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된 화해

종결의 효율을 우선하여 화해를 합리로 포장한 제도적 언어

by 쑤필가



피고는 분명 상간녀였는데 나는 두 명의 피고와 싸우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둘이었고 나는 이 과정에서 혼자였다.

'씩씩하고 똑똑하게 굴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꿋꿋하게 서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위태로웠고, 아닌 척 애쓰고 있었으며

좀 가엾다.



몇 차례 서면을 제출하고, 변론기일이었다.
변론이 끝난 뒤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상대 변호사 측은 상간 사실 자체에 대해서 반박이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변호사는 판결에서 화해권고가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화해?’

단어 선택이 참 잔인하다.
상간소송에서 용서도 아닌 화해라는 말이 성립이 되는 것인가.



나는 화해권고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판결로 가면 판결금에 변동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애초에 내게 금액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그들의 잔인한 행위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공적인 기록으로 남는 일이었다.


그저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느낀 고통이 이름 없는 감정이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겼다.

어쩌면 기록이 나 대신 기억해 주길 바라며,

적어도 나는 잊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이 일을 완전히 잊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와 동시에 이 판결문이 너희에게는 가장 불편한 기록으로 남겨져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끝내 설명해야 할 진실이 되기를.


그러니 부디,

내가 충분히 행복해져서 정말로 완전히 잊고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전 26화간통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