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 지나간 후 남은 자취나 자국
시댁 식구 분들은 좋은 분들이었다.
처음 뵙기 전에도 아들을 이리 반듯하게 키우셨다면
정말 훌륭한 성품을 가지신 분들일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이런 분들이라면 내 남편의 소중한 가족을
나 또한 소중히 생각하고 존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항상 나를 좋은 모습으로 바라봐주시고
왜곡하지 않으셨고
내 건강과 마음을 먼저 생각하셨다.
어른이셨다.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배우 김지원(홍해인)의 시어머니와 비슷했다.
"어머니! 김장 언제 담그세요?"
"어~ 일요일에 할 거야~ 바쁜데 올 필요 없어"
이 또한 토요일에 김장을 담그실 계획이셨고
다 완성된 김치를 가져갈 수 있도록 일요일이라 말씀하셨다.
근데 나도 이미 그 사실을 눈치채고
토요일에 내려가곤 했다.
바쁜 남편은 본인이 갈 수 없기에 나도 안 가도 된다며 말했지만
조금이나마 일손을 보태고 싶은 마음에
3시간을 운전해서 내려가기도 했다.
숙려기간이 끝나고 협의 이혼으로 법원에 가기 바로 전 날,
남편은 외도 후 우리 가족에게 어떠한 인사 한마디 없었지만
그래도 난 마지막으로 꼭 인사는 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을 안고 군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이었다.
'듣고 혹여나 충격받지는 않으실까'
남편의 외도를 알고 난 후
매일이 눈물이고 무너짐의 연속이었기에
시댁에 전화드릴 정신도 없었다.
그래서 두 달이 넘어서 갑작스럽게 군산에 온 며느리로 보였을 거다.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치과 진료 중이셨고
대기실에서 진료를 마치실 때까지 기다렸다 댁에 모셔다 드렸다.
익숙한 곳인데 낯설었다.
"어머니 저 오늘 인사드리러 왔어요."
남편의 외도 사실에 대해 말씀드리며
상간녀는 군산에서 둘이 어렸을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현재 7살 혼혈아가 있는 유부녀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더 많이 효도 못하고 이렇게 인사드려서 죄송하고
부족한데도 그동안 사랑으로 감싸주셔서 감사드린다는
인사를 드렸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누나인 형님도 군산에 살고 계셔서
전화를 드렸다.
이 사실에 대해 말씀드리고 인사를 드렸다.
너무 마음 고생했겠다며 안아주셨고 눈물을 보이셨다.
나 또한 시조카의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랑아, 잘 지내고 있어. 우리 나중에 꼭 보자"
"숙모 또 언제 와?"
아이의 해맑음에,
아이의 순수함에
가슴이 미어지고
잘해주지 못했던 후회와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조카도 나에게 이모부의 안부를 묻는다.
"이모, 이모부 어디 갔어? 왜 안 와?"
"이모부가 좀 멀리 갔어. 이모부 보고 싶어?"
"응!"
아이에게 인사라도 해주고 가지.
넌 나뿐만 아니라
나를 만나러 와서도 너를 기다리는
그 아이에게 마저도 인사 하나 없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