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v - Paris in the rain
0. Prologue
이번 에피소드는 지난 에피소드의 프롤로그에 더 가까운 이야기다. 에피소드보다 해프닝에 가까운 이야기. 잠시 있었던 해프닝이지만 기억에 아주 짙게 남아서 브런치북으로 적어보게 되었다.
지난 짝사랑이 끝나고 홀로 아파하며 퇴근하면 술을 마시던 일상이 반복되던 때였다. 내 짝사랑이 완전히 끝났음을 아직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퇴근 후에 술에 의지하던 때였다. 그리고 그날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객기를 부렸던 날로 남았다.
1. 장마
당시 내가 하던 일은 외부 행사 같은 일이라 비가 오면 일정이 취소되고 사무실에서 다른 업무나 대체 업무를 보는 식이었다. 그때는 마침 장마철이라 다음날 일정이 취소되는 것이 확정적이었다. 나와 함께 일하던 동생과 함께 아는 가게에서 함께 술자리를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마침 근처 회사에 다니던 친한 형이 안 쓰는 물건을 내게 팔겠다고 해서 술자리로 합류했다.
가게는 흔히 말하는 다찌석(카운터석)이 있는 동네 일식집이었는데 사장님께 안주는 추천 메뉴로 부탁 한 뒤 사케를 종류별로 시켜 먹기 시작했다. 셋이 정신없이 먹다가 형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들어갔고, 동생과 나 둘만 가게에 남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늦은 시간에 여자 손님 둘이 들어와 가게에는 우리 넷이 앉아 있었다.
가게가 크지 않아서 넷이 각자 이야기를 하며 마시던 중 사장님이 여자손님들에게 핸드폰을 넘겨주시며 듣고 싶은 노래를 들으면 된다고 하셨다. 내가 취한 기운에 갑자기 가게 노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들으며 '오 노래 좋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손님들이 우리에게 손짓으로 옆으로 와서 함께 마시자며 우리를 불렀다. 그리고 그중 한 분이 내게 핸드폰을 쥐어주며 "노래하나만 추천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Lauv - Paris in the rain '중'
Girl, when I'm not with you
All I do is miss you
So come and set the mood right
Underneath the moonlight
(Days in Paris, nights in Paris)
Paint you with my eyes closed
Wonder where the time goes
(Yeah, isn't it obvious, isn't it obvious?)
Come and set the mood right
Underneath the moonlight
Cause anywhere with you feel right
Anywhere with you feels like
Paris in the rain
Paris in the rain
Walking down an empty street
Puddles underneath our feet
2. 팬데믹
비가 오는 창 밖의 모습과 내 감정이 그대로 담겨있던 노래를 틀고 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노래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내 취미가 뮤지컬이었고 버스킹과 공연을 했던 적이 있다며 유명한 뮤지컬 노래들을 짧게 불러주었다. 당시 시기가 팬데믹 시기라 가게들은 영업 제한 시간이 있었던 상황이었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그렇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그대로 기절했다가 다음날 출근을 하고 나서야 어젯밤의 일들이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왜 작별인사만 남기고 연락처를 달라고 하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살면서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만) 그래서 함께 갔던 동생에게 부탁해서 사장님께 그 손님들 오면 알려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해두었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생각보다는 빠른 시기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형 그분들 오셨데요!"
마침 사장님도 그분들에게 지난번에 있었던 우리와 함께 마실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다고 하셨다. 둘은 좋다며 우리를 불러달라고 했다고, 그렇게 다시 넷이 합류해서 술자리가 이어졌다.
3. "아 뭔가 이거 아닌 것 같은데"
사장님은 내 이야기를 듣고 은근히 우리를 챙겨주셨고, 나와 함께 있던 동생도 내가 맘에 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이야기를 잘해봤으면 하는 눈치로 분위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계속 동석하셨던 다른 분이 '아 뭔가 아닌 거 같은데'라며 혼잣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가게에서 나와 가게 사장님과 그분 나 셋이 근처 편의점에서 가볍게 캔맥주를 마신 뒤 헤어지면서 조심스럽게 SNS 아이디를 알려달라고 해서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알지만 그 당시에는 어쩌면 이렇게 인연이 시작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시작했다. 이후로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더 친해질 계기를 만들고 있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먼저 '나랑 만나볼래요'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였지만 그때는 이게 내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에 이끌렸다. 며칠 뒤 메시지로 퇴근하고 일하는 곳에 잠시 찾아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갑자기 무슨 일로?"라는 답이 왔고,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답변을 했더니 메시지로 알려달라고 했다.
4. 예상치 못했던 답
"저 이런 말 해본 적 없는데 혹시 저랑 만나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진심이었고 이제는 그분의 답이 이 어떨지만 궁금했던 상황. 계속 메시지를 썼다 지웠다 하는 창이 보였고, 초조한 마음으로 어떤 답변이 올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다고 한다면 가장 좋은 일이고, 아니라고 하면 덤덤하게 돌아서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에 내게 온 메시지에 아주 잠시 고장 난 듯 서 있다가 웃음이 터져버렸다.
"헉. 미안 얘기를 안 해줬구나, 나 결혼했어"
내 인생 첫 만나보자는 고백의 답변이 전혀 머릿속에 없었던 답이었다. '아 뭐야 결혼했었어요?' 하며 가벼운 장난식으로 답장을 보냈다. 곧장 '뭐야 너 방금 말투 바뀌었어! 이러려고 부드럽게 대했어?' 하는 장난 섞인 대화가 조금 더 이어졌다. 순간의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한 잠깐의 대화였다.
그 후 난 그 가게에 가지 않았다. 사실 바빠서 못 갔던 것에 더 가까웠지만, 술에 의존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되었다. 그렇게 여러 달을 지내다 보니 어느 날 먼저 내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왜 요즘은 놀러 안 와? 한잔하러 안 와?"
그분은 그날 내가 짧게 불러줬던 노래에 귀호강을 했었다고 같이 놀자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앞으로 바빠서 못 갈 것 같다는 답변을 한 뒤로 더 이상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날 왜 함께 있던 옆에 친구분이 왜 계속 옆에서 '아 뭔가 이거 아닌 거 같은데'라고 했는지 시간이 지난 뒤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용기 낸 '우리 만날래요?'의 답은 '좋아' 나 '싫어'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5. Epilogue
그날 이후로 난 다시 직장인 공연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가 바빠진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술에 의존하지 않을 이유도 찾게 되었다. (물론 그날의 객기로 어마어마한 사케값이 나왔다는 것도 한몫했다.) 그날 이후 삶이 한번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때 이 분을 만났던 것도 나에게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직장인 공연팀을 거쳐 난 프로 배우가 되는 것을 꿈꾸었고, 대학로에서 배우로 데뷔도 하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꿈은 그날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다시 직장인으로 살고 있지만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 선택은 없어, 지금 이 순간 '중'
선택은 없어 두려움은 한쪽에 제쳐두자
숨어선 안돼 때가 온 거야
잠시 기회를 잡기만 하면 돼
이젠 주사위를 던져야만 해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이 나만의 소원
이뤄질지 몰라 여기 바로 오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