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서

법 앞에 허용된 나의 유일한 호소

by 쑤필가


손으로 꾹꾹 한 글자씩 눌러 담아
판사에게 제출할 자필 탄원서를 썼다.


제발 알아달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억울했다.


상간을 저지른 사실이 명백해도 이 아픔이
위자료라는 이름으로 따지고 따져서 비용처럼 환산된다는 것이.


내 변호사는 말했다.

어떻게 지금의 마음을 비교하고 비유할 수 있겠느냐만은,
상간소송에는 이보다 더 힘든 경우도 많다고.

두 집 살림을 차린 경우,
상간녀와 아이까지 있는 경우,
외도를 십 년 넘게 숨겨온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해 나는 치명적인 경우는 아니라는 거였다.



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모든 일이 마치 해프닝 같은 외도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는가.


내가 바보처럼 눈치가 빨라서
그의 외도를 빨리 알아차렸고,
배신감에 무너져 그 장면들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증거를 차곡차곡 모으지 못한 것이
결국 피해자인 내 잘못이란 말인가.


마치 수십 번 칼에 찔렸음에도
내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살인이 아닌 상해가 되는 것처럼.


그리고 변호사는 또 말했다.

보이지 않지만 이의제기 여부가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상대측은 화해권고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고,
나만 이의제기를 했기 때문에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그 말은 마치 화해를 권했는데

왜 혼자 끝까지 문제 삼느냐는 말도 안 되는 판사의 강권처럼 느껴졌다.


정말일까 싶을 만큼 억울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차분히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서.


혹여 너무 내 아픔을 드러내면 감정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수정펜을 사용하면 혹여라도 대충 쓴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몇 번을 다시 쓰고 또다시 쓰기를 반복한 끝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법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나만의 호소였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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