람 음식에도 몸을 사린다. 아무리 냄새가 좋아도 와락 달려들지 않고 슬그머니 뒷걸음질 친다.
화분도 마찬가지다. 고양이에게 해로운 산세비에리아나 아이비 같은 화분 근처에는 아예 가지도 않는다. 애초에 사람 무릎 높이 이상의 공간은 잘 올라가려 하지 않으니, 선반 위 화분과 마주칠 일조차 없다. 스스로 안전을 지키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로서는 신경 쓸 일이 줄어들어 고마운 노릇이다.
자기 영역이라 여기는 공간이 늘어나면서 녀석의 성격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이 집의 바닥과 모서리, 가구들과 제대로 얼굴을 튼 것이다. 이젠 문 여닫는 소리나 방충망 내리는 소리에 놀라 후다닥 달아나는 일도 없어졌다. 마음이 풀어진 덕분일까. 녀석을 규정짓던 ‘겁쟁이’라는 이름표 뒤로 다른 면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경계에 쓰이던 에너지가 호기심으로 바뀐 것이다.
딱지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곳은 자신의 물건을 보관해둔 캐비닛이다. 사료와 장난감, 모래가 든 그 캐비닛을 녀석은 사랑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캐비닛 문에 머리를 비벼대고, 가끔은 아예 스핑크스처럼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시간을 보낸다. 어쩌다 집사가 캐비닛 문이라도 열라치면, 녀석은 자다가도 번쩍 눈을 뜨고 달려와 코를 들이민다. 그 안에서 풍기는 사료 냄새를 맡으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작은 공간이 녀석에겐 얼마나 거대하고 소중한 보물 창고일까 싶어 웃음이 난다. 곁에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느긋하게 제 보물을 지키는 것이다. 녀석이 여기까지 오는 데만 두 달이 넘게 걸렸다.
고양이마다 적응하는 속도는 다르다.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 녀석이 베란다 생활을 끝내는 데 2주나 걸렸다고 하자 수의사는 고양이들 사이에서도 꽤 오래 걸린 편이라며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 역시 이 낯선 존재를 받아들이고 평정심을 찾는 데 남들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렸다. 예민한 나와 겁 많은 고양이. 우리는 각자의 속도대로, 남들보다 조금 더 신중하고 느리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오늘도 딱지는 거실 한구석에서 조용히 자신의 영역을 살피고, 나는 그런 녀석의 방해를 받지 않으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거실을 가로지르는 햇빛 한 조각을 사이에 두고, 우리 둘은 각자가 허용한 거리만큼만 떨어진 채 평화로운 오후를 보낸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렇게 계속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간다면 우리는 분명 중간 어딘가에서 만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