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김제, 친구들

지평선 위로 날아오른 '새마을'의 봉황들 : 그해 가을의 황금빛 오해

by 반백수 남편

내 고향은 전북 김제다. 누군가에게 김제는 '우리나라 최대의 쌀 생산지'라는 지리 교과서적 풍경이겠지만, 나에게 김제는 지평선 끝까지 아스팔트가 깔리고 나이트클럽이 세 개나 성업했던 '전북의 라스베이거스'였다.

새마을(New Village)이 아니라 새멀(Bird Village)


일곱 살, 서울을 떠나 아버지의 고향인 '새마을'에 짐을 풀었다. 초등학교 아니 그때는 국민학교이지만 내가 학교에 입학하고 ‘새마을운동’을 배울 때 나는 우리 동네가 국가 정책의 최전선에 있는 줄 알았다. 마을 어귀마다 '새마을운동' 깃발이 나부끼던 시절, 사람들은 우리 동네를 '새마을'이라 불렀으니까.

나중에야 알았다. 이곳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근대화 덕분에 'New' 마을이 된 게 아니라, 마을을 품은 황산(凰山)의 '봉황 황' 자를 따서 원래부터 '새멀(Bird Village)'이라 불렸다는 것을. 결국 우리는 근대화의 역군이 아니라, 전설 속 봉황의 품에서 자란 알들이었던 셈이다.


미사일과 초콜릿, 그리고 나이트클럽


김제평야는 산이 귀하다. 동네 뒷산인 '황산'은 서울의 남산보다도 낮지만, 어린 내 눈엔 에베레스트 같았다. 그 꼭대기엔 미군의 레이더 기지가, 능선엔 나이키 미사일 기지가 위용을 뽐냈다.

덕분에 우리 동네는 옆 동네(훗날 내 아내의 고향이 된 도장리)가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일 때, 일찌감치 매끄러운 아스팔트가 깔렸다.

미군 트럭이 지나가면 아이들은 흙먼지 대신 아스팔트 열기를 마시며

"기브 미 초콜릿!"


을 외쳤고, 밤이면 세 개의 나이트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사이키델릭 한 조명이 온 동네와 논두렁을 비췄다. 1970년대 김제평야 한복판에서 벌어진 초현실적인 풍경이었다.


황산에서 내려다본 '황금 호수


미군이 떠나고 나이트클럽의 불빛이 꺼지자, 마을은 다시 평온한 시골로 돌아왔다. 황산에 올라 김제평야를 내려다보면 그곳은 논이 아니라 거대한 황금빛 호수였다. 반듯하게 뻗은 논길 위를 걷는 사람들은 마치 잔잔한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돛단배 같았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계절을 온몸으로 마셨다.


겨울, 소복이 눈 덮인 황산은 세상 그 어떤 여인보다 고왔다. 우리는 고운 여인의 옷자락 위를 미끄럼틀 삼아 타고 내려왔다.

봄, 얼음장 밑으로 개구리들의 합창이 들리면 산딸기와 오디가 지천으로 열렸다.

가을이 오면 온 들판이 황금으로 일렁였다.

우리는 풍년가 대신 서리한 닭과 오리를 구우며 우정을 고백하곤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선명한 가을의 기억은 친구의 과수원에서 보낸 뜨거운 일손 돕기의 시간이다.


그날도 우리는 황금빛 들판 한 모퉁이, 사과와 포도가 익어가는 친구네 과수원에 모였다. '효도'와 '의리'라는 거창한 명목으로 모였지만, 사실은 일보다 장난에 더 허기가 졌던 소년들이었다. 뙤약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박스를 나르고 열매를 따다 보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갈증은 세상 그 무엇보다 절실했다.

갈증과 황금빛 액체


사건은 그 지독한 갈증 속에서 터졌다. 쉼 없이 일을 하던 중, 한 친구가 참지 못하고 구석진 나무 뒤로 향했다.

화장실이 따로 없는 과수원과 들판에선 등 돌리면 화장실이었지만, 등 돌릴 인내심마저 바닥난 녀석은 근처에 굴러다니던 다 마신 음료수병에 급하게 흔적을 남겼다.


문제는 그 '황금빛 액체'가 하필이면 우리가 방금까지 마시던 음료수 액체와 색이 비슷하였다는 점이다.

잠시 후, 땀범벅이 된 채 돌아온 다른 친구가 환희에 찬 표정으로 그 병을 낚아챘다.


"야!"


라는 다른 친구의 제지에도 자신이 음료를 먹지 못하게 말리는 소리로 인식하고 그는 병을 입에 대고 기세 좋게 들이켰다.


"꿀꺽, 꿀꺽…."


찰나의 정적.


“으하하”


나를 비롯한 모든 친구의 환호와 웃음소리가 끝나자 병에서 입을 뗀 친구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범행을 저지른 친구와 우리는 모두 배를 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지평선 너머로 지던 노을마저 그 순간만큼은 웃느라 흔들렸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만나면 "그날 그 음료수 맛은 어땠냐"며 뒤집어지게 웃는, 우리만 아는 황금빛 비극의 한 장면이다.


이제는 '중늙은이'가 된 나의 봉황들에게


중현, 덕형, 영, 만영, 재영, 창현, 익상, 정우, 영민, 영삼, 호택, 건형, 병균, 규, 지현, 일영, 준용. 나의 친구들아.

겨울 논두렁에 모여 마른 짚불에 고구마, 파를 구워 먹던 냄새, 그리고 과수원에서 음료수 한 병에 울고 웃던 그 발칙한 기억들이 아직도 코끝에 선하다. 그때는 파뿌리까지 씹어 먹고, 친구의 실수마저 '훈장'처럼 나누어 가졌던 개구쟁이들이었는데, 이제는 어느덧 머리 희끗희끗한 '중늙은이'가 되어 여기저기 쑤신다는 안부를 주고받는구나.

몸뚱어리는 삐걱거려도 내 머릿속의 너희는 여전히 황산 위를 뛰어다니고, 과수원에서 낄낄거리는 눈부신 소년들이다. 지평선을 닮아 넉넉했던 우리의 우정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란다. 친구들아, 아프지 마라.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우리가 자란 그 '새마을'의 봉황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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