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짝사랑, 25년의 동행
첫 사랑과 살아 가기.
“다녀왔습니다. ○영진 ~”
저녁 여섯 시 반, 현관문이 ‘찰칵’ 소리를 내며 열린다. 그녀의 귀환이다. 맑고 경쾌한 그 목소리. 쉰을 훌쩍 넘긴 나이 임에도 여전히 신혼 초보다 더 맑다.
데시벨도 더 높아졌다. 원래 그런 건지도?.
나이가 들면 이름 부르기도 어색해질 법하지만, 우리는 친구 같은 부부가 아닌, 부부 같은 친구로 지낸다.
싸우기도 하고, 농담도 하며, 여전히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그녀가 내 이름을 정색하며 부르기 전까지는....
그녀의 귀환 인사는 나에게 하루의 평화와 위로이며, ‘반백수 남편’이라 자조하는 내게 주는 감사의 언어다.
1987년 가을, 친구 만돌이의 부탁으로 처음 그녀를 만났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말을 못 걸겠어. 네가 좀 도와줘”
단순한 중매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 머릿속을 차지하는 사람이었다.
친구는 금세 포기했지만, 나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녀는 단단했고, 나는 집요했다.
13년 동안 수없이 고백했고, 그만큼 거절당했다. 말로는 그 아픔을 다 표현 못 할 정도였다.
1997년, IMF가 세상을 뒤흔들던 해.
고향에서 미용실을 하던 나에게 그녀가 돌아왔다. 잠시 휴직 중이라 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만남은 또 2년이 걸려, 결국 결혼식의 주연으로 나란히 서게 됐다.
13년의 짝사랑 끝에 얻은 결혼이었지만, 모든 결혼 생활이 그렇듯 결혼 생활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서로 다른 성격, 고집, 때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서로의 인간성.
그녀는 매번 갈림길에 설 때마다 옳은 선택을 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있다.
가끔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세상에 나 같은 여자 없지? 잘 만났지?”
순간 ‘가스라이팅인가?’ 싶다가도,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녀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으니까. 그래서 더 억울하지만.
오늘도 현관문이 열린다.
“다녀왔습니다, ○영진 ~”
그 목소리가 집 안 가득 퍼진다.
13년의 기다림, 25년의 동행.
오늘도 나는 그 인사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냉철한 생존본능을 일깨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