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모기한테 물리면 죽어요?
그럼 두 마리한테 물리면요?
그럼 세 마리한테 물리면요?
네 마리한테 물리면요?
엄마, 펭귄이랑 여우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펭귄 두 마리랑 여우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그럼, 펭귄 세 마리랑 여우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갑자기 질문이 폭발하는 시기가 있다. 어른들의 굳은 뇌를 훅하고 쑤시는 날카로운 질문들도 있다지만, 대체로 우리 아이가 했던 질문이란 저런 것들이었다. 계속 듣고 있다 보면, 이걸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 싶은 그런 질문들이다. 말이 통하는 어른들과 좀 더 격조 있는 대화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슬며시 솟구치게 하는 그런 질문들이다. 물론 아이들인 일부러 나를 짜증 나게 하려고 이런 질문을 했을 리는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어떤 현상의 변곡점이랄까 특이점 같은 것이 궁금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목한 곳에서 볼록한 곳으로 변하는 바로 그 순간, 온에서 오프로 바뀌는 그 순간 말이다.
모기 한 마리에 물린다고 별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1만 마리라면 어떨까? 9,999마리까지는 괜찮았지만 바로 다음의 그 한 마리에 인간 목숨도 위태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은 어쩌면 우리가 양극단만을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황을 반전시키는 바로 그 순간 더해진 건 뭔가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해왔던 그 별거 아닌 바로 그것이 딱 하나 더 들어왔을 뿐이다.
고양이는 지갑으로 키운다는 말이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우리 집에서 딱지 이름으로 나가는 것만 해도 고정적으로는 사료와 간식, 화장실용 모래가 있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장난감, 숨숨집, 스크레처를 비롯해 칫솔, 치약, 빗, 샴푸, 각종 영양제에 예방접종까지 수시로 돈이 나간다. 사실 여기까지는 돈이 든다고 해도 크게 무리가 되는 선은 아니다. 문제는 병원비다.
당연한 말이지만, 고양이를 키우기 전까지 동물병원이란 곳에 갈 일은 없었다. 그야말로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처음 우리 집에 왔던 첫 주, 딱지는 계속해서 토했다. 헤어볼도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자 하루에 두 번, 세 번으로 토하는 횟수가 점점 늘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돌발 상황이라는 건 거의 확실해 보였지만, 그래도 집 근처 병원에 등록해 두는 게 필요하다 싶어 일단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친절했고, 시설은 고급스러웠다. 의사는 숙련된 움직임으로 녀석의 이곳저곳 꼼꼼하게 살폈고, 예방접종 여부를 확인하는 피검사를 권했다. 역시나 어딘가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심장사상충 접종은 언제 했냐고 묻길래 잘 모르겠다고 답했고, 의사는 약을 꺼내 녀석의 목에 발라 주었다. 조금 안정되면 중성화 수술을 하자며 예약이나 잡고 가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20만 원 가까운 돈이 청구되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집 근처 조그만 동물병원에서 녀석의 정기검진을 받았을 때였다. 이빨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고양이 이빨은 전문이 아니라 치료할 수 없으니 다른 큰 병원을 가보라고 말했다. 인터넷을 뒤지고 여러 군데 동물병원에 문의한 결과 고양이의 이빨 관리는 생각보다 복잡한 영역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빨을 치료하는 데 녀석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고, 그러자면 결국 전신마취가 필요하다. 전신마취는 상당히 위험한 처치라 고양이가 견뎌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예비적 검사가 또 필요하다. 고양이 이빨을 치료하는 병원도 엑스레이기가 있는 곳이 있고, 없는 곳이 있으며, 스케일링만 하는 곳, 발치까지 하는 곳, 발치도 송곳니만 하는 곳과 다른 이까지 모두 하는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가격도 역시 천차만별이다. 전화 상담이었건만, 대체로 이빨 하나에만 문제가 있는 예는 없다며 대뜸 전발치(이빨 전부를 뽑는 것)를 권하는 병원도 있었다.
녀석의 안녕이 가장 중요하기는 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액수는 상상했던 금액을 훨씬 뛰어넘었다. "예약 잡아드릴까요?", 라고 묻는 상대에게 가격이 조금 부담스러워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다고 했더니 길고양이에게 수술시켜 주는 분도 있는데 가족 같은 고양이에게 그 정도 금액을 아까워하시면 안 된다는 말을 한다.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좀 상했다. 한참을 알아보다 결국 녀석을 데리고 고양이 이빨을 본다는 의사를 찾았다.
어, 괜찮은데요.
치석 관리도 잘 되어 있고.
뺄 필요 없어요.
이게 무슨? 마치 거짓말 같은 전개다. 다행이었다. 사실 이빨이 아팠다면 딱딱한 사료를 잘 못 씹고, 침을 흘리거나 입에서 냄새가 많이 나야 했지만, 녀석에게서는 그런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아픈 것을 숨기기도 한다고 하니,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앞으로도 잘 관찰하라는 말을 듣고 별다른 치료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동물병원을 가보니 검사도 많고 치료법도 많았다. 예전이면 포기했을 녀석들도 요즘은 여러 방법으로 살려낸다고 한다. 아예 줄기세포를 이용해 반려동물을 복제하는 예도 있단다. 정확한 비용은 모르겠다만 분명 어마어마한 비용이기는 할 것이다. 가족 같은 존재니까, 그 정도를 아까워하면 안 된다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병원비로 고민해야 할 형편이라면 애초에 개나 고양이는 키우지도 말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처지가 다르니 내가 뭐라 할 것도 없다. 다만, 나는 어디까지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해 두는 것은 필요할 것 같았다.
고양이가 아프면 당연히 보살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만일 10만 원 정도라면 녀석의 이빨, 망설이지 않고 치료했을 것이다. 30만 원이었다면, 한숨은 한번 쉬었겠지만, 역시 치료했을 것이다. 하지만 200만 원이었다면, 400만 원이었다면? 그때도 선뜻 치료할게요, 라고 말했을까? 어쩌면 그냥 진통제만 달라고 하지는 않았을까?
결국, 언제가 되었든 고개를 내젓는 때가 올 것이다. 어느 지점에서 선은 그어진다. 그 선이 잔인하게 느껴지더라도, 모든 일에는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한다. 어려운 형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두 명의 중고생 아이가 있다 보니 고정적으로 나가는 생활비를 무시할 수는 없다. 당장은 괜찮지만 언젠가 녀석에게 치명적인 병이 생겼다면 그리고 그 병이 엄청난 병원비를 요구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녀석을 위해 지갑을 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도 결국 경계를 정계가 있는 일이다. 어디까지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해 두는 건 결국 나를 위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고민이 많아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