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딱지는 눈에 띄게 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불러도 잘 오지 않는다지만, 내가 부르면 꽤 높은 확률로 반응한다. 발톱 손질이나 목욕처럼 싫은 일도 훨씬 잘 참아 준다. 내가 다가가지 않아도 곁에 와서 얼굴을 비비고 내 손을 핥는다. "아시죠? 이거 아무에게나 하는 행동은 아니랍니다."라고 생색이라도 내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일이 이렇게 신기하다. 사실 나는 가족 중 어느 누구보다 오랫동안 녀석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녀석을 무서워하고 불편해했다.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한참이 걸렸고, 털을 빗길 때는 긴 옷에 목장갑을 끼고서야 비로소 안심되었다. 사냥놀이를 할 때도 나는 늘 제일 긴 낚싯줄을 써야 했고, 혹여 녀석이 흥분해 내 발을 공격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앞코가 막힌 슬리퍼를 신고서야 놀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하도 끔찍해서 간식도 내게서 먼 곳에 던져 주기만 했다. 아이들이 하듯 손바닥에 간식을 놓고 먹인다는 것은 집사가 된 지 수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가능해진 일이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녀석이 가장 아끼는 집사가 되었다. 요즘 말로 '최애'가 된 것이다. 딱지는 보통 우리 식구가 잠에서 깨기 전부터 깨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캣타워 1층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다. 다른 식구가 나와 녀석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도 딱지는 대부분 무반응이다. 그러다 내가 거실로 나오면 녀석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콩', 하고 캣타워에서 내려온다. 그리고는 내 쪽을 향해 걸어온다. 중간에 꼭 한 번 멈춰 몸을 길게 늘여 기지개를 켠다. 그러고는 다시 내게 걸어온다. 꼬리는 이미 한껏 하늘로 올라가 있다.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내 다리에 머리를 쿵 하고 박는다. 고양이 나라의 정중한 인사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는 엉덩이를 툭툭 쳐준다. 그리고 티슈를 한 장 뽑아 녀석의 눈물 자국을 닦아준다. 남편이 먼저 일어나 사료를 챙겨준 날은 우유 반 티스푼 정도를 작은 종지에 부어 녀석 앞에 내민다. 사실 딱지는 내가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그 안에서 뭐가 나올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잘 볼 수 있게 앞에서 일부러 녀석 코앞에서 우유를 조금 따라 주고 냄새를 맡게 한다. 딱지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선다. 그러면 나는 녀석을 살짝 끌어 우유 종지 앞으로 당겨준다. 이 과정이 없으면 녀석은 절대로 우유를 마시지 않는다. 아침마다 나와 딱지가 치르는 엄숙하고도 기묘한 의식이다. 우유 마시기가 끝나야 비로소 딱지의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된다.
녀석은 혼자 밥을 먹고는 다시 자신이 좋아하는 창가 캣타워에 자리를 잡는다. 밖으로 나갈 사람이 다 사라지고 나면, 녀석은 슬며시 내 곁으로 온다. 나는 간식을 조금 주고는 빗질을 시작한다. 때에 따라 발톱을 깎고, 엉킨 털을 자르고, 귀 청소도 한다. 모두 고양이가 싫어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녀석은 이걸 피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상당히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규칙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는 고양이도 만만치 않다. 녀석은 빗질이라는 이 지루한 과정이 끝나야 사냥놀이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잠깐의 사냥놀이가 끝나면 나는 나대로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빠진다. 녀석은 내 곁을 맴돌기는 하지만 나를 특별히 귀찮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돌아보면 녀석은 어느새 오후까지 이어지는 긴 잠에 빠져 있다. 녀석과의 하루는 보통 이런 패턴을 따른다. 우리는 정해진 방식대로 움직이고 어지간해서는 규칙을 어기지 않는다.
아이들은 물론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맛있는 간식을 실컷 주고, 내내 안고 쓰다듬으며 꿀이 뚝뚝 떨어지게 사랑을 표현해 주는데 왜 자신들이 아닌 저 무심한 엄마가 녀석의 최애란 말인가? 세상일이란 게 주는 만큼 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아이들은 아직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들의 애정은 양만 넘쳤지, 정작 고양이에게는 뭔가 불편한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한번 마음을 정한 이상 딱지는 꽤 단호하다.
솔직히 나로서도 어리둥절했다. 아이들보다 내가 녀석에게 주는 애정이란 얼마나 얕고 묽은가. 녀석이 배를 보이며 몸을 배배 꼬아도 나는 그저 머리를 톡톡 쳐 준 후에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녀석이 원하는 애정은 더도 말고 딱 그 정도였나 보다.
목에 리본이나 방울을 달지도 않고, 우스꽝스러운 안경을 씌우지도 않는다. 귀엽다며 소리를 지르거나 얼굴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지도 않는다. 갑자기 안아 올리는 일도 없고, 얼굴을 들이대어 비벼대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나는 녀석이 좋아하는 행동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녀석이 싫어하는 행동을 덜 해서 녀석의 최애가 된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관계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