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내려앉거나 패인 곳에 물이 고인 상태
의심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들을
계속해서 경험해서일까.
고작 한 달이라는 짧은 숙려기간 동안 그가 돌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그의 시간들을 파헤치면서 내 증거들은 늘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는 더 파렴치했었다.
상상도 못 했다.
그가 다른 여자와 모텔을 갈 것이라고는.
차에서 손만 잡았다던
당최 말도 안 되는 그 말을 믿은 바보가
바로 나다.
남편 차에 있는 블랙박스 영상을 보기 위해 나는
새벽 5시 남편 차에 몰래 들어가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메모리카드를 가져가고 다른 카드로 대체했을 때
혹여라도 눈치챌까 싶어 꺼낸 메모리를 노트북에 연결해서
일단 영상들을 옮겨 담았다.
영상을 삭제하고 덮어쓰고를 반복해서
영상들이 모두 손상되었고 끊김 현상으로 영상을 보기 힘들 정도였다.
뭐가 그리 떳떳하지 못해서.
이후 최대한 같은 모양의 메모리카드를 구해
남편 차에 있던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가져오고
대체 메모리카드를 넣어두었다.
포렌식 업체를 찾아 메모리카드를 맡겼고
실력에 따라 편차가 있다 하여
다른 포렌식 업체를 또 찾아 더 많은 영상 복구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또 알아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음소거로 변경된
블랙박스 영상들을 보면 기가 차다.
떳떳하지 못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치밀하게 이 사실을 숨기려 저렇게 나름 치밀하게 군 모습이
정말 치졸하다.
그래서 끊기는 영상들을 조합하고
후방카메라 영상을 초단위로 멈춰가며 보기 힘든 그 영상들을 계속해서 봤다.
그리고나서 내가 알게 된 건,
내가 출장을 갔던 그 2박 3일 동안
남편은 상간녀랑 모텔을 드나들고
나와 처음 데이트 했던 을왕리를 가고
나와 1년 전 크리스마스에 갔었던 호텔을 간 사실을 알았다.
그 장소가 아무리 좋더라도
너만이 알고 있는 무슨 데이트 코스 따위라 하더라도
굳이 나와의 추억이 있는 곳에 가서
어떻게 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커지는 실망감이 너를 향한 비난보다 슬픔이 되는
지금이 정말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