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과정이나 순서의 끝
내일은 그와 법원에서 협의 이혼을 진행하기로 한 날이다.
난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바라보며
어두운 거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오늘 잠에 들 수 있을까.
이 관계는 이혼이라는 결정뿐이라 여겼던 것은
외도는 나의 선택권이 없는 결말이라 생각했다.
지금 당장 그와 헤어지기 싫다고 잡고 있다한들,
그의 마음은 이미 나를 향해 있지 않았고
그가 다시 이 결혼을 지키고자 하더라도
그는 나의 의심에서 그 마음을 증명해야 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정해진 답을 알고 있더라도 그가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남편과의 9년의 시간을 뒤로하고
앞으로의 내 모습이 불안하고
지난 추억들이 물밀듯 내 기억 속에 들어왔다.
핸드폰을 들고 앨범에 가득한 남편과의 영상들과 사진들을 보며
난 또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제는 사라진 지난 우리의 행복이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난 전화를 걸었다.
나와 함께 웃고 있는 수많은 영상 속 그 사람이 전화를 받고
지금 당장이라도 나에게 달려와주길.
사실 나도 이혼은 하고 싶지 않다며 생각이 더 필요한 거 같다 말해주길.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아직은 남편인 오빠가 소중하다며,
내일 법원에 가지 못할 것 같다 말하려 했다.
용기 내어 건 전화도 결국 내일 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야
어제 일찍 잤어.라는 답장으로 끝이 났다.
9년의 시간이,
내일이 우리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나만큼의 무너짐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너도 마음 한편에 어떠한 두려움, 걱정,
아님 그마저도 아니라면
뒤숭숭함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넌 오늘도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보다
5분 늦게 법원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한테 그는 말했다.
"어제 군산 갔어?"
"응"
"가서 무슨 이야기했어?"
"있는 그대로 다 말씀드리고 감사했다고 인사드리고 왔어. 왜?"
"내 전화 다 안 받아서"
"실망하셨겠지."
그리고 우리는 순서를 기다리며 앉아있었다.
정말 각양각색 부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예 남처럼 따로 앉아 있는 부부도 있었고,
웃으며 함께 순서를 기다리는 부부도 있었다.
우린 어때 보였을까.
너와 여기에 있을 곳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우리의 순서다.
협의 이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판사 앞에서 협의 이혼하는 게 맞냐는 질문에 "네"라는 답변 한마디에
법원에서는 서류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난 그에게 말했다.
"오빠, 후회되면 다시 와. 알았지?"
"후회해서 다시 가더라도 꺼지라고 하고 받아주면 안 되지.
그리고 상처준거 미안해"
마지막 인사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만 같아서 미소로 인사하고 싶었다.
근데 그의 말에 난 애써 짓는 미소와
눈물이 섞인 얼굴로 그에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차에 타서 다시 한번 또 무너진다.
그게 사랑했던 남편과의 마지막 대화였고,
지금도 이 기억은 그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