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넥 광장> 등의 시가지, 폴란드 최대 수도원까지의 순례길
조금 세속적인 얘기로 운을 떼자면, 사람 사는 데는 언제나 '덕후' 내용이 있다. 어떤 예능 프로그램 속 인기 인물을 예시로 들어보자. 일반인들은 그 인물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지만, 해당 예능을 시청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큼은 인기가 최절정에 달한다. 이것은 특정 게임 캐릭터, 특정 대형교회 목사님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그런지 해당 그룹들 사이에서 '빠'뿐만 아니라 '까'도 있는 부작용이 있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투리가 소개할 도시도 비슷한 맥락을 가진 장소다. 이 글의 독자들 중에 혹시 '쳉스토호바(Częstochowa)'라는 이름의 도시를 들어본 분 계신가? 투리가 크라쿠프 기행글을 쓸 때 주변에 있는 볼거리들 중 한 군데로 잠깐 언급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곳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교환학생 동기들 사이에서도 거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는 동기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폴란드인, 특히 폴란드 가톨릭교도들이라면 쳉스토호바에 대해 모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도시에는 가톨릭 교인들이 여행 오면 무조건 방문해야 하는 압도적인 수도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의 이름은 야스나 고라(Jasna Góra Monastery). 어지간한 폴란드 여행책자들도 도시 이름보다는 야스나 고라 하나만을 소주제로 삼을 정도로, 해당 수도원은 그 상징성이 매우 큰 관광지이다. 사실상 저 수도원 하나가 쳉스토호바를 방문하는 유일한 이유가 될 정도로 말이다.
비록 투리가 방문한 지역들 중에서는 마이너한 축에 속하지만, 방문해야 할 이유가 명확한 대표적인 도시들 중 하나가 쳉스토호바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쳉스토호바 기행글 시리즈는 전체적으로 유럽의 시골 냄새가 조금 많이 나겠지만, 우리가 가보지 못한 세상의 풍경들을 보는 것도 하나의 묘미 아니겠는가? 그 풍경들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투리의 글을 즐겨주신다면 너무나도 감사하겠다. 그럼, 다시 새로운 모험을 떠나보자!
4월 25일, 날씨가 흐린 금요일 오전.
Flixbus를 타고 처음 쳉스토호바 정류장에서 내렸을 때, 생각보다 분위기가 너무 휑해서 초반에는 적잖이 당황했었다. 여기가 유의미한 관광 도시들 중 하나라고 해서 와봤는데, 날씨가 흐린 걸 감안하더라도 이건 너무 없잖아? 사실 여태껏 메이저 도시들만 방문한 투리의 눈높이가 높아져 버린 탓이 크지만 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 체스토호바의 가치는 야스나 고라 수도원이 있는 도시라는 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만큼 다른 구역들은 관광지로서의 매력도가 떨어진다. 위 사진을 보라.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을 무언가가 보이는가? 투리의 눈에는 딱히 없다.
그래서 쳉스토호바 여행은 여행객들이 보통 당일치기로 잡고 야스나 고라 하나만 보는 식으로 끝낸다. 하지만 투리는 쳉스토호바 역시 예외 없이 3박 4일로 잡았다. 아니, 볼거리가 크게 없다면서 일정은 왜 또 길게 잡았냐고? 일단 쉬면서 여행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여유 있게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단순히 관광지 하나만 보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이 주변의 세상도 보고 싶은 기분이랄까?
어차피 교환학생이라 장기간 있는데, 뭐 어떤가? 역시 느긋한 마음으로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게 교환학생의 장점인가 보다. 물론 적당한 순간에 캠퍼스로 귀환해야 하는 한계는 있다만.
본격적으로 쳉스토호바에 대해 소개하면, 이 도시는 폴란드 남부 바르타(Warta) 강에 위치한 도시로, 실롱스크 주(Silesian Voivodeship) 북부에서 제일 큰 문화와 행정의 중심지이다. 폴란드 전체로 따지면 폴란드에서 13번째로 큰 도시이며, 인구수는 20만 명 이상이다. 전에 소개한 토룬보다는 확실히 규모가 큰 셈이다.
쳉스토호바는 기록에 의하면 원래 피아스트 왕조가 다스리던 11세기 바르타강에 세운 정착지에서 시작되었다. 이 도시가 처음으로 언급된 문헌은 크라쿠프의 주교가 므스토프(Mstów) 수도원의 재산 목록을 작성한 자료에서였다. 해당 문서에는 체스토호바(Częstochowa)와 체스토호부카(Częstochówka)라는 두 개의 마을이 언급되어 있는데, 훗날 체스토호부카는 미래의 야스나 고라 수도원이 자리 잡는 곳이 된다.
시간이 흘러 15세기말에서 16세기 초에 쳉스토호바는 번영을 누리는데, 이는 당시 그 도시를 통치했던 지그문트 1세(Sigismund I the Old) 덕분이었다. 그는 1504년 쳉스토호바에 바르타(Warta) 강의 다리에서 통행세를 징수할 권리를 부여했고, 1508년에는 연 1회의 박람회를 열 수 있는 권한까지 주었다. 심지어 50년 뒤에는 이 권한을 연 3회로 확대한다.
