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아지트, 우리들의 연대기

0658, 고향으로 들어가는 암호

by 반백수 남편


1990년대 초, 이태원에는 ‘미국 달’이 떴다.


방위 소집 해제 후 아버지가 쥐여준 30만 원은 내 청춘의 유일한 밑천이었고, 나는 친구의 집을 전전하다 이태원의 한 미용실에 삶의 닻을 내렸다.


그곳에 우리의 둥지가 생겼다.


한 살 위인 중현과 동일, 그리고 우리의 영원한 막내 일영이 합류하며 그 단칸방은 비로소 ‘아지트’가 되었다. 이제는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니 중현과 동일에게 ‘형’이라는 호칭은 떼어내기로 한다. 이 글을 읽지 못할 그들에 대한 나의 작은 장난이자, 세월을 건너뛴 친밀함의 표시다.


아지트 문에 달린 번호 열쇠의 암호는 ‘0658’이었다.


전북 지역의 전화번호 앞자리(내 기억이 맞는다면),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게 고향의 숫자는 가장 안전한 은신처로 들어가는 유일한 주문이었다.

서울에 당도한 고향 친구들은 마치 권리라도 행사하듯 0658을 누르고 우리의 방으로 들이닥쳤다.


나의 일터인 미용실은 아지트의 연장선이었다. 영업이 끝나고 동료들이 퇴근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덕형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는 맡겨놓은 물건이라도 찾으러 온 사람처럼 당당하게 의자에 앉아 머리를 내밀었다. 피곤이 어깨를 누르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다시 가위를 잡았다.


사각거리는 가위 소리 사이로 덕형의 투박한 에피소드들이 쏟아졌다.

서울역에서 이태원까지 택시비가 아까워 걸어온 이야기, 전철 개찰구에서 헤매던 촌극, 그리고 미용실 밖에서 마주친 ‘여자 같지만, 여자가 아닌’ 신기한 이태원 사람들에 대한 목격담들.

내 손끝은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그가 짊어진 청춘의 무게를 가늠했다.

친구의 머리를 만지는 행위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아끼고 있으며, 이 낯선 도시에서 기꺼이 서로의 어깨가 되어주겠다는 고요한 밀약이었다.


머리 손질이 끝나면 우리는 몸에 밴 파마약과 헤어스프레이 냄새를 씻어내려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밤새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르면 비디오 대여점에 들러 영화 한 편을 빌려 귀가했다. 좁은 방 안에서 서로를 헐뜯는 거친 욕설과 농담이 오갔지만, 그 속에 가시는 없었다. 오직 서로의 외로움을 갉아먹는 다정함뿐이었다.


주말이면 방은 포화 상태가 되었다.

열 명 남짓한 사내들이 몸을 구부려 서로의 틈새에 끼워 넣었고, 그것도 모자라 다락방까지 기어 올라가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시장에서 사 온 고기에 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치를 넣고 큰 솥 가득 찌개를 끓였다. 뜨거운 국물로 속을 달랜 뒤, 우리는 엉망이 된 몸을 이끌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나누던 수다, 늦은 점심을 먹고 각자의 삶으로 흩어지던 일요일 저녁의 공기.

비흡연자임에도 우리의 담배 연기를 묵묵히 견뎌내고 잠자리를 정돈해 주던 막내 일영의 모습.

그 모든 것이 버무려진 그 시절, 우리에게 이태원은 타향이 아니라 또 다른 이름의 고향이었다.


이 지면을 빌려, 기억 속의 그들에게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사랑한다, 내 청춘의 동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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