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다시 태어난다면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어.
이렇게 가만히 웅크려서 잠만 자도
사람들이 알아서 예뻐해 주니까.
고양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작은아이가 말한다. 녀석도 나름의 고충이 많을 거라고 말해 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요즘 아이들 삶이 워낙 팍팍하다 보니 차라리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가정집에 들어와 사람과 사는 운명이 아니었다면, 녀석의 삶이 과연 가만히 웅크려서 잠만 자도 되는 그런 편안한 삶이었을까 하고 잠깐 생각해 보았다.
한 마리의 독립적인 고양이로서의 생존 능력을 평가하자면,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도 딱지는 낙제점에 가깝다. 길 위에서라면 한 계절도 넘기기 어렵지 않았을까?유독 겁이 많은 녀석은 영역 싸움은커녕 위험한 곳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한동안 옆집이 이사 간 뒤 두 달 가까이 비어 있었을 때, 우리는 현관문 밖 복도에 녀석을 데리고 나간 적이 있었다. 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닫고 완전히 밀폐된 상황이었지만, 첫날 녀석은 바닥에 달라붙은 껌처럼 옴짝달싹 못 했다. 수차례 연습을 했지만, 현관문 앞 2m 정도가 한계였다. 그나마도 사람 발소리나 차 소리만 들려도 잽싸게 집 안으로 줄행랑이었다.
당연히 외부 산책도 무리였다. 개처럼 자주 산책을 시킬 생각은 없었다. 다만 꽃이 피고 눈이 올 때쯤이면 집 아래 공용 정원 정도는 함께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즈음, 고양이도 주인이 이동장이나 에코백에 넣어 안고 다니면 큰 스트레스 없이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녀석은 산책 내내 단 한 번도 가방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공포가 호기심을 압도한 것이다.
산책 가방 안에서조차 공포에 질려 고개 한번 내밀지 못하던 그 소심함을 떠올리면 익숙하고 안전한 집을 떠나 여기저기 용감하게 돌아다니는 딱지는 상상하기 어렵다.
사냥 실력도 처참하긴 마찬가지다. 어쩌다 집 안으로 하루살이나 이름 모를 곤충이 들어올 떄가 있다. 윙윙거리는 벌레를 보자 녀석은 어쩔 줄 몰라 한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치솟기는 하는 것 같은데 이를 뒷받침해 줄 점프 실력과 앞발의 명중률이 무척 아쉽다.
딱지는 점프를 잘하지 못한다. 거기에 더해 높은 곳도 좋아하지 않는다. 조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조금 점잖은 표현이고 내가 보기에 녀석은 높은 곳을 무서워한다. 혹시라도 발을 헛딛어 떨어지지 않을까 조심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식탁에 올라가더라도 늘 의자를 한번 거쳐 올라가지 단번에 점프 하는 법은 없다.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 녀석의 관절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리로서는 다행한 일이기도 하지만 역시나 고양이의 역량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얼마간의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벌레 한 마리도 못 잡는다고, 하루종일 잠만 잔다고 녀석을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딱지에게도 매일 시간과 정성을 들여 해내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일, 그건 바로 털 다듬기다. 고양이는 그야말로 "털 공장"이다. 털이 유달리 긴 페르시안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털 공장이란 표현 이상으로 고양이를 잘 표현하는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털에 관해서라면 여러분이 무엇을 상상하든 늘 그 이상이다.
딱지가 처음 우리에게 왔을 때 녀석은 털을 다 밀어버린 상태였다. 새 가족에게 사랑받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전 주인이 입양 전 미용을 해준 것이다. 녀석들의 긴 털이 골칫거리라는 걸 그들도 인정한 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털이 다시 풍성해지기까지의 몇 달간 털로 인한 문제는 전혀 없었다. 겁 많은 녀석이 털 미용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지만, 모든 것이 서툴던 초보 집사 시절, 털 관리까지 신경 써야 했다면, 분명 나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매일 아침 나는 녀석의 털을 빗겨준다. 집에는 빗이 두 개 있다. 장갑형 빗은 고무바닥에 작은 실리콘 돌기가 붙어 있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꼭 바닥의 낙엽 등을 긁어모을 때 쓰는 갈퀴처럼 생겼다. 장갑형은 주로 꼬리 털을 다듬을 때, 갈퀴처럼 생긴 빗은 몸통을 빗을 때 사용하고 있다.
