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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파편

깨지거나 부서져 흩어진 날카로운 조각

by 쑤필가



(전)남편은 이제 (우리)집에 없다.

이혼을 준비하며 알던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해서일까.

아니면 나랑 집에 함께 있으면서 정신 나간 비련의 주인공처럼

거실에 앉아있는 남편을 보며 마음이 찢길 대로 찢겨서일까

이 집에 나 혼자 있는 것이 그리 허전하지 않다.

아니 되려 같이 있었을 때가 더 초라하고 공허했던 것 같다.


오늘도 어김없이 회사를 출근해서 즐겨찾기에 저장된 전자소송포털사이트를 누른다.

사건번호도 이제 외웠다.

아니, 하루에도 수십 번을 들어가니 자연스레 외워졌다.


그렇게 오늘도 새로고침을 반복해서 누르던 와중,

갑자기 안 보이던 문구가 나타났다.

습관적으로 누른 새로고침에 갑자기 보이지 않던 새로운 문구가 보이니 마음이 덜컹한다.


폐문부재.

한 번은 폐문부재로 송달되지 않았고

그렇게 매일 수많은 새로고침을 반복하고 소장 송달로부터 13일 뒤,

소장이 도달했다는 문구가 떴다.


상간 소장이 전달된다 한들 지금 내 상황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지금 이 슬픔과 분노를 이겨낼 수 있는 지금 나의 최선이 아닐까.

어쩌면 지금 내가 싸우는 게 너희가 아닌 이 분노로 차버린 내 하루인 것 같다.


상간녀가 소장을 받는 순간에 '네가 받는 것은 아닐까'라고 방어기제처럼 최악을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네 말이 사실이길 스쳐가는 내 멍청한 생각이

또다시 얼마나 무너트리려고 아직도 그럼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 멍청한 생각이 제발 사실이길,

그래서 내가 그렇듯, 이 소송을 그 상간녀 혼자 다 짊어지길 바랐다.

이게 네가 개입하는 싸움이면 난 더 무너질 테니.


그리고 계속해서 마음속 되새겼다.

'제발 네가 개입하지 않길.'

늘 내편에 서있던 네가 이 싸움에 반대편에 서서

너 때문에 피를 흘리고 있는 나를 다시 한번 더 찌르지 않길 바랐다.

정말 바랐다.


그러고부터 며칠 뒤, 난 상대측 답변서를 받았고

회사 로비에서 얼어버린 채

어이없음에 헛웃음을 쳤다 울었다를 반복하며

남들 시선 따윈 신경도 쓰지 못한 채 주저앉아버렸다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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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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