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사는 건 자기 집을 찾는 여정 같아."
언니가 그렇게 말한 건 케이크를 먹던 중이었다.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과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상태를 찾아가는 여정 말이야."
-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1월 2일부터 카카오브런치에서 기획한 독서챌린지를 시작했다.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오랜만에 책을 좀 많이 읽어 볼 요량으로 참여했는데, 아무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스스로의 양심에 강제성이 있으니 하루 30분은 책을 읽게 된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하게 좋은 작가와 책을 만났는데 오늘은 그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서울 사람들도 잘 모르는 동네의 언덕 비탈길에 자리 잡은 주택에 관한 이야기다.
조금만 가면 아름다운 성곽길이 있는 그 동네에서 백수린 작가의 주변 사람들, 강아지 동동이, 주택에 지내며 얻게 되는 경험과 성찰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책의 맨 뒤 추천사에 '걷는 것은 그인데 도리어 내가 아름다워져도 되나', '근래 만난 가장 아름다운 책이다'라는 안희연 시인의 말처럼 그동안 읽은 에세이 중 단연 아름다운 글이었다.
책을 읽으며 맘에 드는 글을 필사하곤 하는데 이 책은 모든 글을 필사하고 싶을 정도였고, 왠지 글을 읽으며 요가나 명상할 때 평화로운 기분이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매번 추천하고 다녔다.
아름다운 글을 읽으면 왜 내 안에는 아름답지 않은 반발이 들까?
백수린 작가의 글이나 유튜브를 보면 너무나도 선하고 착한 사람처럼 여겨진다. 글 안에서 백수린 작가는 늘 성찰과 사유, 반성을 하는데 이런 아름다운 글을 보며 왠지 모를 열등감에 나는 아직 내가 훌륭한 인간이 되기에는 멀었다는 걸 확인한다.
내 취향은 어찌도 이리 세속적이고 보잘것없는지.
명품은 샤넬과 에르메스밖에 모르고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한강 작가나 백수린 작가처럼 따뜻한 차를 끓여 작은 찻잔에 마시지도 않고 좀 식으면 바로 원샷을 때려버린다. 도파민에 중독되어 이혼숙려캠프나 나는 솔로를 챙겨보고, 남들이 모르는 책보다는 유명한 책을 따라 읽는 데 급급하다.
조용히 깊게 말하고 아름다운 글로 표현해 내는 역량은 타고나는 걸까 길러지는 걸까.
나의 밝은 모습이 좋다가도 따라갈 수 없는 사람들을 동경하며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우울해진다.
이 열등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의 질문에 모두 대답하는데 나만 몰라서 입만 벙긋대던 그때부터일까. 신도시에서 다른 엄마들은 유명하다는 학원을 보내고 전과를 사주는데 우리 엄마는 전과라는 존재 자체를 몰라서 뒤늦게야 사주고, 그걸 보며 여기에 답이 다 있었는데 나만 전과가 없어서 대답도 못하고 뒤쳐지는 학생이 된 것이 화가 났던 그때가 가장 오래된 나의 열등감인 것 같다.
이후에도 색이 바래 노란 건반을 가진 중고 피아노가 내 방으로 들어왔을 때. 심지어는 그중 두 개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 피아노를 그만 쳐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도. 중학교밖에 나오지 못해 자신을 무시하냐는 열등감을 지니던 아버지로부터 열등감 DNA가 온 것만 같을 때도. 돈 없다는 엄마의 말에 차마 학원을 보내달라는 말을 못 했던 고등학생 때와 고시생일 때도. 동생은 집에서 지원해 준 덕분에 원하는 대학을 들어가고 대학원 박사까지 끝낸 걸 보면서 왜 나는 요구하지 못했나 나 자신이 바보스러울 때도.
이 모든 건 나의 열등감의 원천이었다.
서울치고 싸다지만 서울에 집을 구하는 백수린 작가의 잔고, 해외에서 살아본 경험, 같은 펫로스증후군을 겪었지만 그리움을 무척이나 사무치게 적을 수 있는 작가의 문장, 그 모든 것들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더구나 우리 마루를 잃고 나서의 내 모습이 백수린 작가와 대비되어 우리 강아지는 덜 귀한 존재처럼 여겨지는 것 같은 미안함이 괴롭다.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도 모든 걸 극복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기에 아등바등 위를 보며 살아왔지만 이번처럼 나와 전혀 다른 삶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힘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그런 삶을 시도하는 것조차 누군가에겐 아예 접하지 못한 일이거나 매우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고 읽었던 에세이 중 가장 좋았던 글이라고 생각되는 건, 경험하지 못했던 삶들이 나를 다시 성장시킬 거라는 것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퍼스널컬러가 봄웜인데 겨울쿨 립을 굳이 굳이 바르겠다고 우기는 사람처럼 나의 장점을 모르고 남의 좋은 것만 탓하는 사람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좋아 보이는 것들, 좋아하는 사람들을 따라 하다가 또다시 내 것이 만들어지겠지.
모든 작가의 문체가 같지 않지만 각자 다른 책의 재미가 있듯 각자의 삶이 다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이걸 알면서도, 좋은 책을 만났으면서도 오늘 또 열등감을 꺼내보이고 성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