보통 고양이는 봄가을 털갈이 시기가 있다고 하지만, 온도가 일정한 집에서 사는 경우 꼭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털이 평소와 달리 다량으로 빠지거나 갑자기 털이 빽빽해지거나 하는 시기는 분명 있다. 딱지의 경우, "요즘 아침저녁 제법 쌀쌀하네", 이런 말이 나올 때가 바로 그런 시기다. 빗질에 신경을 쓸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사실 털이 많아지면 녀석은 눈에 띄게 달라진다. 흔히 말하는 '털이 찌는' 것이다. 마치 살이 오른 것처럼 딱지는 커진다.
이런 때라면 평소보다 오래 꼼꼼하게 빗질해 주어야 한다. 이제 빗질은 전쟁이 된다. "자, 그래서 털이 얼마나 빠지는데요?" 사실 아무리 오랫동안 빗질을 해도 털은 계속해서 나온다. 조금만 빗질을 하면 조금만 나올 것이고, 많이 하면 약간의 과장을 보태 고양이 한 마리 정도의 털이 나올 수도 있다. 빗질에는 타협만 있을 뿐 완성은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참아 줄 수 있는 인내심의 용량과 그날 집사의 어깨 상태를 고려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짓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참 동안 정성껏 빗질해 줘도 녀석이 할 일은 언제나 남아 있다. 보통 녀석은 내가 빗질한 부위를 굳이 다시 자기 혀로 다듬는다. 그루밍(고양이가 자신의 몸 전체를 혀나 앞발로 청결하게 관리하는 행동)이다. 미묘하게 털이 누운 방향이 거슬리는 것이다. 녀석은 앞다리부터 시작해 가슴, 배, 사타구니, 꼬리까지 묘한 자세를 취해가며 온몸의 털을 하나하나 점검한다.
직접 핥기 어려운 얼굴은 앞발에 침을 묻혀 얼굴을 닦는 방식으로 정리한다. 대충대충 한다는 뜻으로 고양이 세수라는 말을 하는 모양인데 실제로 고양이가 제 얼굴을 닦는 모습을 본다면 그리 말해서는 안 된다. 녀석은 매번 최선을 다한다.
그루밍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페르시안 고양이들은 유독 가슴 털이 길고 풍성한데 엎드려 다른 부위 털을 다듬을라치면 이 가슴 털이 입에 들어가 훼방을 놓는 것이다. 손가락도 없으니, 입에 자꾸 감기는 가슴 털을 빼내기도 힘들다.
비슷하게 난도가 높은 부위가 있으니 바로 항문이다. 이쪽도 털이 꽤 길다. 배변 시 조금이라도 무른 변을 싸면 털에 묻게 되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닦아주지 않으면 굳어서 뭉치곤 한다. 신경 써서 닦아준다고 해도 매번 완벽할 수는 없다. 뭉친 부위를 잘라주거나 따뜻한 물로 씻어주는 수밖에. 결국, 일정 길이 이상 자라면 나는 녀석의 가슴 털과 엉덩이 털은 잘라주려 한다. 간식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한 후 잽싸게 가위질한다. 미용기로 하는 것처럼 깔끔한 상태를 바라는 건 아니고 그저 너무 길지만 않은 상태가 목표이다.
그루밍의 최종 단계는 헤어볼이다. 처음 녀석이 토해낸 헤어볼을 꽤 충격적이었다. 여러 번의 헛구역질 끝에 성인 엄지손가락만 한 털 뭉치가 튀어나온다. 어지간히 힘이 들었는지 눈물 콧물에다 턱은 침으로 흥건하다. 만약 고양이가 어느 순간부터 그루밍을 게을리하기 시작했다면, 그건 몸이든 마음이든 그 고양이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위험 신호가 된다.
오늘도 딱지는 그루밍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렇게 정성껏 공을 들여도 내일이면 도로 제자리인 별 보람도 없는 일. 하지만 녀석은 크게 개의치 않고 열심히 털을 다듬는다. 이것은 누가 뭐래도 고양이의 일, 자신을 가꾸는 멋진 노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