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삶과 존엄을 파괴하는 또 다른 형태의 살인죄
내가 소송장을 남편에게 보낸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정말 남편이 개입하지 않길 바랐는데
답변서 안은 온통 남편의 흔적들로 가득했고,
마치 상간녀를 변호하듯 그가 보인 입장과,
내가 그동안 남편과 주고받았던 카톡 내용들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앞뒤 맥락을 자르고 증거처럼 제출되어 있었다.
네가 이 소송의 반대편에 서 있었고
다시 한번, “아무 사이도 아니다”라는 네 말이 거짓이었음을
너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답변서를 읽는 내내 기가 차서 헛웃음이 새어 나오고,
눈물이 앞을 가려 글자가 흐려졌다.
계속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야 했다.
상간 소송 카페에서 흔히 말하던 것처럼,
또 한 번 무너지는 순간이 바로 답변서를 받는 때라고 들었는데,
나는 이미 너 때문에 수없이 무너져 봤으니 괜찮을 줄 알았다.
정말 눈물이 끝없이도 흐른다.
매일을 이렇게 울어도,
꿈에서 울다가 눈을 뜨면 실제로 눈물이 베개를 적시고 있을 만큼 울어도,
그럼에도 눈물이 나는 게 이제는 신기하다.
답변서 속 이야기는 소설처럼 꾸며져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드라마 속 대사와 똑같을까.
외도하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이란 게,
하나같이 이렇게 뻔하고 똑같단 사실에 기가 차고
너도 다를 거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니
너와 함께 한 내 지난 시간이 뭐였을까 싶다.
내가 상간 소송을 통해 느낀 바는 명확했다.
피해자만 아프고,
피해자만 원통하고,
불안하고,
그럼에도 피해자의 마음은 판결에 단 한 줄도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의 외도는 명백한 사실인데,
남편의 외도를 알고
“당장 나가라” 했던 내 말이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그들의 기만적 행동에 참지 못해 그의 짐을 캐리어에 넣어
내다 준 행동마저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니.
아무리 울부짖어도,
법정에선 오로지 행동만 재단할 뿐
피해자의 보이지 않는 상처와 무너진 마음 따위는
판결문 한 줄에조차 담기지 않는다.
피해자의 절규는 공기처럼 사라진다.
누가 간통죄를 없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