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어떤 일을 이루려고 하거나 바라지 않기로 함
그 둘의 많은 만행을 알게 된 지금.
또 남편이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지금.
내가 사랑하는 내 남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지금.
퇴근 후 집이 아닌 근처 카페에서 보자 연락했고
난 그의 그의 짐을 캐리어에 차곡차곡 옮겨 담았다.
그의 짐을 정리하면서 내 마음도 정리되길 바랐던 마음이었던 것인지,
하나씩 곱게 그의 옷을 개고
서글픈 마음으로 짐들을 바라봤다.
카페에서 이야기하고 모든 것이 해프닝이 되어
이 짐들을 다시 고스란히 집으로 가져올 수 있었으면 했다.
원래의 자리로.
집 근처 주차장이 있는 카페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알고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들에 대해 그에게 물었다.
"그 여자랑 호텔 간 적 없어?"
"없어."
"모텔 갔는데 내가 호텔이라 물었다고 아니라 하지 말고, 숙박업소 간 적 없냐고."
"..... 있어."
그는 정말 최소한의 말만 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핑계들로 스스로의 행동을 합리화시킨다.
"지금 이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 아니."
이러한 사실들을 다 알고 나서도
그를 놓고 싶지 않았고 이 결혼을 지키고자 하는 나를 보면서
그동안 드라마에서 남편의 외도로 슬퍼하는 조강지처들에게
왜 저렇게 주인공이 바보 같냐며,
'나라면 같이 못살아!'라고 했던 말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또한 가벼웠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집에서 챙겨 온 그의 짐들을 내려주고 가져가라 했다.
정말 냉정해지려고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그의 짐을 내리면서 내 마음이 더 찢어졌고,
절박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난 지쳤다.
파헤칠수록 자꾸만 나오는 상간녀의 기만적인 행동들에.
그동안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하던 그에게.
찢어지는 내 마음보다 그를 살피는 나에게.
이 사실을 모두 덮고 사는 것은 더 이상 나한테 못할 짓이라 생각이 들었고
이혼 말고는 답이 없는 이 상황을 만든 그가 그저 원망스러웠다.
당장의 이혼이 슬프고 절망적이더라도
이 시간들을 이렇게 계속 끌고 가기에는 나의 시간이 아깝다라고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뒤돌아본 지난 그와의 결혼생활 5년은
그에게 고마운 것도 많지만 동시에 혼자의 시간이 많았던
나에게 외로움도 한가득인 시간이었다.
근데 지금 내 마음에 자꾸만 아프게 걸리는 것은
이혼 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마음에 슬픔과 그리움으로 남을 시댁 식구들이었다.
내가 그와의 결혼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던
나의 또 다른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