그러나 이 도시에도 시련은 찾아온다. 1631년에는 쳉스토호바에 역병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피해가 발생하고, 1655년에는 스웨덴이 폴란드 침공 당시 쳉스토호바에서 공성전을 벌인다. 결과적으로 폴란드인들은 야스나 고라에서 스웨덴군에 맞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요새를 지켜내지만, 시내는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이것도 그나마 프지리우프(Przyrów)나 므스토프(Mstów) 같은 인근 도시들에 비하면 피해가 적은 편이었다. 상식적으로 쳉스토호바를 공격한 스웨덴군이 다른 점령지들을 가만히 놔둘 리 없으니까.
그 뒤 18세기 초에도 스웨덴군은 쳉스토호바를 공격하지만 그들은 번번이 야스나 고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철수한다. 그러나 폴란드 왕국의 힘이 전체적으로 약해지면서 이 도시는 이후 프로이센이나 러시아 제국 등 다른 나라들의 지배 아래에 놓인다. 게다가 이 도시에도 유대인이 많이 거주했기에 그 뒤부터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주민들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역사 얘기만 하면 너무 지루하니, 분위기 환기 겸 잠깐 사진 얘기로 넘어갈까? 날씨가 흐려서 사진이 그다지 이쁘지는 않지만, 위 사진 속 광장은 구 시내 광장(Stary Rynek)이다. 겉으로는 작아 보이겠지만, 이 광장이 체스토호바의 중세 기원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광장 되시겠다. 다시 언급하자면 쳉스토호바는 원래 도시가 두 개였다. 그러다가 야스나 고라 수도원이 순례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쳉스토호바의 중심지는 수도원 쪽의 비에간스키 광장(Aleja Najświętszej Maryi Panny)으로 옮겨졌다.
그래도 날씨가 흐린 날에 방문해서 그런가. 이전의 광장들에 비교하면 그 옛날의 영광은 느껴지지 않았다. 뭐 애초에 쳉스토호바가 그렇게까지 큰 도시가 아니기는 하다만. 너무 날씨가 흐린 사진들만 보여주는 건 그렇니, 이번에는 다른 날짜에 찍은 사진들도 좀 꺼내볼까. 비에간스키 광장 것들로 말이다.
날씨가 조금 좋은 장면으로 바꿔봤다. 아까보다는 볼만한 풍경이다. 이 즈음의 사거리부터 야스나 고라까지 이어지는 큰 대로 사이에 중앙 광장이 있다. 거리의 모습 자체도 분위기 있는 편이다.
위 사진들이 비에간스키 광장의 모습인데, 막상 보니 이 사진들도 좀 휑한 편이다. 좀 더 괜찮은 사진들은 나중 글에서 올려볼까 한다. 암튼 이렇게 특정 동네 안에서는 규모가 좀 있는 도시인데, 그러면 이 도시는 무엇으로 먹고살았냐. 아까 말했던 통행료나 박람회 같은 것들도 있겠지만, 쳉스토호바의 주요 산업은 철강 산업이었다. 도시의 몸집이 커진 것도 이 산업과 연관성이 짙은데, 해당 제철소가 발전하면서 노동자 도시로서의 성격도 강해졌다.
이 규모가 어느 정도냐, 쳉스토호바에 있는 폴란드 최대의 제철소가 'ISD Częstochowa Steelworks' 회사인데, 폴란드에서 제조된 강판의 65% 이상이 여기에서 생산되었다고 한다. 그 덕에 쳉스토호바는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철광석을 바탕으로 제철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실롱스키에주에서 3번째로 큰 산업 지구로 발전할 수 있었다. 현재는 철광석을 채굴하는 광산이 운영되고 있지는 않고, 옛 철광석 광산과 채굴 방식을 재현해 놓은 전시용 박물관이 유산으로나마 남아있다.
뭐 어찌 보면 발달된 산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다. 무슨 성 바티칸도 아니고, 국내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살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그와는 별개로 야스나 고라를 방문하기 위해 연평균 350만여 명의 사람들이 쳉스토호바를 찾아간다. 이들 중에는 순수한 종교 순례자들의 비율도 적지 않을 테니.
이 외에도 쳉스토호바에 대한 얘기가 더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번 글은 여기까지만 적어도 충분할 것 같다. 아무래도 3박 4일씩이나 돌아다녔다 보니 굳이 모든 내용을 다 이 글 안에 담을 필요는 없어 보여서 말이다. 쳉스토호바에 관심 있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 같고, 애초에 여기를 여행 온 것도 유럽의 소도시를 쉬엄쉬엄 돌아다니기 위해서였다. 그런 점에서 쳉스토호바의 기행글들은 유럽 시골을 천천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브런치스토리에 업로드할 것 같다.
평범하지만 모든 한국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닌 기회, (다소 시골에 가까운) 유럽 소도시 산책하기. 크라쿠프 여행과 별도로 취급하면서까지 쳉스토호바라는 유니크한 도시에 집중적으로 머문 투리는 무엇을 했는가. 약간의 일기와 어느 정도의 배경설명을 덧붙이면서, 앞으로의 글들도 끝까지 연재해 보도록 하겠다. 오늘도 투리의 글을 찾아와 준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