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몇핸가요
1. 서울살이 몇핸가요
잊히지 않는 내 첫 번째 뮤지컬 연습 때 들었던 노래. 마음껏 걸어 다니다 '서울살이 몇핸가요'가 나오는 순간 모두 제자리에서 이 부분을 따라 부르는 연습을 했었다. 무대와 친해지고 공간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했던 연습이었다. 공간감과 연습실 안에 같은 공간의 같은 시간을 느끼게 만들었던 연습. 그 노래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내가 첫 공연을 마친 뒤였다.
내가 다닌 대학교에는 뮤지컬 학과가 있었다. 뮤지컬 학과에서 진행했던 워크숍 공연 중에 마침 그 시기 뮤지컬 빨래가 올라온다고 했다. 총 4회 차의 공연 중 시간이 남았던 2번의 시간을 보고 왔다. 이후 내가 뮤지컬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하는 이야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고 언젠가 정식으로 라이선스를 얻어서 공연을 올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살던 지역에 지방 공연으로 본 뒤 이후 대학로에 갈 일이 생기거나 대극장 뮤지컬을 보러 갔다가도 시간을 맞춰 빨래를 보기 위해 대학로에 들러 두세 번 정도의 관극을 더 했던 작품이다. 또 배우로 데뷔하기 위해 배역과 상관없이 오디션 지원서를 넣어보기도 했던 작품. 내가 가장 사랑했던 뮤지컬 빨래.
2. 한국형 뮤지컬의 완성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졸업작품으로 시작되어 2005년 초연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학로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작품 빨래. 지극히 서민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시대상은 아직도 2000년대 초반에 머물러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래됐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시대가 변했지만 우리의 삶이 크게 변해온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뮤지컬 빨래는 연극적 요소가 크다. 대사와 연기가 주로 나오며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노래를 사용한다. 배우들의 안무도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화려한 춤과 군무를 보여주는 공연이 아니다. 신나는 상황에서는 관객들과 함께 신나는 노래와 춤을 보여주고 슬픈 장면에서 다 절도 있는 안무를 보여줄 뿐이다. 그저 잔잔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울고 웃으며 그렇게 끝이 난다.
쉽사리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이 공연을 들어간 사람들도 1막이 끝나고 나올 때 '울음을 참기가 쉽지 않더라'라고 말한다. 함께 웃고 울고 화가 나는 내용은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겪은 것처럼 다가서 있다. 이 공연이 지금도 오픈런으로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얻어내는 서사와 연기 그리고 노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3. 인물, 서사, 무대
빨래에 나오는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가난'이라는 현실과 싸우고 있다. 타지 사람들이 '서울'에 모여 배경에서 조금 더 나은 삶과 꿈을 기대하며 살아간다는 점도 같다. 주인공인 나영은 서울살이를 위해 강릉에서 넘어와 월세를 살고 있고 또 다른 주인공 솔롱고는 몽골에서 한국에 넘어와 불법 외국인 노동자로 살고 있다. 주인할머니와 옆방에서 월세를 못 내는 희정엄마의 삶도 지극히 가난한 서민의 삶에서 출발한다.
주인공들은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한다. 부당한 대우를 당하지만 큰 목소리를 내며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이다. 부당한 대우에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오히려 자신들의 위치가 더 불리해지고 하소연할 곳 없는 처지에 좌절할 수밖에 없다. 빨래는 이런 속상한 마음을 씻어내고 털어내고 잘 말려서 내일을 기대해 보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게 진짜 현실이라고 매번 볼 때마다 말해주는 것 같았다.
빨래의 상징은 2층 옥상과 빨랫줄이다. 무대의 1층은 4개의 방 문이 있고 2층은 나영과 솔롱고의 옥상이 서로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다. 나영과 솔롱고의 2층은 서로의 희망을 노래할 때 주로 등장하며 1층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우리의 현실 사건들이다. 하늘이 보이는 2층만큼은 주인공들의 행복을 바랐던 연출자의 마음이 잘 담긴 게 아닐까
4. 뮤지컬 빨래를 추천하는 이유
빨래는 R석 77,000원, S석 55,000원이라고 적혀있으나 실제로 대학로 극장들의 티켓값은 여러 할인이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직장인할인으로 할 경우 20% 할인이 있고 시야제한석으로 20,000원으로 본 뒤 재관람 할인을 이용해서 보는 경우에도 30% 할인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만원 조금 넘는 금액을 할인받고 볼 수 있다.
또 빨래는 오픈런 공연의 형식으로 매 회차 프로덕션이 바뀌지만 기존의 배우들과 새로운 배우들의 교체시기가 있을 뿐 공연장도 공연의 내용도 변함없이 그대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공연을 보기 위해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접근하기 쉬운 편이다. 당연히 티켓팅도 다른 공연들과 비교했을 때 어렵지 않다는 점은 덤.
한때 홍광호 배우님과 가수 임창정 님이 남자 주인공 역인 솔롱고로 캐스팅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의 영상이 그대로 유튜브에 남아있기도 하다. 배우들에게는 등용문이 되기도 하며 거쳐가고 싶은 뮤지컬이기도 한 빨래. 배우의 입장에서도 관객의 입장에서도 이 뮤지컬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내 인생에 단 한 번은 만나보고 싶었던 극. 뮤지컬 빨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