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또 기록하기

by 김민영

고양이에게 필요한 물건의 가짓수는 생각보다 꽤 많다. 사료나 간식은 물론이고, 고양이 모래나 장난감, 스크래처 같은 소모품도 필요하다. 초반에는 녀석의 취향을 모르니 결국 내 취향대로 사들였다. 하지만 고양이에게도 분명 나름의 취향이 있다. ‘고양이는 다 이런 거 아니야?’ 하는 건 편견이다. 증거는 동네 중고 거래 앱만 봐도 차고 넘친다.

사료 팝니다. 유통기한 한참 남았어요.

수십만 원 들여 캣휠을 샀는데 쳐다도 안 봅니다.


모두 자기 집 고양이의 취향을 모르고 물건을 함부로 사들인 대가다. ‘고양이라면 당연히 캣휠(고양이가 달릴 수 있는 큰 바퀴 모양의 운동기구)을 좋아하겠지?’, ‘고양이라면 이런 장난감은 잘 가지고 놀겠지?’ 하지만 내 고양이가 정말 그럴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초반에는 이렇게 고양이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만 얼마간의 돈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딱지로 말하자면, 녀석은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 고양이가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니, 기가 막힐 일이지만 사실이다. 지금껏 관찰한 결과, 식탁 높이가 녀석의 한계다. 창가 자리를 유독 좋아하는 녀석을 위해 어느 날 우리는 4단짜리 캣타워를 장만했다. 제법 비싼 돈을 주고서 말이다. 행복해 할 녀석을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조립도 끝냈다.


하지만 처음 한 달 정도 녀석은 캣타워는 거들떠 보지 않았다. 애써 준비한 선물 앞에 냉랭하기만 녀석에게 우리는 배신감마저 느꼈다. 다행히 시간이 더 흐르자 녀석도 캣타워에 대한 의심을 거둔 모양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딱지가 올라간 최고 기록은 3단이다. 그것도 어쩌다 한 번쯤 오를 뿐, 녀석이 애용하는 것은 고작 사람 무릎 높이의 첫째 단이다. 이럴 거면 굳이 캣타워를살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스크래처도 마찬가지다. 고양이는 긴장을 풀기 위해 발톱을 갈아낸다. 딱지는 수직형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수평으로 바닥에 고정된 것만 사용한다. 이래저래 까다로운 고양이다.


딱지를 데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작은 수첩 하나를 샀다. 처음에는 딱지 관련 물품들의 품명, 구매 날짜, 가격 정도를 적어두려는 용도였다. 하지만 녀석에게 "취향"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수첩에 적힌 내용은 조금 더 자세해졌다. 녀석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말을 받아적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A 사료에 대해서는 이렇게 적혀 있다. 기호성은 좋지만, 부스러기가 많이 생김. 사료를 먹고 나면 턱 쪽 털에 붙어 불편해함. 소화에는 문제없음. B 간식에 대해서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한 번은 먹었지만 두 번 다시 찾지 않음. 냄새가 거슬리는지 냄새를 맡아만 보고 돌아섬. 수첩 속 정보는 쌓이고 쌓여 다음 주문 때 참고해야 할 상세한 명세서가 된다.


예전 집에서는 여러 마리의 다른 고양이와 함께 살았기에 먹이 경쟁이 심했을 것이다. 때론 그다지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라도 그냥 주는 대로 먹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녀석의 음식을 탐내지 않는다. 녀석은 점점 더 거만해지고 까탈스러워지고 있다.

이건 맛이 좋군요. 알겠습니다. 먹어 볼게요.

아니, 이건 별로예요. 다른 거로 가져와 보세요.


함께하는 날이 길어질수록 수첩 속 메모가 쌓여간다. 고양이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눈으로 듣는다. 관찰하고 또 관찰해서 답을 찾아야 한다. 털의 윤기, 오줌의 양, 변의 상태, 먹는 양,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두 기록의 대상이 된다. 이 또한 우리 사이에 일어나는 대화의 한 형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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