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분해져도 괜찮아

by 김민영
너희 집에 오면 무슨 호텔에 온 것 같다


딸네집에 놀러 왔던 친정엄마가 던진 말이다. 오해는 말길 바란다. 우리 집은 호텔처럼 호화스럽거나 고급스럽지 않다. 엄마의 말은 깨끗하다 못해 생활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당시엔 칭찬으로 받아들였지만, 나중에 곱씹어 보니 꼭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너무 정갈해서 오히려 머물기 불편하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신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자 나는 물건을 줄이고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이른바 ‘미니멀 라이프’였다. 막상 해보니 내 성향과도 잘 맞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비싼 자산은 사실상 ‘공간’ 그 자체인데, 그 귀한 공간을 물건 쌓아두는 데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씩, 둘씩 필요 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공짜로 주는 물건도 웬만해서는 받아오지 않았고, 소모품 외에는 새로 물건을 들이는 일도 드물었다. 애초에 짐이 많지 않은 집이었지만, 이렇게 몇 년 살다 보니 집은 점점 더 휑해졌다.


가구는 최소화했고, 자잘한 소품들은 서랍이나 장 속으로 들어갔다. 현관에도 당장 필요한 슬리퍼 한 켤레 외에는 나와 있는 것이 없고, 식탁 위는 밥상이 차려질 때 외에는 완전히 비워졌다.


문제는 미니멀라이프가 아니라 나의 예민한 기질이었다. 물건이 사라지자 맨 바닥의 머리카락 한 올이, 아무것도 놓여져 있지 않은 식탁의 작은 얼룩이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부터 청소에 유난을 떨 마음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우리집은 언젠가부터 얼룩 하나 먼지 한 톨 없는 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보기에는 말끔할지 모르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마음편히 과자 하나 먹기도 부담스러운 집 말이다.


사실 고양이 입장에서도 우리 집은 그리 매력적인 공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집은 평평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단조롭다. 가구는 많지도 않은데다 대부분의 수납장은 벽면 일체형이라 고양이가 오르내릴 높낮이가 없었다. 눈에 띄는 물건도 없다. 장식품 하나 없이 모두 서랍과 수납장 안으로 감춰져 있다. 바닥도 텅 비어 있다. 사람이 보기엔 깔끔하고 정돈되고 공간일지 몰라도, 고양이 입장에서는 올라갈 곳도 숨을 곳도, 놀 만한 물건도 하나 없는 재미없는 곳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내 입장은 달랐다. 거실과 복도에 고양이 화장실이 세 개나 들어앉은 것만으로도 이미 감당하기 힘든 변화였다. 동물이 배설하는 화장실을 생활 공간에 둔다는 사실이 못내 비위생적으로 느껴졌다.


고양이 화장실에는 일반 모래가 아닌 특수 모래를 넣는다. 오줌이 닿으면 즉시 굳고, 똥은 고양이가 모래로 묻어버려 모래 속에서 굳는다. 지금은 하루에 한 번 정도 시간을 정해 처리하지만, 초반에는 냄새를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고양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배설물을 치웠다. 녀석 입장에서는 자신이 화장실을 쓸 때마다 빼꼼히 노려보고 있는 집사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녀석의 털이다. 녀석은 유달리 털이 많고 긴 페르시안이다. 아무리 조심한다해도 가끔은 엉덩이나 꼬리에 변이 묻을 수밖에 없다. 고양이 스스로 그루밍으로 어느 정도 정리하지만, 결코 완벽하지는 않다. 초반에 자주 설사를 했던 딱지는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폭탄이었다. 꼬리털에 변을 묻힌 채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바닥은 그나마 쉽게 청소가 가능했지만, 소파나 카펫에 앉으면 일이 커진다. 결국 나는 녀석이 화장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당장 휴지를 들고 곁에서 대기해야 했다. 고양이를 만지는 것조차 겁나던 시절이었지만, 그냥 두었다가 치러야 할 대가를 생각하면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물론 그 덕분에 고양이를 만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예상보다 빨리 사라졌다.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맨손으로 녀석의 발톱을 깎고, 양치까지 시킨다. 키친타월 몇 장과 희석 알코올이면 바닥에 묻은 헤어볼이나 배변 자국도 금세 치운다. 긴 나무젓가락으로 간식을 집어 주던 것도, 지금은 손바닥 위에 직접 올려 먹인다. 어쩌다 음식에 고양이 털이 하나 들어가도 이제는 태연히 털을 골라내고 다시 음식을 먹는다.


집집마다 환경이 다르니 고양이를 키우는 다른 집들과 비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딱지가 오기 전의 우리 집과 지금의 우리 집은 분명 다르다. 결론적으로 지금 집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지저분해졌다.


곳곳에 숨숨집(고양이가 들어가 숨을 수 있는 장난감 공간)이 있고, 식탁 밑과 창가 아래에는 빈 택배 상자가 뒹굴고 있다. 녀석이 물건 뒤지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서랍이나 거실장 문을 일부러 열어둘 때도 있다. 바닥에는 녀석이 좋아하는 마따따비(고양이가 좋아하는 향이 나는 열매)나 털공이 굴러다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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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에 옷이 젖듯, 나는 어느새 고양이와 함께하는 생활에 적응해 버렸다. 전형적인 ‘행동치료‘의 결과라고나 할까. 반복되는 노출 속에서 결국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이 돌아선 것이다. 예민하던 감각은 조금 둔해지고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변화를 단순히 ‘익숙해졌다’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애정’이었다. 딱지가 소중해지면서 녀석과 관련된 것들이 이젠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고 돌봐야 할 일상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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